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인의 창작 사니와가 언급됩니다
※ 창작 사니와(독자설정 및 이름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To. 휘린(ㅎ님 댁 사니와)
점심시간을 넘긴 혼마루는 유달리 조용했다. 특별히 뭔가 없는 한, 이 시간에는 도검남사들도 낮잠을 자거나 개인 용무로 외출하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었다. 복도를 걷는 키리히메의 가벼운 발소리가 삐걱삐걱 울리듯 들리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빈 방들과 창고를 스쳐 지나가며 그녀는 조용히 혼마루의 상황을 생각했다. 정확히는 산죠 도파의 도검들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헤아려 보고 있었다.
‘코기츠네마루는 아츠카시 산에 출진했고, 미카즈키와 이시키리마루는 히에이잔에 원정을 나갔고…… 이마노츠루기는 분명 아까 전에 수리방에서 쉰다고 했었지.’
손가락을 꼽으며 키리히메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녀가 향한 곳은 나가모노들, 즉 창들과 나기나타가 쓰는 방이었다. 삼명창 남사들에게 이번 달 몫의 곡식을 사 와 달라고 부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방에 남아있을 남사는 한 명뿐이었다.
키리히메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히 예상한 인물이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오오, 주인이여, 무슨 일이지?”
“실례할게, 이와토오시, 혹시 쉬는 중에 방해한 거야?”
“가하하하, 마침 심심하던 차에 오히려 환영이다.”
이와토오시는 다다미를 팡팡 두들기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삐죽삐죽한 이빨을 씩 드러내고 웃는 모습에 키리히메는 뜻 모를 안정감을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해서, 무슨 일이지? 급히 사냥할 칼이라도 있는 건가?”
“그런 건 아니고… 저기, 이와토오시는 코기츠네마루와 형제 간이지?”
“응? 뭐, 나도 코기츠네도 산죠 무네치카의 작품이니 그런 점에서는 형제라고 할 수 있겠지. 그렇게 같이 보낸 시간이 긴 것은 아니다만.”
“그래도 형제 간이면 기호라던가 그런 건 더 잘 알지 않아?”
“뭐, 남들보다는 더 알겠지. 헌데 주인이여, 어째서 그런 것을 궁금해하는지 무척 흥미가 생기는군.”
그렇게 말하며 이와토오시는 한쪽 손을 뚜둑 꺾듯이 움직였다. 무의식적인 제스처에서 언뜻 풍겨져나오는 분위기에 키리히메는 속으로 땀을 흘렸다. 요새 들어 이와토오시는 제 주인이 다른 남사들과 친해지는 것을 유달리 껄끄러워하고 있었다. 대놓고 제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은근히 풍기는 위압감에 그 츠루마루조차도 부르르 떤 적이 있으니. 키리히메는 손을 내저었다.
“우리 쪽 코기츠네마루 이야기는 아니야. 저기, 지난번 사니와 모임 때 친해진 휘린 씨, 기억나?”
“그러고 보니 그런 이름의 사니와와 주인이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군.”
“응. 그 휘린 씨가, 본인 혼마루의 코기츠네마루 씨와 결혼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와서.”
“호오?”
이와토오시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곧 그는 웃음보를 터뜨리며 손뼉을 쳤다. 워낙 소리가 요란해서 키리히메는 하마터면 뒤로 넘어갈 뻔했다.
“카하하하하, 그건 걸작이군. 다른 혼마루의 남사라 하나, 코기츠네가 인간과, 그것도 제 주인과 혼인인가!”
“나도 직접 들은 게 아니라 다른 분들께 건너 들은 이야기지만. 아무튼 그래서 뭔가 선물을 보내려고 하는데, 신랑 쪽의 취향도 반영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혹시 괜찮은 생각, 있어?”
“그런가, 그런가. 하지만 주인이여, 취향이라 해도 너무 광범위하군. 적어도 범위를 줄여 주었으면 하는데.”
“음식 종류가 좋을 거 같아.”
휘린은 먹을 수 있는 선물 쪽을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지난번 사니와 모임 때 서로 선물을 교환하면서 휘린이 보였던 반응들이 키리히메의 머릿속을 휙휙 스쳐 지나갔다.
음식이라는 말에 이와토오시는 흐음 신음을 흘리며 팔짱을 꼈다. 잠시 머리를 굴리던 그는 입을 쩝 다시며 말을 꺼냈다.
“뻔한 말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유부가 좋겠군. 이 혼마루의 코기츠네도 유부를 좋아하지.”
“여우의 권속답네. 하지만 휘린 씨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으로 고르고 싶은데.”
“가하하, 그렇군. 유부라 해도 음식의 종류는 다양하지. 그럼 같이 생각해보도록 할까.”
이와토오시가 손뼉을 치자 마치 풍선을 터뜨리는 것 같은 우렁찬 팡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의 눈빛이 유난히 두드러져 보여 키리히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혼마루 소속이지만 역시 형제 도검의 이야기라 기쁜 것일까, 아니면 본디 이런 종류의 이야깃거리를 좋아하는 것일까? 나기나타 남사를 올려다보는 키리히메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곧 그녀는 고개를 눈에 띄지 않게 살짝 젓고는 생각의 주제를 바꾸었다. 일단 지금 중요한 것은 휘린의 혼마루로 보낼 선물이었다.
“유부주머니라는 음식도 있던데, 어때?”
“오오, 괜찮군. 헌데 일일이 국물을 내어 먹어야 하는 점이 번거롭지는 않을지? 나라면 이나리즈시를 고를 거다. 모양새가 더 좋지 않나, 카하하.”
“나쁘진 않지만… 초밥 종류는 잘못하면 쉬어 버리잖아. 도검남사야 먹는 걸로 배탈이 나진 않겠지만, 휘린 씨는 인간이고…….”
“카하하, 그도 그런가. 이야이야,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로군!”
너털웃음을 터뜨린 이와토오시가 제 주인의 등을 손바닥으로 세게 여러 번 두드렸다. 솔직히 키리히메에게 그 접촉은 좀 아팠다. 하지만 그것이 이와토오시의 친근감 표시라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와토오시를 말리기는커녕 그저 웃기만 했다.
“결혼 선물로 모양도 나고, 그러면서도 신부도 신랑도 좋아할 만한 유부 음식…..”
“원점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군. 때로는 정공법이 제일 효과가 있지. 그렇지, 유부로 만든 다과가 좋지 않겠나, 주인이여!”
“정말 정공법 중 정공법이네.”
자칫하면 비꼬는 걸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을 키리히메는 담백하게 입에 올렸다. 하지만 대답과는 별개로 그녀는 지금까지 나온 선택지 중 그것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일전에 코기츠네마루를 데리고 상점가에 갔을 때 맛보았던 과자의 바삭바삭한 맛이 다시 키리히메의 혀 끝에 살아났다.
“상점가의 요호(妖狐)들이 파는 과자가 맛있었어.”
“오오, 이나리묘진의 다과 말인가. 그건 좋지. 주인의 친우 되는 이는 이매망량의 음식은 맛본 적이 없을 테지? 재미있는 선물이 되겠군!”
호탕하게 웃으며 이와토오시는 제 뒤통수로 손을 뻗었다. 뒤로 넘기고 있던 후드를 눌러쓰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내에서는 후드를 벗는 이와토오시에게 생긴 외출 시의 버릇이었다.
키리히메는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았다. 곧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벙찐 표정을 지으며 눈과 입을 동시에 깜작였다.
“의외네, 이와토오시가 이런 화제를 좋아할 줄은.”
“응?”
“뭐랄까, 유난히 적극적이잖아.”
키리히메는 후후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손을 잡아준 이와토오시는 무어라 말하려다 이내 입꼬리를 쭉 째며 피식 웃는소리를 냈다.
“나를 즐겁게 해 주었으니 그 정도 반응은 당연하지.”
“그 정도야?”
“오우. 무엇보다 주인과 남사가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있다는 걸 알려 주었으니. 이야, 나를 즐겁게 해 주는 사실이 하나 늘었군!”
주인에게 외투를 내미는 이와토오시의 입에서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들뜬 웃음소리가 퍼져나왔다.
옷 소매에 팔을 꿸 때까지만 해도 키리히메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매무새를 가다듬을 때쯤, 그녀는 뒤늦게 머리를 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고개를 들었지만, 이와토오시는 벌써 방을 나가 멀찍이 복도에 서 있었다.
“자, 주인이여, 서두르지 않겠나.”
“잠깐, 이와토오시!”
키리히메는 그를 뒤쫓아가듯 나가모노들의 방을 뛰쳐나갔다. 이와토오시는 거의 돌진하듯 달려나온 사니와의 이마를 가볍게 꾹 찌르고는 클클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