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사니와(이름 및 독자설정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검사니 전력 60분: 重상
어둑한 정원 한가운데를 등불이 하늘하늘 걸어갔다. 그 등불을 쥔 손은 창백하니 가느다랬다.
그 날은 바람이 꽤 찼다. 여인은 잠옷 위에 걸친 솜옷을 꼭 여미며 걸음을 재촉했다. 목욕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조금 젖어 있는 머리카락이 차가웠다.
잰걸음으로 타박타박 울리던 발소리가 어느 방문 앞에서 멈췄다. 어두침침한 것은 바깥 하늘이나 양옆의 다른 방과 다를 바 없었지만, 등불을 조금 멀찍이 두고 자세히 보면 안쪽에 아직 불빛이 켜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인기척을 냈다.
"누구냐?"
"아직 일어나 있었네."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가 문 안쪽에서 들려왔지만 여인의 태도는 침착했다. 그녀는 품에 안은 꾸러미를 한손으로 꼭 안으며 마루 위로 올라왔다. 방 안의 인물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이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들어오던가."
"실례합니다."
여인은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오늘 수리실은 이 방 외에는 전부 비어 있었기에 딱히 큰 소리를 내도 문제는 없었지만, 조용한 밤이 행동 하나하나를 억누르고 있었다.
수리실 안은 작업장과 침실을 섞어놓은 듯한 기묘한 풍경이었다. 한쪽에는 숫돌과 연마제, 우치코 등이 제각기 선반 위에 있거나 바닥에 놓여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책이 몇 권 꽂힌 선반이나 주전부리 접시 등이 있을 터였지만 밤인데다 등불이 바닥 한켠만을 비추고 있어 어둠 속에 파묻혀버렸다.
한두 명이 지낼 정도의 크기인 수리실 한쪽에는 언제나 사람 한 명 분의 이불과 베개가 구비되어 있었다. 워낙 자주 쓰이는 탓에 아예 개지도 않고 상시 펼쳐놓는 침구였다. 여인이 방에 들어선 그 때에도 그 이불에는 누군가가 누워 있었다.
방문을 소리없이 닫은 여인은 등불을 한켠에 내려놓았다. 그녀의 파란 시선이 닿은 곳에는 우락부락한 인상의 청년이 누워 있었다. 잠시 여인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홱 천장을 향해버린 그 노란 시선은 평소보다 유독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악의나 혐오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여인은 알고 있었다.
"피는 멎었어?"
"몇 시간이나 지났다고 생각하는 거야, 진작 멎었다."
청년은 혀를 쯧 차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들어올려지던 상체가 뭔가에 걸린 듯 우득 멎었다. 그는 한쪽 어깨를 감싸쥐다가 그대로 자리에 누워버렸다.
여인은 한숨을 쉬며 품에 소중히 안고 있던 꾸러미를 내려놓았다. 천이 스륵 풀리는 소리가 나자 청년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썹을 찌푸렸다.
"별 필요 없다고 했는데."
"기분 문제야."
"어차피 고치면 원래대로 돌아가."
"그렇네."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한켠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던 너덜너덜한 검은 천을 들어올렸다. 쫙 펼치자 그것은 천이 아니라 투박한 외투였다. 여기저기 찢어지고 터져 얼핏 보면 넝마 비슷하게 되어버린 옷이었다. 여인은 잠시 고민하더니, 꾸러미에서 바늘과 검은 실타래를 꺼냈다. 그녀가 바늘귀에 실을 꿰는 동안, 누워있던 청년이 재차 혀를 찼다.
"차라리 도움패를 달라고. 그거면 바로 다음 싸움에 나갈 수 있잖아."
"지금은 다들 자는 시간이라 출진이 없어."
"젠장, 벌써 네 시간째 여기에 처박혀 있구만......"
"타누키, 그만큼 중상이었으니까."
"타누키는 관두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냐. 도다누키든 도타누키든 상관없는데 타누키는 관둬."
역광 때문에 도다누키의 표정은 그 자신이 의도한 것보다도 더 험악하게 비쳤다. 그러나 여인은 쓴웃음으로 그 인상을 흘려넘겼다. 그녀는 옷에서 제일 크게 터진 부분을 고이 맞추더니 바느질하기 시작했다.
곧 수리실은 바늘이 천을 꿰뚫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해졌다. 여인은 이따금 옷의 천을 팽팽히 당겨보거나 실을 자르며 차분히, 그러나 제법 빠른 속도로 손을 놀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세 번째 터진 부분을 메꾸고 다음으로 넘어가려던 바느질이 문득 멎었다.
"창에 맞았어?"
"어. 젠장, 그 속도는 반칙이라고, 반칙."
"그래도 이겼잖아. 닛카리 말로는 타누키가 제일 공적을 세웠다던데."
"얕보여 놓고 가만 있을 것 같냐, 내 옆구리를 찌른 놈은 머리를 날려줬지."
한순간 도다누키의 눈이 전장에 있을 때처럼 빛났다. 마치 전장을 되새기듯 그는 누운자리에서 칼을 휘두르는 듯한 동작을 하려 했다. 동작을 다 하지 못한 건 어깨며 옆구리 등에 남아있는 상처가 비명을 질렀기 때문이었다.
여인은 그저 덧댈 천을 꺼냈다. 조금만 더 자신의 몸을 돌봐 주면 좋으련만. 지금처럼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힘들 정도로 심한 상처를 입어도 싸우러 나가겠다며 아득바득 우기는 것이 이 도다누키 마사쿠니라는 도검남사의 성격이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도움패나 부적을 쓰면 다시 싸울 수 있다는 것을 그날 근시였던 오테기네와 혼마루의 총괄자인 사니와, 즉 여인 자신이 필사적으로 말렸었던 것이다.
"타누키는 싸움이 좋아?"
"우리는 무기라고, 적을 쳐부수는 게 당연하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부러지면 아무 소용이 없어."
"내 단단함을 얕보지 마, 저 단단한 투구도 팍 반쪼가리를 내 버렸는데 그깟 적한테 죽을까보냐."
도다누키는 한쪽에 놔둔 불그스름한 투구를 발짓으로 가리켰다. 틈이 쩌억 갈라진 조금 으스스한 투구를 사니와는 잠깐 바라보았다.
"알았냐?"
"하지만 지금은 중상......"
"아- 시끄럽다고. 또 잇자국 낸다?"
도다누키가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그의 샛노란 눈빛에 한순간 육욕을 암시하는 붉은색이 어른거렸다. 사니와는 자신도 모르게 바늘을 놓치고 제 목을 감쌌다. 침을 꿀꺽 삼키며 그녀는 애써 평정을 되찾았다.
"지금은 안 돼. 다쳤잖아."
"도움패만 있으면 이거고 저거고 지금 당장 된다니까 그러네. 아- 젠장."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도다누키는 다시 이불 위에 누인 몸에서 힘을 털썩 뺐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의 상처는 꽤 심했으니, 이 정도로 오래 얘기를 주고받으면 힘이 빠지는 것도 당연한 노릇이었다.
사니와는 계속 덧댄 천을 꼼꼼히 꿰맸다. 바느질용 가위로 손을 뻗으며 그녀는 반짇고리 아래에 놓여있는 도움패를 자투리 천으로 가려버렸다. 다행히 도다누키는 반짇고리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내일은 이케다야 1층에 가야 해. 그 때 타누키도 출진시킬 테니까, 지금은 쉬어."
"대장을 맡기려는 건 아니지? 지휘 같은 건 영 성질에 안 맞아."
"참고할게."
사니와가 그렇게 말하자 도다누키는 다시 눈을 빛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다시 전장에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 힘을 실어 준 모양이었다. 다시 옆구리의 상처가 아파온 건지 얼굴을 찡그리기는 했지만 그 얼굴색은 아까보다 훨씬 좋아져 있었다.
사니와는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그는 그런 남사였다. 전장에 나가지 않으면 살아갈 보람을 느끼지 못할 이였다. 아무리 큰 상처를 입는다고 해도 그는 다친 곳이 아무는 대로 다시금 나가 또 다쳐 올 무장이었다. 그에게서 전장을 빼앗는다는 건 그녀에게는 불가능했다. 그가 부서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전장에 관해 언급할 때 빛나는 그의 표정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도움패 없이 수리실에 보내, 수리 시간 동안에만이라도 몸을 쉬게 하는 것뿐이었다.
"이번에는 이렇게 크게 다치지는 말아 줘."
사니와의 말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잠이 든 건지 그냥 무시하기로 한 건지, 도다누키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잠시 그의 눈꺼풀을 시선으로 더듬던 사니와는 이내 다시 바느질을 시작했다. 그녀의 입에서 아주 작게 흘러나오는 느릿한 자장가 곡조에 도다누키의 닫힌 눈꺼풀이 조금씩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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