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인의 창작 사니와가 등장합니다
※ 창작 사니와(독자설정 및 이름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To. 시라카와 아이나(ㅇ님 댁 사니와)
천 종류가 가득 쟁여져 있기 때문일까, 침구류를 파는 가게 안은 유독 따뜻하고 느물느물한 공기가 떠다녔다. 점원이며 손님들이 움직일 때마다 폭신폭신한 소리가 조용히 공기 중에 녹아들었다. 본디 딱딱한 칼집에 감싸이는 게 보통인 도검에게는 영 그것이 불편한 건지, 고토는 연신 몸을 배배 꼬며 말했다.
“아- 역시 이런 분위기는 기묘하다니까.”
“미안해, 번거롭게 해서.”
“응? 아니, 괜찮아, 대장. 나도 마침 재미있는 일 없나 싶던 참이고. 난 단도니까, 호위 같은 건 자신이 있다구!”
고토는 엣헴 기침을 하며 자신의 가슴팍을 두드렸다. 사니와 키리히메는 빙그레 웃고는 한쪽에 쭉 늘어선 진열장을 바라보았다. 가지각색의 이불이 줄줄이 자리한 것을 그녀는 파란 눈으로 하나하나 꼼꼼히 훑었다. 어느새 고토도 그 옆에 서서 주인을 따라 시선을 같이하고 있었다.
“대장, 이불은 갑자기 왜? 또 꼬맹이 녀석들이 이불 하나 찢어먹은 거야?”
“아니, 전부 무사한 걸로 알고 있어.”
“난 또 저번처럼 고코타이 녀석의 호랑이라던가가 찢어먹었나 했네. 그럼 이불은 갑자기 왜? 지금 거, 추워?”
연분홍빛의 몽실몽실한 이불을 주먹으로 꾹꾹 누르며 고토가 물었다. 키리히메는 그 옆에 있는 금빛 면이불을 가만히 매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선물용이야.”
“선물?”
“응. 시라카와 씨… 비젠 국에 알고 지내는 사니와께서 이번에 결혼하신다는 소식을 들어서.”
이건 너무 추우려나… 하는 중얼거림을 마지막에 흘리며 키리히메는 좀 더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대답에 고토는 뭔가 흥미가 동한 듯 쫄래쫄래 따라오며 귀를 쫑긋 세웠다.
“사니와도 결혼할 수 있는 거야?”
“안 된다는 법규는 없으니까. 사니와의 책무만 다할 수 있으면 상관없는 게 아닐까?”
“인간들도 의외로 대충대충이네. 그럼 그 시라… 시라카와였나, 그 사니와는 누구랑 결혼하는 거야? 같은 인간?”
“시라카와 씨 혼마루의 이치고히토후리 씨랑.”
고토의 발걸음이 꼬였다. 키리히메가 어깨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그는 그대로 바닥에 넘어져 성대하게 주위의 주목을 끌었을 것이다. ‘멋없잖아…’ 하고 어딘가의 다테 가의 타치가 자주 할 것 같은 대사를 입에 담으며 그는 몸을 추슬렀다. 키리히메가 그의 어깨를 털어주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고토, 괜찮아?”
“난 문제없음. 그보다 정말이야? 그 쪽 혼마루의 이치 형이랑 사니와씨가 결혼?”
“아마도. 나도 알음알음 들은 거긴 하지만, 일전에 그 쪽 혼마루를 봤을 때 두 사람 사이는 좋아 보였고 가능성은 높을 거야.”
“흐-응, 이치 형이 결혼이라… 아니, 우리 혼마루 이치 형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치 형은 이치 형이고.”
고토는 뭔가를 연신 중얼거렸다. 잠시 후 그는 손바닥을 탁 치며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대장! 이왕 이치 형한테 선물할 거, 큼지막한 걸로 하자! 둘이 같이 쓰는 거면 커다란 이불이 좋지! 무늬도 멋지고 큼직한 걸로 고르자!”
“시라카와 씨는 크게 싫어하지 않겠지만, 이치고는 그런 걸 좋아하는 거야?”
“이치 형은 딱히 가리는 건 없어.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그러니까 선물하는 우리가 보기에 좋은 걸로 고르면 될 거야……인데!”
거기까지 말하던 고토가 갑자기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집에서 본체를 꺼내 키리히메의 어깨, 정확히는 그녀의 어깨 너머까지 다가온 무언가를 향해 칼끝을 겨누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갑자기 휘둘러져 온 날붙이에 제 주인이 놀랄 틈도 주지 않고, 고토는 주인 너머의 불청객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뭐야, 우리 대장한테 뭐 하려고? 당장 치워.”
“아하하, 죄송합니다. 종족의 본능이라는 것이 가끔 이런 식으로 나와서요.”
30대를 조금 넘어 보이는 외관의 여인이 머쓱하게 웃으며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 손에는 야만바기리 쿠니히로가 뒤집어쓸 것만 같은, 하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두툼한 천이 들려 있었다.
후동카부세(布団かぶせ)구나, 하고 키리히메는 멍하니 생각했다. 그녀의 혼마루는 이매망량의 세계 끝자락에 자리한 만큼, 상점가도 요괴나 말단 신들의 가게들로 채워져 있었다. 거기서 일하는 요괴 중에는 천을 인간에게 뒤집어씌워 질식시키는 요괴인 후동카부세도 당연히 있었다.
고토는 일단 칼을 거두기는 했지만 아직 그것을 칼집에 집어넣지는 않았다. 후동카부세 점원이 옆구리에 끼고 있던 책자를 꺼내드는 내내 고토의 눈빛은 찌릿찌릿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노려보지 말아 주세요. 사과의 뜻으로 좀 깎아드릴 테니까. 무얼 찾으시나요?”
“혼수용품으로 쓸 만한 이불을 찾는데요.”
“대장!?”
태연자약하게 점원과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키리히메를 고토가 뜨악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키리히메는 약간 힘없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괜찮아. 여기 후동카부세들은 죽이진 않았어. 겨우 잠깐 얼굴을 가렸다 놔 주는 정도야.”
“사자(死者) 아가씨는 일전에 왔을 때도 비슷한 장난을 당했었죠.”
“손님한테 이상한 장난 치지 말라고! 이렇든저렇든, 우리 대장은 본래 인간이란 말야.”
칼을 집어넣으면서도 고토는 눈을 부라렸다. 키리히메는 그의 어깨를 토닥인 후, 점원이 펼쳐보인 책자로 고개를 돌렸다. 천 조각이 표본으로 붙어있는 두툼한 책이 풀썩 소리를 내며 장을 넘겼다.
“요즘 잘 나가는 종류는 나비 무늬가 날아다니는 여기 이 비단 종류랍니다. 부부가 함께 쓰기에는 좀 그렇다고 생각하신다면 이쪽의 은은하게 빛이 나는 종류도 추천해요. 등나무색과 동백색이 인기랍니다.”
“음, 조금 조용한 종류가 좋은데… 고토, 이치고는 어떤 걸 좋아할까?”
“으-응, 같은 이치 형이라고 해도 혼마루에 따라 조금씩 취향은 바뀌는데. 아, 오동나무 문양이면 어느 이치 형도 좋아할 거 같다!”
고토가 손바닥을 퐁 두들겼다. 그 말을 들은 점원이 재빨리 책장을 넘겼다. 여러 표본이 달려있어서 그런지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묵직했다.
키리히메가 그걸 가만히 응시하고 있을 때, 문득 그녀의 옷자락을 가볍게 잡아당기는 손길이 있었다. 내려다보자 고토가 빤히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대장도 결혼 선물로 이불 받고 싶어?”
“나, 결혼 예정 없는데.”
“만약에 얘기야, 만약에. 만약 결혼한다면, 어떨 거 같아?”
“으음…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아, 이것들인가요?”
점원이 책자를 톡톡 두드리자 키리히메는 다시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치고의 머리색을 닮은 매끄르르한 천과 아이나(=시라카와 씨)의 눈 색을 닮은 부들부들한 천 중 어느 것이 좋을까 그녀가 고민하는 동안, 고토는 진지하게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물론,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키리히메로서는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