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가라앉은 후 키리히메가 맨 처음 한 말이었다. 그녀의 위에 엎어져 숨을 고르던 도다누키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하아?"
"만족, 못 한 거야?"
"누가 그렇댔냐, 이 상황에서 왜 그런 말이 나오는 거냐고."
눈을 부라리며 내려다봐 오는 도다누키에 키리히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표정에서는 어떠한 악의나 조소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 되려 상황이 나쁘다고 도다누키는 혀를 쯧 찼다.
그는 다소 억세게 키리히메의 빰을 움켜쥐었다. 기묘한 숨소리를 내며 눈을 동그랗게 뜬 제 주인을 내려다보며 그는 못을 박듯 입을 열었다.
"딱히 만족 못 한 건 아냐. 애초에 욕구 풀려고 안은 것도 아니고. 네 머릿속의 나는 대체 얼마나 최악인 거냐?"
"나, 타누키 싫어하는 거 아닌데."
"그럼 앞으로 그런 질문은 던지지 말란 말이다."
그는 투덜투덜거리며 손아귀의 힘을 풀었다. 가볍게 키리히메의 이마를 꾹 누른 후, 그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다고 도다누키는 포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관계는 시작이 별로 좋지 못했다. 끓어오르는 감정이 시키는 대로 억지로 제 주인을 덮쳐눌러 첫 관계를 가졌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했다. 달리 뭘 어쩔 수 있었겠냐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미움받아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자각 정도는 쟁여놓고 있는 그였다.
키리히메는 제 연인이 입을 비죽 내민 채 무어라 투덜거리는 것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뒤통수에 손을 올리고 끌어당겼다.
"윽?!"
외마디소리는 살에 살이 잠겨드는 폭 하는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키리히메는 도다누키의 얼굴을 제 품에 끌어당겨 꼭 안았다. 까칠까칠하게 일어선 머리카락과 상처투성이인 거친 얼굴 피부가 가슴골 사이를 콕콕 찔렀다. 뻣뻣하니 짧은 머리카락을 키리히메는 마치 사랑스러운 것을 쓰다듬듯 가만히 어루만졌다.
"뭐, 뭐냐고."
"그냥, 이렇게 하고 싶어서."
"하여간 끌어안는 건 엄청 좋아하는구만. 정작 여기는 민감하면서."
슬쩍 위로 시선을 올리며 도다누키는 가슴골에 이를 세웠다. 보드라운 살갗 위에 잇자국이 가볍게 남았다. 키리히메는 외마디비명과 함께 눈을 꼭 감았지만, 그를 놓아주지는 않았다. 도다누키도 그 이상 뭔가를 하지는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도 제 주인의 품의 몰캉몰캉하고 부드러운 감촉은 싫어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둘은 맨몸으로 그렇게 끌어안고 있었다. 이따금 도다누키가 고개를 돌리는 소리가 날 뿐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체온을 나누고 있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 땐, 내가 나빴다."
문득 도다누키가 입을 열었다. 눈을 감고 있던 키리히메가 눈을 뜨자 어둠 속에서 한 쌍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일렁였다. 상반신을 들어 그 얼굴을 마주 내려다보며 도다누키는 말을 이었다.
"나는 싸우는 거밖에 모르니까, 그런 마음이 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란 말이지. 그냥 밀어붙여서 제 좋을 대로 풀어놓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몹쓸 놈이구만."
"이젠 안 그럴 거야?"
"노력은 할... 아니, 아니지, 그렇게 해야 하는 거지. 아- 젠장, 어려워 미치겠네."
제 머리를 와삭와삭 흐트러뜨리며 도다누키는 혀를 찼다. 키리히메는 살며시 웃더니 그의 얼굴을 사선으로 가로지르고 있는 상처를 가만히 매만졌다.
"타누키, 좋아해."
"하아?! 방금 말 어디서 그런 흐름이 나오는 거냐?"
생각하는 게 좀 이상한 거 아니냐고 도다누키는 어안이 벙벙해져 물었다. 키리히메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들어 그의 상처가 끝나는 뺨 부분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의 상체에 매달리듯 팔을 어깨에 둘렀다. 가슴팍에 와 닿는 말랑말랑한 감각과 조용히 들려오는 숨소리가 도다누키의 머릿속을 간지럽혔다.
그는 이를 까득 악물더니, 갑자기 키리히메의 어깨를 콱 음켜쥐었다. 그녀를 이불 위에 도로 누르며 그는 으르렁거리듯 속삭였다.
"슬슬 회복된 모양인데, 한 번 더 안는다?"
"어... 지금?"
"그럼 언제겠냐. 어쩔 거냐? 빨리 대답해."
귓불을 세게 깨문 후, 도다누키는 몸을 일으켜 키리히메와 시선을 맞췄다. 노란 홍채가 다시금 격렬한 감정에 타오르듯 빛나고 있었다. 그 요사스럽기까지 한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키리히메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가슴에 손을 올렸다. 과거의 흉터와 방금 전 생긴 잇자국 밑으로 쿵쾅대는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심호흡을 한 후, 키리히메는 대답 대신 도다누키의 머리를 다시금 제 품 속으로 끌어당겼다. 그는 무서울 정도로 만족스레 씨익 웃더니, 입을 열어 제 연인의 피부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변함없이 억센 움직임이건만 어째서인지 아까보다 부드럽게 느껴져 신기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키리히메는 그 몸짓을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