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사니와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사니와는 최대한 정신을 추스르려 눈을 깜빡였다. 그러나 위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동자에 천장은 들어오지 않았다.
"하세베......?"
사니와는 간신히 입을 벌려, 눈 앞에 자리한 남성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평소처럼 막힘없이 대답하는 대신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몸짓, 그의 이름이 하세베임을 긍정하는 제스처에 사니와는 간신히 지금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이 마구 뛰는 심장을 진정시켜 주지는 못했다.
'대체, 어째서 이렇게 된 거야?'
사니와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머릿속에서 필사적으로 아까 전에 있었던 일을 되짚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밤늦게까지 본성에서 일하고 있었다. 낮에 장비를 재정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 탓에 일이 쌓여있었던 것이다. 옆에서는 측근인 하세베가 처리를 끝낸 서류를 정리하며 주군의 실없는 대화에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다.
"미안해, 하세베. 이 밤중까지 일어나 있게 해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군의 명이라면 저는 며칠 밤도 새울 수 있으니까요."
"정말로 며칠 밤을 샜다간 아무리 도검남사라도 버티지 못할 테니까 그만둬?"
"주군의 뜻대로."
하세베는 변함이 없다고 실소를 흘리며, 사니와는 서류를 휙휙 넘겼다. 그러던 중 문득 유난히 빳빳한 종이가 그녀의 손에 걸려들었다. 사니와는 손을 멈추고 그 종이를 집어들어 쭉 훑어보았다.
내용을 읽어내려가던 사니와는 곧 한숨을 쉬며 책상에 푹 엎드렸다.
"츠루마루......"
"주군? 무슨 일이십니까?"
하세베는 주군의 이상행동에 정말로 놀란 듯했다. 서류도 대충 한구석에 던져놓고 가까이 몸을 끌어오는 그에게 사니와는 손을 저어보였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츠루마루가 또 장난을 쳤어."
"장난.... 주군께 말입니까?"
하세베의 표정이 굳어졌다. 갑자기 스산해진 공기, 그리고 곧 칼을 뽑아들 것 같은 손동작에 사니와는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칼은 집어넣어. 별 것 아닌 연서 장난이니까."
"연서......?"
"응. 어디서 읽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옛 책 속에 있는 연서 글귀를 베껴서 보냈어. 다른 도검 이름을 대놓기는 했는데, 이 글씨체는 틀림없이 츠루마루야."
이런 장난 쳐서 뭐가 즐거운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사니와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그 장난 연서를 한쪽에 내려놓고 다음 서류를 집어들었다
그러나 하세베는 그 흐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사니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손이 멈춰있기 때문이었을까, 시선이 강렬했기 때문이었을까, 몇 초 후 사니와가 하세베에게 슬쩍 눈길을 주며 입을 열었다.
"하세베, 무슨 문제라도 있어?"
"......주군, 주제넘게 말씀드립니다만, 그 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하세베가 걱정해주는 건 고마워. 하지만 정말 아무 문제도 없어."
"그것은, 주군의 제일가는 자가 그 자이기 때문입니까?"
갑자기 터진 말. 사니와는 서류를 내려놓고 하세베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무거워진 공기에 숨이 턱 막혔다.
하세베는 여전히 단정하게 앉아있었다. 그러나 그 표정에서는 평소 주군에게 늘 보내는 옅은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그는 입술을 깨무는가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면... 그 도검이 연서에 대신 써놓은 이름입니까? 주군의 제일가는 자가."
"어느 쪽도 아니야. 아니, 물론 츠루마루도 하세베도 모두 나한테는 소중한 도검들이지만......."
"저는, 그것만으로는......!"
그리고 휙, 등불과 함께 시야가 흔들렸다.
사니와가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이미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두 어깨는 하세베의 두 손에 단단히 붙잡힌 채였다. 등이 살짝 욱신거렸지만, 그런 것쯤은 눈앞에 가까이 다가온 얼굴에 금방 잊혀져 버렸다.
지금 상황은 바로 거기서 비롯된 것이었다. 가벼운 연서 장난. 거기에 유난히 반응한 하세베. 그리고 갑작스러운 일격. 모든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사니와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입을 다시 열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흔들리는 하세베의 눈동자에 입술이 붙잡힌 듯 열리지 않았다.
대신 하세베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평소의 여유로움이 싹 사라져 있었다.
"주군. 감히 제가, 주군께 묻습니다. 저는 주군의 제일가는 신하입니까?"
"......그렇다고 말하면, 믿어 줄 거야?"
사니와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말투는 생각보다 꼬였고, 목소리는 생각보다 떨리고 있었다. 비웃음을 사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약한 티가 풀풀 나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하세베는 비웃지 않았다. 아주 잠시, 그의 입가에 웃음이 지나갔지만 곧 진지한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고개를 깊게 끄덕인 후 손에 다시 힘을 넣었다.
"그럼,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저는, 주군께 있어서 제일가는 사람입니까?"
"......읏."
그 잘문에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세베의 질문에는 그 정도의 무게가 있었다.
아니라고 대답하면 거짓말이 되겠지. 사니와에게 있어서 하세베는 단순한 측근이 아니었다. 주명에 목숨을 걸고 자신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도검, 그 이상의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그는 자신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하루라도 없으면 그 빈 자리를 느끼게 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것은, 마음 속에 남은 일말의 주저 때문이었다. 이 마음이, 사니와와 도검남사라는 주종 관계 간에 성립되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주저함이었다.
하세베는 그 긴 침묵을 그 나름대로 받아들인 듯했다. 어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자 사니와가 신음을 흘렸다.
"하세베, 아파, 손을 풀어 줘. 주명이야."
"......죄송합니다."
그 말에 사니와는 눈을 크게 떴다. 하세베가 주명에 거역하다니,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마치 도검남사가 칼을 들지 않은 채 전장에 나갈 확률만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놀라 어안이 벙벙해진 사니와의 뺨을 하세베의 한쪽 손이 쓰다듬었다. 그는 어째서인지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면장갑에 싸인 엄지손가락이 사니와의 입술을 더듬었다. 그리고.
"주군, 저는 주군을, 이 세상에서 제일 연모하고 있습니다."
"?!"
녹는 듯한 낮은 목소리가 귀에 직접 흘러들어왔다. 온몸을 타고 흐르는 전류에 사니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하세베는 주군의 귓가에 입술을 더욱 가져다 댔다. 귓가에서 나는 입맞춤 소리에 주군인 사니와의 몸이 더더욱 움찔거렸다.
"하, 하세베........"
"감히 주군께 같은 마음을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짜 연서를 보낸 자에게 질투를 불태울 정도로, 주군을 누구보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주군께서도, 적어도 저를 제일가는 사람으로 생각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하세베는 살짝 고개를 들어 이마를 사니와의 이마에 가져다댔다. 시야에 가득 찬 눈동자에 사니와는 어지러워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한쪽 어깨를 여전히 쥐고 있는 단단한 손길이 아니었으면 지금 이 모든 것을 꿈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세베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 주군과 얼굴을 맞댈 뿐이었다. 입술조차 맞대지 않고, 그저 숨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평소보다 빠른 심장 소리는 대체 누구의 것일까?
"......하세베."
"예, 주군."
사니와는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냈다. 하세베의 대답은 평소보다 약간 빨랐다. 그런 그를 향해 얼굴을 최대한 들어올리며 사니와는 속으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지금 내가 솔직하게 말하면, 믿어줄 거야?'
머릿속에 떠오른 수많은 예상 답변은,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는 그 찰나의 순간에 가려져 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