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인의 창작 사니와가 등장합니다
※ 지인의 창작 혼마루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 Thanks to. ㅋ님
그 날 밤은 너무 별이 밝아 잠을 잘 수 없었다. 나카는 사박사박 맨발이 마룻바닥을 밟는 소리를 내며 밖으로 걸어나왔다.
요 며칠간 내내 흐린 반동인지 그 날 밤은 유독 하늘이 맑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카는 자신도 모르게 위로 손을 뻗었다. 밖에 나온다고 느슨하게 걸친 유카타의 소맷자락이 사락 하고 팔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손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헤매이다 문득 무언가를 잡았다.
“와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뻔했던 그것이 벚꽃의 꽃잎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산들바람이 불었다. 꽃잎이 친구를 부르듯 곧 부드러운 비가 옆에서 그녀를 감싸왔다.
나카는 벚꽃이 흩날리는 쪽으로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혼마루 정원 저 멀리, 밤인데도 분홍빛으로 아스라히 빛나는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이리 온」
벚꽃잎이 귓가를 스칠 때마다 따스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성의 것인지 남성의 것인지는 잘 구분이 가지 않았지만, 어쩐지 입 안에 단맛을 맴돌게 하는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나카는 나무를 향해 손을 뻗으려다 멈칫했다. 밤에 혼자 혼마루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카센이 일전에 타일렀던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누군가를 깨워야 할까, 아니면 그냥 여기서 바라보기만 해야 할까, 그런 고민에 빠진 나카에게 다시 한 번, 아까보다 한층 큰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아가야, 이리 온」
나카의 머리를 어루만지고 손끝에 와 닿는 벚꽃 꽃잎 하나하나가 분홍빛 반딧불이처럼 은은하게 빛났다. 마치 밤하늘의 별들이 벚꽃잎을 타고 그녀를 부르는 것 같았다.
폴짝, 소녀는 맨흙 바닥에 내려섰다. 달큰한 향기가 점차 강해지는 곳을 향해 그녀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걸어나갔다. 그녀의 등 뒤로 마치 사람 목소리 같은 바람소리가 소용돌이쳤다.
잔디와 흙을 디디면서도 나카의 걸음걸이는 마치 꿈 속에서 걷듯 부드러웠다. 갈수록 퍼부어내리는 꽃잎의 비를 헤치고 그녀는 선홍빛 빛을 향해 나아갔다. 꽃잎들이 즐거이 그녀를 감싸고 뛰놀았고, 소녀의 두 눈 속에 빛이 점차 밝게 차올랐다.
그녀의 귓가에 웃음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아주 멀리서 작게 들리던 것이 나카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빠르게 가까워졌다. 뒤에서 끊임없이 작게 들리던 바람소리를 막을 정도로 꽃잎이 자욱해졌을 때, 웃음소리는 나카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밤에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 벚나무는 나카가 목을 한계까지 젖혀야 꼭대기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컸다. 바람이 사각사각 가지를 흔들 때마다 벚꽃이 뿌리는 빛이 흔들려, 일전 혼마루의 남사들이 보여준 등불 축제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문득 어깨를 스치는 딱딱한 감각에 나카는 걸음을 멈추었다. 벚나무 가지 중 하나가 그녀를 향해 뻗어내려와 있었다. 얇고 가는 가지였지만 무성한 꽃잎에 들러싸여 나카에게는 마치 든든한 팔처럼 보였다. 그것에서 아까 전부터 그녀를 부르던 따스한 목소리가 울렸다.
「아가야, 더 가까이 오렴」
“더 가까이…?”
「우리의 손을 잡으렴, 인간의 아이야. 즐겁게 벚꽃놀이를 하자꾸나」
벚꽃놀이. 나카에게 그것은 생소하게 들렸다. 사당에서 제물로 자란 나카에게 그건 거의 접해본 적 없었던 세계의 이야기였다. 다만 그녀에게도 벚꽃놀이에 대한 좋은 기억은 있었다. 작년 봄, 카센을 위시한 혼마루의 남사들이 나카를 위해 벚꽃 아래서 소풍을 준비했었던 것이다. 그 때는 몇몇 남사들(주로 지로타치)이 술판을 벌이는 바람에 카센의 일장 설교로 끝을 장식하기는 했지만, 나카에게는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나카는 벚나무의 가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가까이 내딛으려던 그 순간, 그녀가 입고 있던 유카타가 키링 하고 울었다.
“응?”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뺨에 닿았다. 유카타에서 왜 방울 같은 소리가 나는 것인지 궁금해하던 찰나, 나카의 시야에서 분홍빛 안개가 가셨다. 무성한 숲 한가운데에 요사스럽게 피어난 벚나무를 멍하니 올려다보려던 찰나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남의 주인을 멋대로 꾀어내다니, 정말이지 예의가 없구나. 목재가 되고 싶은 것이냐?”
나카는 고개를 돌렸다. 어두운 숲 속, 별빛과 밤벚꽃의 괴이한 빛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녀가 매우 잘 아는 도검남사였다.
“카센?”
“밤에는 혼자 혼마루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지? 돌아가면 일단 한숨 자고, 아침에 얘기 좀 해야겠구나.”
카센은 한숨을 쉬며 말했지만 그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나카를 타이르듯 말하는 그 어조는 무척 온화해서, 나카는 카센이 한손에 칼을 뽑아들고 있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주인을 향해 쓴웃음을 지은 카센은 곧 아름드리 벚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아름답고 우아한 것을 사랑하는 그답지 않게, 벚나무를 올려다보는 그 눈초리는 몸서리가 쳐지도록 매서웠다.
“외관은 우아할지 몰라도 행동이 탐욕스럽기 그지없구나. 그 아이는 돌려받아야겠다.”
「…한낱 도검의 츠쿠모가미 주제에.」
밤벚꽃이 바람에 울었다. 아까 전까지 들리던 잔잔한 울림은 없고 스산하기 그지없는 으르렁대는 소리가 가지 사이사이에서 들렸다. 나카는 몸을 떨었지만, 카센은 차갑게 웃을 뿐이었다.
“말 한 번 잘했구나. 한 해에 며칠 꽃피우지도 못하는 나무 요괴 주제에.”
「네놈……」
“이 카센 카네사다, 내 주인을 다른 자가 먼저 카미카쿠시(神隠し)하게 내버려둘 정도로 무르지 않아. 계속 내 주인을 꾀어낼 생각이라면, 이 자리에서 그 몸뚱아리를 베어 장작으로 써 주마.”
그렇게 말하며 카센은 우치가타나를 치켜들었다. 벚나무를 베기에는 턱없이 가늘어 보이는 검이었지만, 츠쿠모가미의 기백과 신력 때문인지 그 위압은 커다란 도끼 못지않았다.
벚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언제부터인가 벚꽃의 꽃잎이 빛을 잃어갔다. 여전히 벚꽃은 피어 밤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 색은 이제 밤하늘 색에 겹쳐 흐릿하게 보였다. 그것을 본 카센은 고개를 젓더니 나카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돌아가자. 봄이라지만 아직 밤은 추워, 이대로는 감기에 걸릴 테지.”
“카센……”
“밖에 멋대로 나온 것에 대해서는 아침에 얘기할 테니까 각오하렴.”
짐짓 눈썹에 힘을 주면서도 카센은 나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벚꽃 향기가 멀어지고 카센이 평소 달고 다니는 꽃의 향기가 풍겨왔다.
가까이 다가온 나카가 문득 발을 멈추었다. 그제야 숲속 바닥에 굴러다니는 나뭇가지며 돌멩이가 발바닥에 밟히는 모양이었다. 그녀가 맨발인 것을 본 카센이 혀를 차더니 허리를 수그렸다.
“맨발로 나오다니, 정말 어지간히도 홀렸던 모양이네. 업히렴.”
나카는 주저주저하며 조용히 카센의 등에 올라탔다. 자신을 태우고 걷기 시작한 남사의 등에 그녀는 꼭 달라붙었다.
돌아가면 발도 씻겨 주어야겠다고 카센이 중얼거리는 것이 들렸다. 듣기에 따라서는 푸념일 텐데도 나카에게는 편안한 자장가처럼 들렸다. 카센의 목을 꼭 껴안은 나카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