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겐이 이마에 붙여준 반창고를 만지작거리며 마루에 걸터앉은 이시키리마루를 보고 이와토오시가 꺼낸 말이었다. 반창고로 다 가려지지 않은 불그스름한 자국에 얼굴을 찌푸리던 이시키리마루가 쓴웃음을 지었다.
“토끼는 털이 복실복실하여 그리 아프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들이받는 머리가 생각보다 단단하더구나. 하하.”
“들이받힌 건가… 대관절 이번에는 무슨 말을 하였기에 주인이 몸소 들이받을 정도가 된 거지?”
“하하, 역시 수태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할 것이 못 되었나 보더구나.”
이시키리마루는 태연자약 웃으면서 손을 붕붕 내저었다. 그 말에 평소에는 늘 씨익 웃고 있는 이와토오시가 보기 드물게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혀를 차며 제 이마를 꾹 눌렀다.
“그 정도로 끝난 것이 다행이군. 농이라 하나, 계속 그런 말을 꺼내다가는 주인의 손에 수리실에 보내지고 말 게야.”
“그건 그것대로 좋을지도 모르겠구나.”
“이시키리마루여… 자네, 요사이 들어 점점 더 머리가 이상… 아니, 태도가 기묘해지고 있다는 자각은 있나?”
만사를 호방하게 웃어넘기는 이와토오시치고는 무척 신랄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에도 이시키리마루는 부드러이 웃을 뿐이었다. 반창고 위로 앞머리를 덮고 머리의 관을 고쳐쓰며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런 말을 꺼낼 때마다 꼬박꼬박 반응을 돌려주니 괜찮지. 때로는 말로, 때로는 행동으로. 매번 반응이 색달라서 즐겁단다.”
“산죠 도파의 신검이 어쩌다 또래 소녀에게 장난을 거는 어린 사내아이 같은 말을 하게 된 건가?”
“하하, 사랑은 사람을 젊게 만든다 하지 않더냐.”
이와토오시는 그건 젊어진 게 아니라 퇴화한 거 아니냐고 말하려다 관두었다. 이렇든저렇든, 사니와 미사치노요와 이시키리마루의 많이 독특한 교류 방식은 이미 이 혼마루에서는 일상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연습전 등지에서 마주하는 다른 혼마루의 이시키리마루는 보다 점잖은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하고 속으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관을 똑바로 맨 이시키리마루는 옷매무새를 가듬다 말고 멀리 정원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 끝에는 이마노츠루기를 비롯한 몇몇 단도들이 토끼 한 마리와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있었다. 이마노츠루기의 팔에서 폴짝 뛰어내린 토끼를 보는 이시키리마루의 눈빛에 분홍빛 기운이 감돌았다. 그것을 보던 이와토오시는 제 본체의 자루 부분으로 그의 등을 가볍게 찔렀다.
“표정 관리는 하는 게 좋지 않겠나.”
“이런, 또 표정이 풀어졌었나? 주인이 보여 그만. 주인이 단도 아이들과 노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좋군.”
“단도들과 사이가 꽤 좋으니 말이지, 우리 주인은.”
“음음. 토끼 모습보다 본래의 그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더 오래 있어주면 더욱 좋을 텐데.”
신검다운 온화한 미소를 띄우면서 말하는 이시키리마루였지만, 그 말 깊숙이 소용돌이치는 열기에 이와토오시는 혀를 내둘렀다. 정말 지치지도 않는군, 이라고 혼잣말을 내뱉은 그는 승복의 두건을 고쳐쓰며 물었다.
“이시키리마루여, 그건 모르고 하는 건가, 아니면 일부러 하는 건가? 요새 자네의 행동은 주인에게 일부러 맞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만.”
“맞으면서 좋아하는 취미는 아무리 그래도 없단다. 그녀에게 맞는 거라면 이야기는 별개지만, 나도 어느 쪽이냐면 상냥하게 대해지는 쪽이 좋지.”
“그럼 주인에게 말이라도 좀 가려서 해 보게. 주인도 자네가 태도를 고치면 호의적까지는 아니더라도 평범하게 대해 줄 터인데.”
이와토오시의 충고에 이시키리마루는 피식 웃었다. 제 본체를 지팡이처럼 짚으며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참을 제 칼집을 만지작거리며 먼 곳을 바라보던 이시키리마루는, 여전히 입에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그래서는 재미가 없지 않느냐. 그녀가 평범하게 구는 모습은 다른 이들과 있을 때 충분히 볼 수 있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러한 모습 또한 보람이 있지 않나?”
“보람?”
“아아. 나의 말,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일일이 화를 내고, 얼굴을 찡그리고, 제재를 가해 오지. 때로는 무시를 할 때도 있지만, 그 때는 조금 더 말을 걸면 결국은 반응이 오거든. 즐거운 일이지.”
표정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마치 길가에 핀 꽃이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듯 이시키리마루는 말을 맺었다. 단도들보다 조금 앞서 달려나갔다가 멈춰서고 기지개를 펴는 토끼 모습의 미사치를 바라보며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러나 이와토오시는 웃을 수 없었다. 그는 같은 도파의 도검남사 청년을 응시하고 있지 않았다. 그가 바라보는 것은 순수하고 잔혹하게 한 여인을 사랑하는 신(神)이었다.
“그녀는 사랑스러운 아이야.”
이시키리마루는 이미 누군가를 향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았다. 마치 입에서 자연스레 넘쳐흘리듯 말한 후, 그는 일어서 제 본체를 허리에 찼다. 기지개를 켠 후 그는 기도라도 드리러 가야겠다고 말하며 미사치와 단도들이 모여 있는 정원 쪽으로 멀어져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와토오시는 고개를 내저었다. 누구를 불쌍히 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며 그는 정원에서 눈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