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인의 창작 사니와가 언급됩니다
※ 창작 사니와(독자설정 및 이름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To. 아게하 (ㄷ님 댁 사니와)
“나가소네, 나갈 채비를 좀 해 줄래?”
겉옷을 겹쳐입은 키리히메가 대련장에 들어와 말을 건넸다. 대련용 목도를 한참 휘두르고 있던 나가소네가 땀을 닦으며 주인을 돌아보았다.
“밖에 나가는 건가?”
“응, 상점에 가려고. 동행해줬으면 좋겠어.”
“나는 상관없다만, 네게는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군. 밖이 저 꼴이잖냐.”
그는 창문 밖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혼마루 정원에는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바람은 불지 않았지만 눈송이가 꽤 굵어, 혼마루에 빠른 속도로 하얀색이 차오르고 있었다.
키리히메는 어깨에 쌓인 눈을 톡톡 털며 가만히 나가소네를 바라보았다. 움직이지 않는 그 시선에 나가소네는 쓴웃음을 지으며 목도를 내려놓았다.
“급한 일인가 보군. 대련은 다녀와서 마저 부탁하지.”
“그려. 헌디 상점에 가는 거면 나가 더 낫지 않어? 흥정이라던가 자신 있는디.”
무츠노카미 요시유키가 제 머리를 목도로 톡톡 치며 얘기했다. 나가소네가 눈을 부라리고 그를 노려보았다. 키리히메는 빙긋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말은 고맙지만 이번에는 나가소네랑 갔다 올게.”
“나하하, 딱지 맞아 버렸구마.”
“갔다 와서는 진검으로 상대할 테다.”
제 주인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며 나가소네가 툭 내뱉었다. 키리히메가 그를 나무라듯 팔을 가볍게 두드렸고, 무츠노카미는 어깨를 으쓱했다.
***
“눈이 오는데 굳이 나오고, 그렇게 급하게 사야 하는 게 있었던가?”
“급하다고까지 할 건 없지만, 될 수 있는 한 빨리 고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상점가를 걸으며 대답하는 키리히메의 입에서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제 본체에 쌓인 눈을 털어내던 나가소네가 고개를 갸우뚱 숙였다.
“고른다니?”
“설명이 늦어졌네. 치쿠젠 국의 아게하 씨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어서, 선물을 보내려고.”
“으음, 지난 번에 왔던 그 사니와인가? 분명 그 때는 그 쪽의 무츠노카미 요시유키와 함께 왔던……”
거기서 나가소네는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키리히메는 입을 가리고 웃으며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응, 그 쪽의 무츠노카미 씨와 결혼한다는 거 같아. 직접 통보받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는 소식을 전해 들어서.”
“거 참. 그런데 그럴 거면 아까 그 녀석을 끌고 나오는 편이 고르긴 편했을 텐데.”
“아까는 나가소네가 제일 기분 나빠했으면서. 그리고 서로 다른 존재라지만, 다른 혼마루의 자신이 결혼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아무래도 멋쩍어할 거야.”
“하하, 그도 그런가.”
나가소네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키리히메는 너무 웃으면 안 돼, 라고 가볍게 말을 건네며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주변 풍경이 음식 냄새가 나는 거리에서 목재와 향낭의 향기가 떠다니는 거리로 바뀌었다.
키리히메는 가게들을 흘끗흘끗 곁눈질했다. 그녀의 혼마루는 신과 요괴들의 세계 말단에 자리잡고 있었기에, 당연히 가게를 운영하는 이들도 말단 신들이나 요괴들이었다. 인간인 그녀에게는 신기한 물건들이 줄지어 서서 나는 어떻냐고 손님을 잡아끌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인파에서 떼어내듯 어깨를 감싸 끌어당기며 나가소네가 말을 걸었다.
“뭘 살지는 정했나?”
“그렇네… 아게하 씨는 외국 출신이라고 들어서, 가능하면 이 쪽 문화와 관련있는 물건을 선물하고 싶어.”
“혼례 축하 선물에, 이 쪽 문화와 관련있는 것이라. 어렵군…. 아, 저건 어떻나?”
문득 나가소네가 가게 하나를 가리켰다. 목제 다기 등이 한가득 늘어서 있는 가게였다. 키리히메가 그 쪽으로 시선을 보내자 가게 종업원인 듯한 오니(鬼) 여인이 빨간 뿔을 흔들며 인사했다.
“다기?”
“그것도 뭐, 나쁘진 않다만.”
말보다 행동이라고 생각했는지 나가소네는 키리히메의 어깨를 잡아끌고 가게 앞으로 향했다. 칠기에서 나는 목재의 향이 한층 키리히메의 코끝을 간질였다.
근시가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인 것을 키리히메는 지그시 바라보았다. 세 개의 잔이 크기순으로 단 위에 곱게 쌓여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손뼉을 쳤다.
“산산쿠도(三々九度)에 쓰는 잔이네.”
“외국에서 왔다면 아직 이건 준비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 신랑 쪽에서 준비했을지도 모르지만, 그 놈이라면 빼먹었다에 한 표 거마.”
“나가소네.”
나가소네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키리히메가 나무라듯 이름을 불렀다. 나가소네는 항복의 표시로 두 손을 들어보였다.
이렇든저렇든 그의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키리히메는 오니 종업원에게 말을 걸었다.
“산산쿠도용 잔을 보고 싶은데, 안쪽에 좀 더 높은 가격대의 물건을 볼 수 있을까요?”
“다양하게 갖추고 있답니다. 주문제작하실 수도 있고, 기성품을 가져가실 수도 있어요. 자, 이쪽으로.”
오니가 가게 안쪽으로 열려있는 문을 정중히 가리켰다. 키리히메는 나가소네의 소매를 끌어당겼고, 두 사람은 가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또 오세요-”
종업원의 인사를 뒤로 하고, 키리히메와 나가소네는 다시 눈이 내리는 거리로 나왔다.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키리히메의 손에 들린 지갑 주머니가 조금 가벼워졌다는 것과 나가소네의 손에 보자기로 겹겹이 감싸인 큼직한 상자 꾸러미가 들려 있다는 것이었다. 아까부터 그치지 않고 내리는 눈 때문에 거리에는 하얀 층이 한층 두껍게 쌓여있었고, 그 때문에 두 사람의 발자국은 아까보다도 한층 깊게 새겨졌다.
“무겁지 않아?”
“걱정 마라, 힘은 남아도니까. 마음에 드는 걸 찾아서 다행이군.”
키리히메는 생긋 웃으며 나가소네의 손에 들린 짐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녀가 고른 잔은 산산쿠도용으로 쓰이는 불그스름한 빛을 띤 것으로, 그 자체는 평범했지만 잔 뒷면에 파도를 닮은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이 특이한 종류였다. 번성을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새겼다던가, 그렇게 종업원이 설명했던 것으로 키리히메는 기억하고 있었다.
“돌아가면 편지를 써서 보내야겠어. 치쿠젠까지는 거리가 꽤 되니까, 내일이나 모레쯤에 도착하려나.”
“야마토에서 치쿠젠까지 하루이틀 만에 도착하는 건가, 세상 많이 좋아졌군.”
“그러게.”
키리히메는 후후 웃으며 눈이 소복히 쌓인 다리를 건넜다. 혼마루로 돌아가는 길을 내딛으며 그녀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선물과 함께 보낼 축하 편지에 뭐라고 쓰는 것이 좋을까를 고민했다. 시를 쓰는 것이 좋을까, 그냥 말을 걸듯이 적는 것이 좋을까 고심하던 키리히메는 하마터면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다. 성대하게 휘청거린 주인의 허리를 한손으로 안아 멈추며 나가소네가 이런이런 하고 혀를 내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