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사니와(이름 및 독자설정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검사니 전력 60분: '질식'
날씨가 꽤 덥다. 창의 모습으로만 있을 적에는 창신이 좀 뜨겁다 이상은 그렇게 느끼지 못했는데, 인간과 비슷한 몸을 얻어 현현한 지금은 뼛속까지 푹푹 삶아질 정도로 더위가 느껴진다. 목을 축일까 해서 바지 주머니에 슬쩍 넣어뒀던 술을 꺼내 들이켜보지만, 그조차도 밭일 하는 동안 내리쬔 뙤약볕에 미지근해져 있다. 예상은 했지만 이런 낭패가. 부엌에 가면 시원하게 식혀둔 술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 주방 당번이 헤시키리 놈인 것을 떠올리고 고개를 젓는다. 그렇잖아도 더운데 말싸움으로 더 열이 오르는 건 사양이다.
해가 저물 때까지 그늘진 빈 방이라도 찾아서 쉬는 게 나을까 하는 생각에 저택 마루에 올라선다. 이 저택에 사는 녀석들은 족히 오십 명이 넘는다. 저택 규모는 제법 크지만 빈 방을 찾는 건 그리 쉽지 않다. 밭일 때문에 뭉친 어깨를 주무르며 방들을 기웃기웃해 보지만 이미 다른 녀석들이 점거하고 있거나 한바탕 어질러져 있다. 하카타가 들어와도 상관없지 않냐며 손짓하기는 했지만 괜찮다는 말을 돌려줬다. 형제들끼리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끼면 피차 불편하지 않겠냐.
정 빈 방이 없으면 안 쓰는 창고라도 쓸까. 정3위가 창고에 틀어박히는 건 우스꽝스럽겠지만 이 숨막히는 더위와 나른함에 시달리는 것보다야 낫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지막으로 남은 방 문을 열어젖힌다. 분명 이 방은 보통 다른 혼마루에서 손님이 왔을 때 내주는 객실이었지.
"응?"
방 안을 보자 더위에 눌려 감겨가던 눈이 번쩍 뜨인다.
깨끗하게 치워진 객실에는 딱 한 사람이 누워있다. 요 며칠 간 다른 혼마루에서 누가 찾아온 적은 없으니 당연히 이 혼마루 사람이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이 혼마루의 주인인 키리쨩... 아니, 키리히메다.
방 안을 휘휘 둘러봐도 다른 녀석은 없다. 보통은 근시를 맡은 녀석이 쫄래쫄래 따라다닐 텐데 웬일로 혼자인가. 그렇게 생각했다가 오늘 근시가 누구였는지를 떠올리고 납득한다. 야마부시 쿠니히로라고 했던가, 그 타치는 툭하면 수행이랍시고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니.
"어-이, 키리쨩?"
혹시나 해서 불러보지만 대답은 없다. 완전히 숙면 상태구만. 날씨가 이리 더우니 무리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 옆에 주저앉는다. 문을 닫으니 방 안은 꽤 시원해서, 잠에 빠지기에는 딱 좋은 조건이다.
그렇다고 해도 별일이다. 우리 주인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일에는 열심이라, 한낮부터 낮잠에 빠지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런데 이렇게 혼자 숨듯이 방 안에 누워있다니, 오늘 아침 해는 서쪽에서 떴었던가. 그렇게 생각하며 무심코 머리카락을 만진다. 하얀 머리카락이 촉촉히 젖어있다.
"몸이라도 씻은 건가."
날씨가 더우니 잠깐 물이라도 끼얹은 걸까. 슬쩍 그 자는 얼굴 가까이에 고개를 내려본다. 물기를 머금은 은은한 향이 마치 술잔에 갓 따른 새 술의 향취처럼 피어오른다. 목욕한 지 얼마 안 되어 마주칠 때 가끔 맡을 수 있던 그 향기다. 잘 익은 매실주가 떠올라 절로 입 안에 침이 고인다.
"으응."
이크, 너무 가까이서 킁킁거렸던 건가. 줄곧 조용히 바로누워 자던 키리쨩이 몸을 뒤척인다. 살짝 뒤로 물러나 앉으니 이 녀석,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살짝 벌어진 입술이 숨소리와 함께 조용히 떨리는 것이 퍽 탐스러워 보인다. 문을 꼭 닫았는데도 문틈으로 들어온 바람에 속눈썹이 나부낀다. 하얗고 가느다란 눈썹이 흔들거리는 것이 손짓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개를 숙여 입술을 가까이 가져다댄다. 숨소리가 들릴 법도 한데, 간지럽다는 듯 몸을 움츠리기는 해도 깨지는 않는다. 이렇게 무방비해서야 위험하지 않나. 깨어나면 얘기해 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입술을 겹친다. 몸을 씻을 때 입 안도 함께 헹군 건지, 머릿결에 묻은 향기와는 또 다른 달큰한 냄새가 들어온다. 미주의 마개를 따는 기분으로 혀를 뻗어 입술을 벌린다.
"으, 응...."
신음소리와 함께 숨을 들이키려 입이 빠끔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그 입 속에 숨을 불어넣으며 더더욱 진하게 달라붙는다. 살살 떨리는 턱을 손가락으로 잡아주며 깊이 허를 집어넣는다. 너무 가까이에 얼굴을 붙이고 있어 잘 보이진 않지만, 이 녀석은 지금쯤 숨이 막혀 얼굴이 새빨개져 있겠지. 그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과 좀 더 이 입술을 맛보고 싶은 마음이 뒤섞인다.
꽉, 팔을 움켜쥐는 손길이 느껴진다. 잠결인지 그 새 깬 건지 모르겠지만, 그 정도 악력으로는 어림도 없지 않을까. 피식 웃으며 입 속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작은 혀를 내 혀로 쓰다듬는다. 오랫동안 입을 맞대고 있자니 슬슬 이 쪽도 숨이 막혀오지만, 한계까지 버티며 상대를 맛보고 싶은 마음에 더욱 얼굴을 누른다. 바동거리는 몸짓이 마치 어린아이 손에 붙잡힌 아기새 같아서 퍽 귀엽다.
슬슬 이 쪽도 한계다. 맞닿은 입 사이에 틈새를 만들자 산소가 순식간에 빨려들어간다. 질식하기 일보 직전이었으니 뭐, 그럴 법도 하다. 입술을 가볍게 깨문 후 얼굴을 떼니, 아까 전까지 꼭 다물려 있던 눈이 어느새 뜨여 이 쪽을 바라보고 있다. 파란 눈동자가 흐트러져 일렁거리는 것이 똑똑히 보인다.
"여, 키리쨩, 잘 잤나?"
"하아... 하아..... 니, 혼고.... 무슨......"
"더위도 피할 겸 한숨 자러 들어왔더니 네가 자고 있더군. 그래서 말이지."
"아니, 그게 아니라!"
키리쨩이 몸을 일으키다 팩 앞으로 고꾸라진다. 아직도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슬쩍 어깨를 떠밀어 눕혀주니 표정이 흔들린다. 뭘 묻고 싶은 건지는 잘 알겠지만, 그거에 곧이곧대로 대답하는 것도 재미없잖나.
"더 자지 그러냐. 여기서 자고 있다는 건 오늘 할 일은 다 끝낸 것 같은데. 나도 그렇거든."
"밭일 끝났구나... 가 아니라, 니혼고!"
"응? 왜 그러냐, 아까 걸로는 부족했던 건가? 더 길게 해 줄 수도 있지만, 그랬다간 숨도 제대로 못 쉴 텐데."
놀리듯 말을 던지자 얼굴이 순식간에 화악 붉어진다. 그것이 꽤 재미있어 어깨를 두드려주며 슬쩍 옆에 눕는다. 더위를 피해서 들어왔으면서 뜨뜻한 체온을 옆에 하니 뭔가 목적을 잃어버린 것 같지만, 이 쪽이 더 마음에 드니 아무래도 좋다.
바지 주머니의 술병이 식도록 한쪽에 꺼내둔 후 그대로 키리쨩 쪽으로 몸을 돌려눕는다. 눈이 마주치니 안절부절 못하다가 이내 누운 채로 고개를 숙여버리는 것이 재미있다. 일부러 음냐음냐 소리를 내며 품에 안으니, 머릿결의 향기가 더욱 진하게 피어오른다. 이런 향기에 질식해 잠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눈을 감으니, 품 속에서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점차 잦아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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