※ 창작 사니와(이름 및 독자설정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봄비가 내렸다. 아직 꽃망울이 영글지도 않은 벚나무들이 가는 비를 맞으며 조용히 떨었다. 요란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내려오는 빗줄기가 정자 지붕을 두들겨 나지막한 울림을 만들고 있었다.
"이래서야 여기서 꼼짝할 수도 없겠네."
비에 흠뻑 젖은 정자 계단을 내려다보며 키리히메가 중얼거렸다. 붓 뚜껑을 덮은 그녀는 서류 장부를 훌훌 넘겨보다가 이내 덮어버렸다. 행여나 습기를 먹어 종이가 울거나 하진 않을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 옆에 앉아있던 키 큰 청년이 맞장구치듯 고개를 끄덕였다. 비를 맞아 수면이 흔들리고 있는 연못을 멀리 내다보며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우에, 나 오늘은 딱히 창집에서 뽑은 적도 없는데. 비냐고......"
"오테기네는 비 싫어해?"
"비 자체가 싫은 건 아닌데, 예전에 쓰던 무식하게 커다란 창집이 말야. 그거, 비에 젖으면 엄청 무거워져서... 아, 생각하니 어깨가."
고개를 내두르며 오테기네는 제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키리히메는 그의 본체인 창을 흘끗 올려다보았다. 지금의 창집은 물을 머금을 것 같지는 않은 재질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오테기네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봄비니까 곧 그치지 않을까?"
"뭐, 막 쏟아지는 것도 아니니까. 그치만 계속 여기에 있는 것도 말이지.... 내가 가서 우산이라도 가져올까?"
"그랬다가는 오테기네 옷이 다 젖어 버리잖아."
키리히메는 목을 가로저었다. 오테기네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탈력감을 머금은 소리를 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비는 계속 내렸다. 지붕이 우는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꽃망울들이 떨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수면에 물그림자가 제대로 비치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문득 부는 바람이 빗방울을 조금 정자 안으로 날려보냈다. 차가움에 키리히메가 살짝 눈을 찡그렸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한동안 빗소리만이 울렸다. 수많은 빗방울들이 떨어지는 소리는 한 다발을 이루었지만,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 가운데에서도 한 줄기 소리 가닥을 건져낼 수 있었다. 후두둑 이어지는 빗소리 중에서 똑, 똑 하고 물방울이 간격을 두고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는 것을 오테기네는 가만히 들었다. 제멋대로 내리는 듯한 비였지만 의외로 규칙성이 있어, 마치 심장 소리처럼 편안한 박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정자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거슬러올라간 귀는 비를 맞아 목재가 울리는 소리를 잡았다. 신기하게도 빗소리의 인상이 점점 약해지고, 귓가에 들리는 소리는 물소리에서 작은북을 울리는 듯한 것으로 바뀌었다. 자신들을 둘러싸고 아담한 천막을 펼치는 듯한 소리였다. 실제로도 비에 둘러싸여 정자 안에 갇혔으니 별반 다를 것은 없기는 했다. 뒷목을 긁적이며 오테기네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퉁, 퉁 울리는 소리는 빗소리보다도 더욱 심장 소리에 가까웠다.
'심장 소리.....'
콩닥콩닥, 사람의 맨살을 몸 안쪽에서 두드리는 소리. 창으로 찌르면 얼마 안 가 사라질 정도로 약하지만 그 사람이 살아있는 한 몇십 년 동안 계속해서 나는 긴 소리. 실전에서 활약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오테기네였지만, 참근교대 등으로 사람의 손에 쥐여진 적은 많았기에 그 고동에는 익숙했다. 살아 있는 사람은 물론, 그들과 비슷한 형태의 몸을 지닌 지금의 자신에게서도 그 소리는 나고 있을 터였다. 아마도 그의 주인에게서도.
"오테기네?"
자신을 부르는 주인의 목소리에 그는 정신을 차렸다. 그제야 그는 자신의 눈이 더 이상 천장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언제부턴가 키리히메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라도?"
"어, 아니. 별 거 아냐."
반사적으로 대답했지만, 오테기네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못했다. 자연음을 담고 있던 귓가에 이제는 여인의 목소리가 맴돌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은 자신의 주인을, 정확히는 그 심장이 뛰는 곳을 시야에 담았다. 하얀 유카타에 감싸인 상체가 콩콩 울리는 것처럼 보였다. 색정적인 것과는 다른 의미로 가슴이 뛰었다.
"저기, 귀 대 봐도 돼?"
"응?"
무심결에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누구보다 오테기네 자신이 놀랐다. 입 밖으로 낼 생각은 없었는데, 처마에서 떨어져내리는 고인 빗물처럼 그 생각도 같이 후두둑 넘처내린 모양이었다. 키리히메의 가슴팍을 가리키던 손을 어물어물 거두면서 오테기네는 입술을 깨물었다.
키리히메는 가만히 오테기네를 바라보았다. 혐오나 환멸 같은 부정적인 인상이 드러나지 않는 표정이 되려 오테기네의 마음을 콕콕 찌르고 있었다. 방금 한 말은 그냥 넘겨달라고 오테기네는 말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키리히메가 고개를 끄덕였다.
"엥? 아, 잠깐, 진짜?"
키리히메는 말없이 팔을 내렸다. 귀를 대도 좋다고 몸동작으로 말하는 모습에 오테기네는 제 본체를 정자 바닥에 떨어뜨렸다. 목재 바닥이 쾅 하고 울었다.
허겁지겁 본체를 제대로 눕혀놓은 후, 오테기네는 천천히 제 주인의 가슴팍에 귀를 갖다대었다. 생각해 보니 이것이 두 사람 간의 스킨십 중 제일 수위가 높은 것이었다. 연인 관계도 아닌 이상, 두 사람 간의 신체적 접촉은 기껏해야 손으로 어깨나 등을 건드리는 정도였으니까. 딱히 그런 의도는 절대 없다고, 오테기네는 머릿속으로 자기 자신을 세게 쥐어박았다.
"시, 실례."
귓바퀴가 유카타 자락에 닿았다. 향을 옷에 쐰 것인지 옅은 향기가 코를 감싸왔다. 은은한 꽃향기에 아찔해지려는 정신을 붙잡고 오테기네는 귀에 신경을 집중했다.
콩, 콩 하는 심장소리가 확실히 들렸다. 단도 아이들이 경보하는 듯한 페이스로 울리는 소리가 멀찍이 울리는 빗소리와 어우러져 기묘한 합주를 만들어냈다. 따뜻한 소리라고 오테기네는 멍하니 생각했다.
"심장, 제대로 뛰고 있네."
"살아있으니까. 지금은."
한 마디를 덧붙이는 키리히메의 목소리가 유달리 쓸쓸하게 들렸다. 이 혼마루의 주인이 한때 망자였었다는 사실은 이 혼마루에서는 비밀이 아니었다.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하고, 경보는 이제 종종걸음으로 바뀌었다. 어쩐지 귓가에 닿는 체온이 아까보다 따뜻해진 것 같았다. 이런 모습을 보고 누가 이 사람을 한때 망자라고 짐작할 수 있을까. 평소 색이 옅어 유령 같은 인상을 주는 주인이었지만, 지금만큼은 그 존재감이 확실히 느껴졌다.
체중에 떠밀린 건지, 키리히메의 상반신이 살짝 뒤로 떠밀렸다. 오테기네는 그 등에 손을 올려 받쳤다. 가슴에 머리를 댄 채 상대를 반쯤 껴안은 자세가 되었지만, 심장 소리에 넋이 팔린 오테기네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가 안 것은 종종걸음이 이제는 달리기로 바뀌었다는 것뿐이었다.
"아, 빨라졌다."
"오테기네는 심장 소리를 듣는 게 좋아?"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지금은 마음에 들어."
그리 말하며 그는 무의식중에 더욱 파고들어왔다. 머리카락이 흔들려 한쪽 시야를 가렸지만 오테기네는 머리를 넘기지 않았다. 자신의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소리가 심장 소리를 가리게 하지 않겠다는 것 같았다.
키리히메는 자신의 심장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청년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귓가에 빗소리가 점차 잦아드는 것이 들렸지만, 그녀는 굳이 그것을 입에 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손을 올려 오테기네의 어깨를 붙잡을 뿐이었다.
'구 연성(200101 이전) > 구 도검연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抱 【톤보사니】 (0) | 2016.11.08 |
---|---|
鍛刀 【헤시사니】 (0) | 2016.11.08 |
花嫁【니혼사니】 (0) | 2016.11.08 |
질식 【니혼사니】 (0) | 2016.11.08 |
겨울 혼마루의 일상 (0) | 2016.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