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사니와(이름 및 독자설정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보기
사니와 키리히메가 눈을 떴을 때, 시야는 꽉 닫혀 있었다. 평소라면 종이문 너머로 간신히 들어온 새벽놀이 맴돌고 그 아득히 위에 나무 천장이 보일 터인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대신 무게감 있고 따뜻하며 소나무술이 고인 듯한 향기가 희미하게 남은 뭔가가 눈앞을 메우고 있었다. 제 뒤통수와 귀까지 꼼꼼히 덮은 푹신한 감각에, 키리히메는 자신이 누군가와 함께 이불 속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앗!?"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민 키리히메는 눈을 휘둥그게 뜨며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날은 이미 환히 밝아 있었다. 닫힌 문으로도 또렷이 들어오는 햇살은 지금이 아무리 일러도 아침해가 다 뜬 후라는 것을 똑똑히 알려주었다. 머리맡에 놔둔 서양식 시계의 바늘 또한 그에 가세하여, 지금이 이미 일곱 시는 훌쩍 넘겼다는 것을 무정하게도 또렷이 고해 왔다. 오늘의 근시가 깨우러 올 시간인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하고 당황하던 키리히메는, 한 이불을 덮고 잠든 남사의 얼굴을 보고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오늘 근시, 니혼고였지."

키리히메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듬성듬성 수염이 도드라지는 성숙한 외모의 도검남사는 제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상 모르고 잘 자고 있었다. 그것도 가슴팍까지 반쯤 드러낸 채. 그 흉곽이 얼핏 눈에 들어오자, 키리히메는 치밀어오르는 부끄러움에 반사적으로 그에게 등을 보이고 몸을 돌려버렸다.
니혼고는 자신이 근시를 서기 전날 밤에는 꼭 제 주인의 방에 찾아왔다. 때로는 손에 술병을 들고 있었고, 때로는 전장에 나갈 때처럼 정복에 손에 창을 든 채였고, 때로는 아무것도 손에 들지 않은 채 느슨한 화복(和服)을 입은 모습이었다. 술병을 들고 있을 때는 툇마루에 앉아 함께 달구경을 했고, 정복 차림일 때는 순찰을 돌던 중 고개를 내민 것이라 짧게 몇 마디 살가운 말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느슨한 화복 차림으로 찾아왔을 때에는 문을 닫은 채 방 안에서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는 밤을 지새웠다. 이를테면 바로 전날 밤처럼. 거기까지 생각하자 키리히메는 저도 모르게 몸을 동그랗게 웅크렸다. 한 번 죽었던 몸임과는 관계없이 심장은 심하게 잘 뛰어 주었다.
심호흡을 두어 번 내쉰 키리히메는 곧 이불을 걷어냈다. 정확히는 자신 쪽에 덮혀있던 이불의 반쪽을 접어 니혼고 쪽에 겹쳐올려지게 만들었다. 나갈 채비를 다 한 후 니혼고를 깨우는 것이 여러 의미에서 낫다는 것을 사니와는 잘 알고 있었다. 완연히 여름에 접어들어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에 감사하며, 키리히메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어딜 가려고?"

바닥을 긁는 듯한 거친 목소리가 키리히메의 등 뒤에서 났다. 동시에, 키리히메는 윗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도로 뒤로 끌려들어가 눕혀져버렸다. 잔근육이 다부진 팔이 허리와 어깨를 꽉 붙들자, 그 무게감에 키리히메는 하마터면 심장이 멎을 뻔했다.

"이, 일어나 있었어?"
"아니, 아직 자고 있다."
"자는데 어떻게 대답하는 거야."
"잘못 들은 거다. 나는 지금 자고 있다. 물론 너도 자고 있지."

니혼고의 어조는 잠에 취한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음성에서는 일부러 술에 녹인 것 같은 진득하고 나지막한 울림이 강하게 느껴졌다. 딱 키리히메의 한쪽 귓바퀴 바로 위에 입술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니혼고는 계속 말도 안 되는 세뇌를 진하게 흘려넣었다.

"넌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무리했는데 벌써 회복됐을까. 네 체력은 내가 잘 알아."

낯뜨거워지는 내용에 키리히메는 얼굴을 확 붉혔다. 그러나 목소리를 올리지는 못했다. 니혼고의 저음이 귓가에 늘어붙어 떨어지지 않는 탓이었다. 거친듯 다듬어진 듯 기묘한 기품과 야생성이 공존하는 이 음색은, 이 혼마루의 사니와의 정신을 빼놓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볼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목을 꿀꺽 울리게 하며 손을 달달 떨게 만드는 매혹적인 목소리에 그만 남사의 뜻대로 넘어가버린 적이 지금까지 적어도 네 번은 될 터였다. 이런 데 약한 자신을 살짝 탓하며 입술을 깨물던 키리히메에게, 니혼고가 일부러 소리를 내어 침을 삼키고 다시 속삭였다.

"더 자라, 아니면, 한 번 더 힘을 빼버릴까?"
"잠, 깐……!"

머리속까지 녹여내는 속삭임에 키리히메의 입술이 와들와들 떨고 말았다. 음정이 흐트러진 대답에서 그걸 충분히 알아차리고도 남은 니혼고가 키득키득 웃었다. 그는 제 주인의 귓바퀴를 입술로 가볍게 깨물고, 아까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낮게 울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네가 내 목소리에 약하다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으니 말이지. 약점을 찌르는 건 전투의 기본이다."
"니혼고, 나랑 싸우는 사이였어?"

힘빠진 어투로 묻는 키리히메에게 니혼고는 대답하지 않고 한 번 더 귓바퀴를 살짝 물었다. 호칭을 부르는 목소리와 고의로 울린 숨소리가 귓속으로 그대로 녹아내려, 조금 익숙해지려던 사니와를 다시 뒤흔들어놨다. 주인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틈을 타, 정3위로 칭송받는 창의 남사가 그 허리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어깨를 껴안고 있던 팔을 잠시 들어선 이불을 도로 펴서 자신과 주인을 한데 덮어버리고는, 남사가 느물느물 얘기했다.

"하루 정도는 여유를 부리라고. 이 혼마루의 주인은 너다. 뭐라 할 녀석은 없어. 무엇보다 내가 조금 더 이렇게 있고 싶어서 말이지. 응?"

모래성을 살살 긁어내어 무너뜨리는 듯한 말투에 키리히메는 가슴 속에 그렇잖아도 조금밖에 남아있지 않던 저항심이 완전히 증발해버리는 걸 느꼈다. 이국에는 악마라는 요괴가 있어 인간을 달콤한 말로 유혹한다는데 그 형국을 재현한다면 지금 니혼고와 꼭 닮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머릿속 한구석에 조용히 두며, 키리히메는 포기하고 온몸의 힘을 뺐다. 그래도 아홉 시가 되기 전에는 일어나자고 헛된 다짐을 하는 사니와를, 어느새 눈을 뜬 니혼고가 등 뒤에서 응시했다. 어느새 붉은기를 두른 두 눈은 목소리만큼이나 요사스러운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구 연성(200101 이전) > 구 도검연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歪 【히젠사니?】  (0) 2019.06.23
間 【하치사니】  (0) 2019.06.14
残 【톤보사니】  (0) 2019.05.19
毬 【히젠사니】  (0) 2019.05.05
慰 【쵸손사니】  (0) 2019.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