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인의 창작 사니와가 언급됩니다
※ 창작 사니와(독자설정 및 이름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To. 아시타/키노우 (ㄹ님 댁 사니와)
“눈이 그쳐서 다행이군요.”
말 안장을 털며 하세베가 중얼거렸다. 키리히메는 옷자락 끝에 묻은 눈을 털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날까지 눈이 제법 왔기에 혹시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었던 것이다. 그게 기우로 끝나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키리히메는 일행을 돌아보았다.
혼마루 입구에는 그녀와 근시 하세베를 제외하고도 다섯 명이 있었다. 다른 사니와의 혼마루를 방문할 때면 남사 6명으로 이루어진 1개 부대를 이끌고 가는 것이 키리히메의 혼마루의 방침이었다. 츠루마루와 우구이스마루가 담소를 나누는 동안 오오쿠리카라는 자신이 탈 말의 등자를 살폈다. 야겐이 자기 몫의 말을 다독이는 동안 소우자는 아직 희뿌연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키리히메는 하세베를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말에 짐을 단단히 고정시키고 있었다. 비단으로 고이 포장한 짐을 바라보며 키리히메가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쏟아지거나 흐트러지진 않을까?”
“주명이라면 제가 낙마하는 한이 있더라도 짐은 흐트러지지 않게 하겠습니다.”
“아니, 하세베가 낙마하면 안 되잖아.”
키리히메는 진심으로 말했다. 하세베는 만약 그녀가 낙마하라고 한다면 전력질주 중인 모치즈키 위에서도 바닥을 향해 몸을 내던질 게 분명했다. 주인의 걱정을 알아챈 것인지 하세베는 주군을 걱정시킬 만한 일은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을 덧붙였다.
헛웃음을 지으며 키리히메는 자신이 탈 말에 가까이 다가갔다. 하세베가 말고삐를 잡고 그녀가 말에 올라타는 것을 도왔다. 안장 위에 자리를 잡은 키리히메는 말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하세베가 미츠타다에게 이르듯이 말을 건네고 있었다.
“주군께서 자리를 비우신다고 일을 소홀히 했다간 네 본체를 분질러버릴 테다.”
“하하, 무서운걸. 제대로 일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주군을 잘 부탁해.”
“말하지 않아도 주군을 제대로 모시는 건 근시의 책무이다.”
“하세베, 슬슬 출발하자. 쇼쿠다이키리, 혼마루를 잘 부탁해.”
키리히메는 말고삐를 잡으며 말했다. 하세베는 주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제 말에 올랐고, 미츠타다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오오쿠리카라, 야겐, 소우자, 츠루마루, 우구이스마루가 차례로 각자의 말에 오르는 것을 바라보던 미츠타다가 숫제 아쉽다는 듯 사니와에게 말했다.
“으음, 좀 아쉬운걸. 수행원이 갑자기 나에서 우구이스마루 씨로 바뀐 게.”
“이해해 줘, 그 편이 키노우 씨도 그쪽의 쇼쿠다이키리 씨도 마음이 편할 테니까. 쇼쿠다이키리도 그렇지 않아?”
“하하, 나는 아무래도 괜찮지만, 일리가 있네. 아직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해서 다녀와?”
미츠타다는 손을 저었다. 키리히메는 고개를 끄덕인 후, 하세베에게 눈짓을 했다. 하세베가 출발한다는 말을 소리 높여 외침과 동시에 일행은 열린 정문으로 나갔다.
일곱 필의 말이 정문을 나서 밟은 땅은 평소 정문 너머에 있던 그 길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사실에 놀라거나 당황하지는 않았다. 츠루마루가 휘파람을 불 뿐이었다.
“이야, 이건 몇 번을 겪어도 놀라운걸, 한 번에 그 멀리 떨어진 빗츄 국의 땅을 밟을 수 있다니.”
“그래도 키노우 씨의 혼마루까지 어느 정도는 말로 가야 하지만. 서두르자, 요리가 상하겠어.”
키리히메의 말에 하세베가 맨 처음 반응했다. 키리히메와 오오쿠리카라가 동시에 「달릴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마 벌써 저만치 앞서 달리고 있었으리라.
말에 탄 채 길을 터벅터벅 걷던 중, 키리히메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키노우 씨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놀랐어. 그런 이야기는 전해들은 적 없었는데.”
“말씀대로입니다.
하세베가 맞장구를 쳤다. 그 뒤를 따르던 야겐과 소우자가 서로를 쳐다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상대 혼마루에서 직접 전해들은 소식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 이야기가 전해졌던 당일에 야겐은 잘못 전해진 이야기가 아닐까 하고 의문을 제기했었다. 아무래도 그 의혹은 아직도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대장, 혹시 잘못 전해진 거면 어떻게 할 거야?”
“야겐 토시로, 주군께서 잘못 판단을 내리셨다고 말할 생각이냐?”
“하세베, 칼은 뽑지 마. 야겐의 말도 일리가 있어.”
키리히메는 한손을 들어 하세베를 저지했다. 하세베는 칼날이 슬쩍 보일 정도로 뽑았던 제 본체를 다시 딸깍 집어넣었다.
“그래도 원래부터 키노우 씨의 혼마루에 잠깐 방문하기로 했었으니까.”
“최악의 경우에도 창피를 당할 일은 없다는 것이로군요. 후후, 그런 대비는 좋지요.”
“소우자 사몬지, 주군께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는 거다.”
하세베가 소우자를 눈빛으로 찔렀다. 아까 칼을 뽑지 말라는 주명을 내려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키리히메는 자신의 말고삐를 재촉했다. 말의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얼마를 갔을까, 문득 하세베가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응, 아직 멀쩡해. 그렇게 많이 가지도 않았고.”
키리히메는 근시에게 빙그레 웃어보였다. 하세베는 따라 입꼬리를 올리면서도 말을 이었다.
“주군께서는 그 혼마루의 사니와의 소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키노우 씨의 결혼? 축하할 일이라고 생각해. 키노우 씨의 건강이 좀 걱정되지만……”
키노우의 모습을 떠올리며 키리히메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아는 한 키노우는 그렇게 건강한 편이 아니었다. 선물로 뭘 할까 고민하던 중 하세베가 제안한 잉어 요리를 받아들인 이유도 그것이었다. 몸보신에 좋다는 잉어 요리가 키노우의 체력 회복에 조금아나마 기여하기를 바라는 키리히메였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키리히메의 입가가 누그러졌다. 소리내서 웃는 주인의 모습에 하세베가 눈을 굴렸다.
“주군?”
“미안. 하세베가 잉어 요리를 제안했을 때가 생각나서.”
“잉어는 경사스러운 날에 선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요. 주군께서 좋은 선물거리를 찾으신다면 그에 맞는 것을 제안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거기에 잉어(=코이)는 사랑(=코이)이라는 말과 발음이 같고. 멋진 제안 고마워, 하세베.”
키리히메는 생긋 웃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며 고개를 숙여 보이는 하세베의 동작에서 흘러나오는 기쁨의 기운을 그녀는 몰래 알아차렸다.
요리가 키노우의 입에 맞기를 기도하며 키리히메는 말고삐를 잡았다. 말이 히힝 하고 우는 가운데, 저 멀리 혼마루가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