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사니와(이름 및 독자설정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님은 포근포근해서 좋아!"
우라시마가 보비작대며 말했다. 그 말에 사니와 키리히메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요즘 조금 살이 찐 걸까, 나?"
"으응? 그건 모르겠어. 그치만 주인님이 이렇게 안아줄 때면 말랑말랑하고 폭신폭신해."
"고마워, 우라시마."
키리히메는 제 품에 안긴 와키자시의 머리를 꾸욱 눌렀다. 그녀의 품에 얼굴을 파묻은 와키자시 소년은 콧노래 같은 웃음소리를 내며 더욱 달라붙었다. 그 모습에 그들 곁에 앉아있던 나마즈오와 모노요시가 동시에 목소리를 높였다.
"앗- 우라시마만 안아주고! 저도 원정 수고했다구요!"
"그래요. 저도 이번 원정이 대성공하도록 행운을 가져왔었어요."
"응, 나마즈오도 모노요시도 고마워."
"헤헤, 그럼 저도 안아주는 거죠? 에잇!"
우라시마가 살짝 팔을 푼 틈을 타 나마즈오가 그를 옆으로 밀어내고 주인의 품에 매달렸다. 우라시마가 부부 하고 입을 비죽 내밀었지만 키리히메는 쓰게 웃으면서도 나마즈오의 머리를 매만져 주었다. 어느새 곁에 바짝 다가온 모노요시가 눈을 반짝이며 주인의 이마에 슬쩍 제 머리를 눌렀다. 세 명의 와키자시를 보듬어 주며 사니와는 연신 행복한 듯 웃고 있었다.
그 때, 아직 열려 있던 방 입구 쪽에서 헛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키리히메가 모노요시의 등을 토닥여주다 말고 고개를 들었고, 세 와키자시도 햇살이 들이치는 쪽을 돌아보았다.
"이야기하는 중에 실례하네만, 곧 연습전 시간이네. 다른 와키자시 공들이 기다리고 있네만."
"아, 벌써 그런 시간이군요. 그럼 주인님, 이번 연습전도 이기고 올게요!"
모노요시가 먼저 몸을 떼고 일어섰다. 키리히메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자 하얀 와키자시는 다른 두 명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우라시마와 나마즈오는 잠시 샐쭉한 표정을 짓더니 주먹으로 손바닥을 팡 두들기며 사니와의 집무실에서 나갔다.
와키자시 소년들의 목소리가 잦아들자, 톤보키리가 방에 들어와 문을 닫았다. 책상 곁에 꿇어앉아 본체를 한켠에 내려놓는 그에게 키리히메는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다.
"미안해, 원래는 내가 가지러 가야 했던 건데."
"연락을 전달하는 것 또한 근시의 일입니다. 심려치 마십시오. 그보다 주군, 방금 와키자시 공들은...?"
"아, 응. 잠시 장기 원정을 보냈었어. 대성공을 거두고 돌아왔다고 다들 뿌듯해하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까... 주군께서는 와키자시 공들과 사이가 좋으시군요."
서신을 주인의 책상에 올려놓으며 톤보키리는 담백하게 말했다. 키리히메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신을 폈다.
"와키자시들, 귀여우니까."
"외람되오나, 그 단어에는 조금 어폐가 있지 않을지요? 아오에 공의 경우도 있고..."
소년이라기보다는 성인 청년의 외관인 닛카리를 떠올리며 톤보키리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도 그렇다고 말하면서도 키리히메는 계속 웃고 있었다. 다음 서신의 봉인을 뜯는 그녀의 손길이 유독 경쾌해 보였다.
톤보키리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휘하의 남사들과 사이가 돈독한 것은 좋은 일이나, 방금 그가 목격한 모습이 일상이라면 그건 문제가 있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주종 관계로서의 태도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들 역시 여엇히 몇백 년을 살아온 츠쿠모가미들이었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톤보키리 자신보다도 나이가 많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을 어린 소년으로 보며 품에 안아주는 것은 위험하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하니 머리와 가슴 속이 동시에 지끈거렸다. 뜻모를 답답함을 느끼며 톤보키리는 제 이마를 짚었다.
그 때, 편지를 전부 읽은 키리히메가 그를 빤히 응시했다. 그녀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근시의 이름을 불렀다.
"톤보키리, 괜찮아?"
"예? 아, 예,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 조금 피로하였던 모양입니다."
톤보키리는 서둘러 둘러댔다. 그리고 방금 자신이 둘러댄 변명을 믿기로 하였다. 가슴 속이 점점 더 지끈거리는 진짜 이유를 눈치챘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를 보는 키리히메는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곧 그녀는 몸을 돌려 두 팔을 살며시 벌렸다. 톤보키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기도 전에 사니와는 말을 꺼냈다.
"안아줄까?"
"예?!"
톤보키리는 하마터면 입을 쩍 벌린 채로 굳어질 뻔했다. 그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혹시 앉은 채로 선잠에 빠졌던 건 아닐까, 그래서 무엄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머리를 짚고 있던 손을 내려 다다미 바닥에 손가락을 꽉 누르면서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주군께 그러한 행동을 청하는 것은......"
"하지만 피곤해 보이는걸."
"허나 그렇다고 신하의 몸으로 주군의 품을 빌리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까."
"와키자시들이나 단도들도 곧잘 안아주는걸."
"하, 하아....."
자신은 그들과는 외관이 다르지 않냐고 말해야 할지, 도종에 관계없이 그렇게 가벼이 품을 허락하는 건 좋지 않다고 말해야 할지 톤보키리는 고민했다. 그러나 그 중 어느 말도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의미심장한 이유 따위 없다고 말하는 키리히메의 표정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그의 주군이 안아주었다고 말한 와키자시나 단도들을 향한 뜻 모를 화였다.
한숨을 쉰 톤보키리는 알겠다고 말하며 주인을 향해 가까이 몸을 당겨 앉았다. 피로보다는 긴장감을 느끼며 주인을 바라보려던 그 때, 키리히메가 머뭇머뭇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말한 대로, 키리히메는 톤보키리를 껴안아 주었다. 그러나 모양새는 사니와 쪽에서 제 근시에게 매달린 것에 가까웠다. 끌어당길 심산이었겠지만 톤보키리는 제 주인보다 키며 체격이 한참 컸기에 그런 모양이 된 것이리라. 키리히메 본인도 그것을 알아챈 것인지, 그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끌어안는 자세를 취하려 바동바동 움직였다. 그 일환으로 근시의 목을 꼭 그러안으며 그녀는 속삭였다.
"자세는 이상하지만... 이 자세, 괜찮아?"
"네......"
톤보키리는 완전히 굳어버린 채로 입만 벙긋거렸다. 키리히메가 배시시 웃으면서도 곧 자세가 무너질 듯 바들바들 떠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를 제 한쪽 무릎 위에 올리고 등을 손으로 받쳐주자 비로소 떨림이 잦아들었다.
가슴과 가슴이 밀착하자, 귀가 아닌 몸으로 심장 박동이 들려왔다. 빠른 박자로 콩콩거리는 소리였지만 무척 무겁게 들렸다. 심장소리를 끊은 적은 많지만, 그 소리가 계속 나는 것을 이렇게 듣는 건 처음이었기에 퍽 긴장하는 톤보키리였다.
와키자시들이 어째서 주인에게 안아달라고 그토록 이야기했는지 알아버릴 것 같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키리히메의 등에 올린 손에 힘을 주었다. 꾹 몸이 눌리자 옷깃에 감싸인 보드라운 촉감이 더욱 생생히 느껴졌다. 보드라운 천 너머로 느껴지는 말캉말캉한 느낌에 톤보키리는 이를 꽉 악물었다. 제 본체의 창날이 고운 천에 감싸인다면 이런 기분일까, 그는 애써 다른 쪽으로 생각을 돌렸지만 완전히 그 감촉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따뜻해."
그렇게 중얼거리는 키리히메의 목소리가 따뜻했다. 톤보키리는 무어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지금 입을 열면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는 야릇한 감정이 여과되지 않고 그대로 쏟아져나올 것 같았다. 안 될 일이라고 그는 자신을 향해 되뇌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그의 손은 어느새 주인의 등을 쓸어주고 있었다.
문 밖으로 다른 이들이 조르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때에도 손은 풀리지 않았다. 문득 어디선가 들린 물소리 같은 것에 겨우 정신을 가다듬을 여지가 찾아왔다. 톤보키리는 그제야 손을 멈추고 주인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키리히메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닿았다.
"톤보키리, 좋아."
평소 키리히메의 어조와는 퍽 다른, 어린아이 같은 투명한 말이었다. 그녀가 무의식중에 흘린 말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톤보키리는 놀라서 눈을 깜작였다. 키리히메는 그에게서 조용히 팔을 풀고 몸을 내렸다. 제 말을 알아차린 건지, 그녀는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채 한손 소매를 올려 입을 가리고 있었다. 파란 눈 속의 눈동자가 바닥과 근시 사이를 바삐 굴러다녔다.
그 모습이 무언가를 불러일으켰다. 톤보키리는 더 이상 입을 앙다물지 않았다. 힉 하고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나기도 전에,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주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