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사니와(이름 및 독자설정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검사니/사니검 잡지 합작 '월간 사니와 2월호'에 참여했던 작품입니다.
http://monthly-saniwa.tistory.com/3
겨울 혼마루의 일상
야마토 국(大和国), 사니와 키리히메(霧姫)
야마토 국에는 이매망량의 세계 끝자락에 자리잡은 혼마루가 있다. 계절의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여 지금은 눈에 뒤덮여 있는 고풍스러운 일본식 대저택에는 총 51명의 도검남사와 1명의 사니와가 살고 있다.
본 코너에서는 해당 혼마루의 사니와의 도움을 받아, 사니와의 시점에서 혼마루의 하루를 생생하게 재구성해 보았다.
[一. 아침]
눈을 뜬 후 이불 밖으로 나오기까지는 한참 시간이 걸린다. 실내지만 한겨울의 추위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국의 문물을 차용한 혼마루 중에는 다양한 난방법을 이용하는 모양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저택에는 그러한 시설이 아직 갖춰져 있지 않다.
무거운 이불과 잠기운을 동시에 걷어낸 후 옷을 갈아입으며 확인한 시간은 오전 일곱 시. 겨울치고는 이른 감이 있지만, 근시가 깨우러 오는 시간을 감안하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아니나다를까, 겨울용 옷의 옷매무새를 다듬은 직후 문 너머에서 기척이 들린다. 오늘 근시는 톤보키리다. 창호지 문 너머의 부름에 응답하며 머리를 정돈한다.
방문을 열고, 방문 옆에 꿇어앉아 있던 톤보키리를 일으켜 세운다. 그럴 필요 없다고 이야기해도 그는 나를 데리러 올 때면 항상 문 밖에 공손히 꿇어앉는다. 신하로서는 당연한 도리라고는 하지만, 그걸 따지자면 신인 그가 인간인 내게 무릎을 꿇는 셈이 되니 훨씬 이상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는다. 일전에 비슷한 말을 했을 때 톤보키리가 당황했던 것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니까.
아침 식사가 준비되기를 기다리며 집무실에 발을 들여놓는다. 식사가 끝난 후 있을 아침 조례를 실수 없이 열기 위해서다. 유독 자료가 흐트러져 있는 것에 잠시 의문을 품지만, 어제 근시가 아이젠이었던 것을 떠올리고 납득한다. 아이젠은 의욕은 넘치지만 정리하는 일에는 서투르다. 문득 옆을 돌아보니 톤보키리가 쓴웃음을 지으며 전적이 적힌 장부를 그러모으고 있다. 가벼운 담소를 나누며 그에게 넘겨받은 장부를 훑어본다.
그날의 식사 준비조인 단도들에게 이끌려 연회장에 들어선다. 점심이나 저녁은 어쩔 수 없다손 쳐도 아침만은 모두가 모여서 함께 먹는 것이 이 혼마루의 방침이다. 근시와 함께 자리에 앉아 합장을 하자 여기저기서 수저를 드는 소리가 난다.
아침 식사는 가짓수는 적은 대신 양이 많다. 새로이 내려진 임무 때문에 혼마루가 바쁜 지금, 아침 식사는 든든하게 먹어둬야 한다. 근시 옆에 앉아 젓가락질을 하며 다른 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자리가 정해진 것은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는 대상도 늘 바뀌는데, 오늘은 지로타치다. 반주라고는 해도 너무 마시는 건 좋지 않다고 얘기하던 중 문득 옆을 돌아본다. 톤보키리는 타로타치와 뭔가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를 주고받고 있다. 아네가와에서 날을 맞댄 적이 있어서일까, 이 둘이 마주앉아 있으면 묘하게 긴장감이 흐른다. 그 때 갑자기 헤실헤실 웃는 소리가 들려 황급히 고개를 돌린다. 지로타치는 눈썰미가 지나칠 정도로 좋다.
식사가 끝나고 상을 전부 내간 연회장은 52명이 널찍널찍 늘어앉아도 공간이 남아도는 커다란 회의장으로 변한다. 눈앞에는 적당히 키 순서를 맞춰 앉은 50명의 남사들이, 단상 아래에는 근시가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마음 속으로 심호흡을 한 후, 남사들에게 오늘의 일정을 이야기한다.
지금은 연대전 기간이다. 히게키리와 히자마루는 이미 맞이했지만, 연대전 지역에 매일 출진하는 것을 잊지 말라는 방침이 상부에서 내려와 있는 상태. 한 번 출진에 3개 부대를 동원해야 하는 만큼 지금의 혼마루는 평소 이상으로 바쁘다. 출진자 명단을 발표하며 이름이 불린 남사들과 한 번씩 눈을 마주친다. 더러는 기대에 차 눈을 반짝이고, 더러는 걱정과 각오가 뒤섞인 표정을 지으며, 더러는 웃음 서린 시선을 돌려준다. 원정에 출진할 남사들까지 발표한 이후 잠시 근시에게 눈을 돌린다. 잔잔한 웃음을 띄운 듬직한 얼굴이 위안이 된다.
조례가 끝나고 조금 시간이 흐른 후, 출진하는 이들을 배웅하러 문 앞까지 나온다. 바깥 거리로 나가는 문과 달리, 출진하러 나서는 문을 열면 다른 시간으로 뛰어들게 된다. 1부대 대장인 히게키리에게 당부하는 말을 전한 후 문을 여는 데 필요한 허가증을 내준다. 평소에는 6명만을 내보내는데 이번에는 연대전 때문에 총 3개 부대, 18명이 출진하는 것을 뒤에서 지켜본다. 평소 이상으로 먹먹해지는 마음에 가슴을 누르고 있자니 어깨를 감싸는 두터운 손길이 느껴진다. 톤보키리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발걸음을 돌린다. 밤 사이 한층 더 쌓인 눈 위로 오늘 출진이 없는 단도들이 굴러다니며 노는 모습이 보인다.
점심을 먹기 전에 상부에 보낼 글을 적어야 한다. 등 뒤에서 톤보키리가 나중에 눈을 다시 쓸어야겠다고 작게 중얼거리는 것이 들린다.
[二. 한낮]
상부에 전달할 글이 다 쓰였다. 콘노스케를 불러 그 등에 두루마리를 묶어준다. 여우를 배웅하고 나면 그제서야 오늘의 서류 업무가 다 끝난다. 손목을 주무르고 있으니 무사히 일이 끝난 것을 축하한다는 말이 들려온다. 화로의 불씨를 갈다 이쪽을 바라보는 톤보키리에게 웃어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출진한 이들이 돌아온다는 신호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돌아온 이들과 함께 연회장으로 향한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서이다. 배가 고프다며 달려가던 아츠시가 눈길에 미끄러져 그대로 넘어진다. 강아지를 잡아올리듯 톤보키리가 아츠시의 허리를 잡아 일으키고 연회장에서 이치고가 황급히 달려온다. 평화로운 일상에 무심코 웃어버리고 만다.
점심을 먹으며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두 시. 늦은 편이다. 마주앉은 고토가 허겁지겁 반찬을 입에 넣는 것도 이해가 간다. 오후에는 찹쌀떡이라도 화로에 굽는 게 어떨까 하고 넌저시 톤보키리에게 물어본다. 50인분을 구우려면 수고가 많이 들 것 같다고 하면서도 그의 표정은 부드럽다. 며칠 전 사둔 것도 있으니 괜찮겠지. 고개를 끄덕이자 근처에 앉아있던 단도들과 우라시마가 더 신나한다.
원정 부대를 재정비해 보낸 후, 식사 중에 이야기했던 찹쌀떡 굽기에 열중한다. 철망을 얹어놓고 하얀 떡을 여럿 얹어놓으니 맛있는 향기를 내뿜으며 서서히 부풀어간다. 생전에는 시중드는 이들이 구워서 가져오는 것만을 봤기에 이러한 경험은 귀중하다. 화로를 둘러싸고 앉은 아키타와 미다레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다. 그들 중 한 명이 참지 못하고 떡을 폭 찌르려는 것을 마에다가 막는다. 웃으며 얼추 익은 떡을 접시에 덜어 내려놓자 잽싸게 사요가 그것을 채간다. 사요는 그래 보여도 주전부리가 나오면 꽤 반응이 빠른 편이다.
계속 찹쌀떡을 굽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허리를 펴고 밖을 내다보니 갑자기 정원에 흑마 한 마리가 날뛰며 달려들어온다. 미쿠니구로, 하고 말의 이름을 부르며 톤보키리가 일어선다. 밖으로 나가보려는 내게 안에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그는 버선발로 정원에 뛰어나간다. 말의 고삐를 낚아채는 모습은 체격과 맞지 않을 정도로 날렵하다. 아직도 여기까지 들릴 정도로 울음소리를 내는 미쿠니구로를 진정시키는 톤보키리의 옆에 내번복 차림의 타누... 도다누키와 시시오가 뛰어온다. 마구간을 청소하던 중 말이 제멋대로 나가버린 모양이다. 흔하지는 않지만 간혹 있는 일이다. 도다누키의 손에 고삐를 건네주고 이쪽으로 돌아오며 톤보키리가 쓴웃음을 흘린다. 그에게 막 구운 찹쌀떡을 건네며 수고했다는 말을 건넨다.
밭당번인 이즈미노카미와 무츠노카미에게 떡을 건네주고 오겠다며 호리카와가 자리를 비우자 방이 조용해진다. 방에 남아있는 이들로 말하자면 고코타이와 히라노는 잠이 들었고, 나가소네와 카슈는 이쪽에서는 보이지 않는 화첩 같은 것을 펼쳐놓고 뭔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다른 이들도 각자 소일거리를 찾아 나가거나 자리에 눕고 있다. 저녁 가게들이 문을 열기 전까지는 잠시 휴식 시간이다. 다리를 고쳐 앉으니 자연스레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겨울 들판을 걷는 나그네를 묘사한 노래를 읊으며 바깥을 내다보고 있으니 옆에 시선이 느껴진다. 본체에 윤을 내던 톤보키리가 어느새 손을 멈추고 이쪽을 보고 있다. 누군가가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한층 더 목소리에 신경을 쓰게 된다.
[三. 저녁]
이매망량의 세계에는 저녁이 되어서야 문을 여는 가게도 여럿 있다. 어둑해지려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톤보키리와 함께 정문을 나선다. 소금 주문하는 것 잊지 말아달라고 등 뒤에서 하카타가 목소리를 높인다.
저녁 상점가는 등을 환하게 밝혀 불야성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광경이 되어 있다. 오가는 이들도 전통복을 걸친 이부터 2200년대에 어울리는 옷을 걸친 이들까지, 인간과 구분이 가지 않는 용모를 지닌 이부터 도저히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외관의 요괴까지 다양하다. 그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며 걸음을 옮기고 있으니 위험하다며 톤보키리가 어깨를 끌어당긴다. 걸음을 고쳐 걸으며 들르기로 한 가게들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혼마루에 돌아오니 저녁 6시가 넘어간다. 어깨에 둘러맨 옷감을 내려놓으러 톤보키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먼저 연회장으로 향한다. 기다리거나 동행하겠다고 했지만 그가 거절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연회장 문을 여니 막 원정에서 돌아온 것인지 이와토오시가 손을 흔들며 맞은편의 빈자리를 가리킨다. 톤보키리의 자리까지 옆에 있는지를 확인한 후 그 쪽에 가서 앉자. 옆자리의 이마노츠루기가 팔을 벌려온다. 그를 껴안고 등을 토닥여주고 있으니 멀리서 톤보키리가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오테기네와 야마토노카미가 대련장 청소가 늦어졌다면서 황급히 뛰어들어오자 자리가 다 채워진다. 요행히도 오늘 저녁 식사는 혼마루의 전원이 모여있다. 내 합장을 신호로 여기저기서 수저 드는 소리가 울린다. 오늘 저녁은 음식 선정에 꽤 공을 들인 기색이 역력하다. 메추라기 요리를 적당히 접시에 덜어 입에 넣는다. 특히 좋아하는 요리다. 몇 입 더 먹고 있으니 옆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옆을 바라보자 톤보키리가 황급히 차를 마시다가 잔기침을 뱉는다. 그렇게 이상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하고 이와토오시에게 물어도 웃음을 터뜨릴 뿐 제대로 된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목욕을 마치고 복도를 걷다가 문득 톤보키리와 마주친다. 서로 네마키 차림이라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간신히 누른다. 헛기침을 한 톤보키리가 역시 주군의 목욕 시간이 제일 앞에 있는 게 맞지 않겠냐고 묻는다. 그는 여전히 내가 제일 마지막에 목욕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언제나처럼 괜찮다는대답을 돌려주며 그의 본론을 기다린다.
머뭇거리는 말 사이로 전해진 용건에 무심코 웃어버리고 만다. 그 날의 야간 순찰 담당인 오테기네와 니혼고가 본체를 손질하다 잘못해서 이불을 찢었다니. 이불을 꿰매는 것 정도야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 가서 수선하겠다고 하자 그가 면목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반짇고리를 손에 들고 창들과 나기나타가 쓰는 방으로 향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다른 방문 앞을 지나가던 중 단도들의 방 중 하나에서 이와토오시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갸웃거리자 톤보키리가 설명한다. 이와토오시는 단도들과 놀아주기로 한 모양이다. 니혼고와 오테기네는 순찰 중일 테니 방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피가 오른다. 톤보키리가 헛기침을 연거푸 토해내는 게 들린다.
심호흡을 하고 방에 들어선다. 아직 자정까지는 멀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이불이 펼쳐진 방 한쪽에 앉아 반짇고리를 연다. 이 이불을 꿰매고 나면 오늘 하루도 끝을 고하겠지. 내일 근시는 모노요시였던가? 등 뒤에서 톤보키리가 문을 닫는 소리를 들으며 그런 생각을 떠올린다.
- 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