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사니와(이름 및 독자설정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니와 키리히메는 도공에게서 칼을 받아들었다. 단도들보다도 작달막한 체구의 도공은 묵직한 일본도가 손에서 떠나가자 한시름을 던 듯한 표정을 지었다
도공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준 후 키리히메는 받아든 칼을 살펴보았다. 코시라에나 손잡이 없이 칼날만 만들어졌을 칼은 지금은 흰 천에 둘둘 감싸여 도신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직접 손을 대어 신력으로 읽어들이지 않는 한 정확히 어느 검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 길이에서 도종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정도는 짐작할 수 있게 될 정도로 키리히메는 제법 오랫동안 사니와 일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검을 수집하신 것입니까?"
갑자기 문가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키리히메는 딸꾹질을 삼키는 듯한 소리를 냈다. 불을 꺼뜨리고 재를 정리하던 도공은 아슬아슬하게 잿더미를 피해 나동그라졌다. 먼지가 휘날리자 키리히메는 소매를 들어 허공을 휘저었고, 문가에 나타난 인물은 빠른 걸음으로 안에 들어왔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으, 응. 괜찮아. 나보다 도공이 지금 넘어져서......"
키리히메는 바닥 쪽을 돌아보았다. 도공은 발갛게 변한 이마를 감싸쥐고 앓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비명 하나 내지 않은 것은 이 도공이 목소리를 채 받지 못한 어중간한 츠쿠모가미이기 때문이리라.
간신히 일어나던 도공은 자신을 향해 내리꽃힌 등나무빛 시선에 다시 주저앉았다. 날카로이 벼려진 눈초리가 한순간 도공을 슥 훑어보았다. 그마저도 그리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다.
"제대로 일어난 것 같으니 괜찮겠지요."
"그럼 다행이지만. 하세베, 수리는 끝난 거야?"
"예, 보시다시피. 주군께서 염려해주셨던 부분을 전부 깔끔하게 고치고 왔습니다."
하세베는 한손을 가슴에 얹고 가볍게 몸을 내밀며 말했다. 사니와에게 자신의 모습을 내보일 때의 그의 눈빛은 아까 전 도공을 보던 것과 같은 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따뜻했다.
키리히메는 웃으며 그의 왼쪽 어깨를 털어주었다. 보라색 외투는 갓 세탁하여 말린 것처럼 깔끔해서, 털어주어도 먼지는 별로 나지 않았다. 새벽에 출진했다가 어깨에 칼을 맞은 채 돌아왔던 것이 거짓말 같았다.
"미안해, 새벽부터 일에 보내서."
"주명이라면 언제 무엇을 시키셔도 저는 기꺼이 해냅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보다......"
정중하게 말하던 하세베는 중간에 말에 공백을 두었다. 그의 시선이 키리히메가 품에 안고 있는 길다란 물건을 향했다.
"새로운 검을 수집하신 것입니까?"
"새 배합이 보고됐으니 시험해보고 결과를 보내라고 위에서 이야기가 와서. 아직 어떤 검인지는 몰라."
"그렇습니까."
하세베는 덤덤하게 대꾸했다. 키리히메는 칼을 감싼 천을 꼭 부여잡았다.
"어떤 검인지는 풀어봐야 알 것 같아. 장비를 만들기 전에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괜찮을까?"
"주군께서 원하시는 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하세베는 키리히메를 문 쪽으로 이끌었다. 키리히메는 종종걸음으로 대장간을 나섰고 하세베는 그 뒤를 따랐다.
문을 나서기 전, 하세베가 흘끗 대장간 안을 돌아보았다. 그와 눈을 마주친 도공은 눈으로 전해져오는 싸늘함에 표정으로 비명을 질렀다.
대장간 곁에는 신당(神堂)이 있었다. 창칼의 신령인 도검남사들의 거처인 혼마루에서는 이상할 것 없는 배치였다.
키리히메는 신당 한가운데, 평소에는 근시를 맡은 남사가 장비를 만들기 위해 앉는 자리에 앉았다. 그 때까지 품에 붙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천을 푸는 것을 하세베가 맞은편에 앉아 지켜보았다.
"최근에는 검을 유달리 자주 만드시는군요."
"요즘 새로 보고되는 조합이 많은 모양이야. 의뢰패가 모자랄지도 모르겠어."
쓴웃음을 지으며 키리히메는 천을 슥 잡아당겨 폈다. 그녀와 하세베 사이를 가르듯 가로누인 칼이 창으로 비쳐든 햇살을 받아 빛났다. 메이(도공명)가 새겨지는 부분부터 시작해 칼등을 훑어가는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숨조차 내쉬지 않으며 칼을 읽어 내려가는 키리히메를 하세베는 줄곧 바라보았다. 주인의 눈이 새 검을 신중히 살펴보는 것을, 한동안 눈꺼풀이 그 눈을 덮고 파르르 떠는 것을 그는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이읔고 키리히메가 손을 떼고 어떤 도검의 이름을 입에 담을 때에야 하세베는 바닥으로 눈을 돌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 검은 이미 와 있는 자로군요."
"그렇네. 어렴풋이 짐작은 했었어."
사실 현 시점에서 더 이상 새로이 불러낼 수 있는 남사도 없긴 했다고 덧붙이며 키리히메는 칼을 다시 천으로 감쌌다. 은빛 날이 흰 천에 몇 겹으로 감싸여 보이지 않게 되자, 그녀는 그것을 부여잡은 채 몸을 일으키려 했다.
"주군, 괜찮다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하세베가?"
하세베의 말에 키리히메는 무릎을 세우고 반쯤 일어선 자세로 멈춰섰다. 고개를 끄덕이는 하세베의 손에는 어느새 가져간 것인지 방금 전까지 그의 주인이 들고 있던 짐이 옮겨가 있었다.
"곧 점심을 드실 때이지요? 이것은 제가 처리하겠으니 주군께서는 식사를 드셔 주십시오."
"하세베도 배고플 텐데. 새벽부터 출진했었고."
"저는 주군의 신력과 명령만 있다면 아무런 문제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하세베는 허리를 펴고 똑바로 섰다. 곧게 선 자세를 본 키리히메는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입을 가리고 배시시 웃었다.
"하세베는 늘 변함없네. 그러면 부탁할게, 대장간에 가져다 두면 도공이 알아서 자재로 되돌려 줄 거야. 하세베가 올 때까지 안 먹고 기다릴 테니까 빨리 와."
"주명을 받들겠습니다."
하세베의 목소리는 일견 평소처럼 담담했지만 어딘가 힘이 들어가 있었다. 어떤 형태로든 명령을 내릴 때면 하세베는 꼭 그런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했다. 끝나면 바로 연회장 겸 식당으로 오면 된다고 말을 남긴 후, 키리히메는 그 자리를 떴다.
나무신이 따각따각거리는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하세베는 옅은 미소를 머금은 표정을 유지했다.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 하세베는 천천히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을 내려다보았다. 흰 천에 감싸인 우치카타나를 응시하는 그의 표정에서는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한손이 문득 칼의 한쪽 끝을 움켜잡았다. 천에 감싸였다고는 해도 본디 그 아래 있는 것은 날카로운 칼날이니만큼 손이 아플 것이었다. 그럼에도 하세베는 손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칼을 우악스럽게 틀어쥔 손은 제 아귀에 들어온 그것이 조각나지 않는 것이 더없이 원망스럽다고 소리없이 외치고 있었다.
손에 깊게 눌린 자국이 패이고도 한참 지나서야 하세베는 손아귀의 힘을 풀었다. 흐트러져 살짝 속알맹이가 드러난 짐을 내려다보며 그는 야릇한 냉소를 띄웠다.
"안됐군."
우월감에서 흘러나온 웃음을 머금은 채 하세베는 입을 열었다. 주인에게서 신력을 받지 못해 그저 날카롭게 다듬어진 쇳덩이에 불과한 것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언뜻 보기에는 오싹하기까지 했다.
곧 하세베는 고개를 저었다. 한순간 그는 자기 자신을 비웃었다. 아직 남사의 모습을 취하지조차 못한 칼에까지 질투심을 느끼는 자신은 어떻게 되어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주군께서 명하신 대로, 빨리 처분하고 가야겠군."
자신에게 들려주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하세베는 신당을 나섰다. 밖에 나와 고개를 돌리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대장간에서는 그새 새로운 검을 또 만들기 시작한 건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세베는 잠시 그 건물을 원망스럽다는 듯 쳐다보았다. 곧 그는 머리를 붕붕 흔들어 표정을 털어내고는 대장간 문을 세게 열어젖혔다.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한쪽으로 밀어버린 그 동작은 마치 그 충격으로 대장간 전체가 와르르 무너져내리기를 바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