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사니와(이름 및 독자설정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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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빈 자리는 늘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밖이 아직 어슴푸레한 이른 아침, 사니와 키리히메는 말없이 제 옆자리를 쓰다듬었다. 한 사람이 쓰기에는 너무 큰 이불 위에, 베개는 단 하나뿐. 어제 밤에만 해도 분명 두 개였을 텐데, 하나는 벌써 알아서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이불도 처음부터 키리히메 혼자만이 덮었던 것처럼 깔끔하고, 방 안에 감도는 공기조차도 처음부터 한 사람만이 마시고 내쉬었던 것처럼 서늘했다. 넉넉하게 남은 공간을 매만져보았을 때 느껴지는 희미한 온기만이, 그 자리에 한 명 더 누웠다 갔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었다.
"일찍 일어나네, 톤보키리는."
요를 더듬으며 키리히메는 한숨을 쉬었다. 어젯밤 같은 이불을 덮었던 남사는, 대체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정말 완벽하리만치 자신의 흔적을 치우고 떠나갔다. 이전에 함께했던 밤에도, 그 전에도 그랬다. 지금만은 그다지 달갑지 않은 신령의 조화에 키리히메는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다른 남사들에게 알리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말했던 것은 키리히메 자신이었다. 부끄럽기도 했거니와, 남사들 모두를 평등히 대해야 하는 사니와로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충직한 신하이기도 했던 톤보키리는 그 말에 동의했고, 그는 떳떳이 제 방을 비울 수 있는 야간 순찰을 맡는 날에만 제 주인의 방에 조심스레 찾아와 연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날이 밝기 전, 키리히메가 깨기 전 먼저 방을 빠져나가는 것을 양해해 달라고 고하는 것도 그는 잊지 않았다. 물론 키리히메 또한 그에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해서, 자신이 허락한 일인데도 아쉬움을 느끼고 마는 키리히메였다. 톤보키리가 제 주인의 아침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심스레 빠져나간다는 것도, 행여나 사니와를 깨우러 오는 근시에게 의심을 살까봐 제 흔적을 깨끗이 지우고 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톤보키리 나름대로의 사랑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키리히메의 가슴 속에는 먹구름이 끼고 마는 것이었다.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흘려주면 좋을 텐데."
하얀 요 위에 자줏빛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으면 금방 눈에 띈다는 것을 알면서, 키리히메는 혼자 투정을 부려보았다. 그리고는 몇 번 고개를 젓고, 몸을 일으켜 채비를 했다. 아까보다 밖이 밝아진 가운데, 복도 쪽 문 너머에서 근시의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나날이 지나갔다. 조만간 혼마루 시설을 검사하러 조사원이 온다는 통보가 와서 대청소를 계획한 것과, 다리를 청소하던 우라시마와 고코타이가 사이좋게 연못에 빠져서 소동이 난 것을 제외하면 평온한 나날이었다. 키리히메 또한 평소처럼 남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사카성으로 출진을 떠나는 하카타 일행을 격려하고, 대련장에서 나가소네와 무츠노카미의 대결을 참관하고, 그새 서고의 책을 거의 다 파악한 쵸우손에게 새 책을 구입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오늘 근시인 쵸우기와 부대 편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후 업무까지 어느 정도 정리됐을 때는 여러 남사들과 당고를 나눠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그 여러 남사 중에는 톤보키리도 섞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닷새쯤 후에, 아는 분의 혼마루에 가기로 했어."
키리히메가 당고 꼬치를 내려놓으며 이야기했다. 찻잔에 차를 따르던 모노요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언가 일이 있으신가요?"
"그냥 놀러오라는 말을 들어서. 아마 하룻밤 자고 오지 않을까."
"누가 같이 가야 하잖아. 누구랑 갈 거야?"
"아마도 톤보키리?"
아이젠의 물음에 키리히메는 맞은편에 앉은 덩치 큰 남사를 가리켰다. 반듯한 자세로 앉아 찻잔을 기울이던 톤보키리는 잔을 내려놓고는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
"핫, 알겠습니다."
"다른 혼마루에 간다면 복장도 신경써야겠네요. 옷은 생각해 두셨나요?"
"몇 가지는 생각해뒀는데, 아무래도 근시와의 조합도 생각해야 하니까. 톤보키리, 저녁에 잠깐 방에 올 수 있을까? 얘기를 맞춰야 할 것 같아."
"예, 목욕 시간 이후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흐트러짐 없는 다부진 말투로 톤보키리는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다정하지만 동시에 무척 예의바르고 반듯해서,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는 사정(私情)이 조금도 섞여있지 않은 것 같았다. 자신만 얼굴이 빨개지지 않으면 괜찮다, 그렇게 생각하며 키리히메는 김이 나는 찻잔을 일부러 얼굴에 가까이 가져갔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사니와의 볼을 덥히는 가운데, 멀리서 쇼쿠다이키리가 오늘 저녁식사 당번들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
달이 휘영청 뜰 정도로 늦은 저녁, 톤보키리는 키리히메의 사실에 발을 들여놓았다. 갑주까지 갖춰입은 정복 차림인 것에 키리히메는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톤보키리가 갑주를 구성하고 있던 신력을 흩뜨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쥬즈마루 공에게 부탁하여 야간 순찰 당번을 교대받았습니다. 그 편이 오늘 방을 비우기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하여."
꼼꼼하고 의외로 철두철미한 모습에 키리히메는 미소지었다. 어느새 몸에서 갑주를 완전히 지운 톤보키리는, 언제나처럼 제 주군이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키리히메가 자리잡은 것을 확인하고선 그 맞은편에 앉았다.
옷을 의논한다는 핑계는 방문을 닫은 순간 방 구석으로 굴러가 버렸다. 아직 부끄러움이 남은 풋풋한 침묵이 잠시 흐른 후, 톤보키리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입을 열었다. 아까 전보다 나지막하고 색채가 섞인 목소리였다.
"닿아도 괜찮겠습니까?"
"응."
키리히메가 대답하자마자 톤보키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코끝이 닿을 거리에서 뺨을 두터운 오른손으로 감싸고 목덜미를 왼손으로 쓸어주었다. 간지러운 미소가 양쪽의 입가에 걸리고, 남사는 그대로 제 주인에게 입을 맞추었다. 몇 번인가 겹쳤지만 매번 새롭고 가슴 속이 달큰해지는 입맞춤에, 키리히메의 가슴 속이 녹아내렸다. 그리고 흐물흐물 녹은 마음 속에서, 아침에 떠올렸던 자그마한 아쉬움이 고개를 내밀었다.
입술이 떨어졌을 때 키리히메는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톤보키리와 조금 더 오래 닿아있고 싶었다. 지금 입맞춤 얘기만이 아니었다. 아침이 되면 톤보키리는 또 해가 뜨기도 전에 제 흔적을 지우고 주인의 방에서 자취를 감출 터였다. 늘 그랬듯이, 주인을 배려하여 자신의 빈 자리조차 지우고, 도저히 어쩔 수 없는 희미한 체온만을 남기고 밖으로 나갈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허락해놓고서도 그것이 너무 아쉬워진 키리히메는, 자신의 팔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주인의 마음을 멋대로 알아챈 두 팔은, 아직 숨을 고르던 톤보키리를 꼭 붙들어 그 등에 매달렸다.
"주군?"
톤보키리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놀란 것이겠지. 키리히메는 어렴풋이 짐작했다. 사귀게 된 지 그리 시간이 많이 지나진 않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키리히메 쪽에서 먼저 나서는 경우는 잘 없었다. 그렇게 배워오기도 했거니와 부끄러움을 타는 탓에 늘 톤보키리 쪽에서 먼저 다가가는 전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 것이 오늘은 먼저 껴안아오니 놀랄 법도 했다. 그가 살짝 동요하고 있는 지금이라면 더 전하기 쉽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즉흥적으로 하며 키리히메는 속삭였다.
"오늘만 말하게 해 줘, 톤보키리. …내가 일어나기 전에 먼저 자리를 비우지 말아줘. 일찍 나가야 하면 차라리 깨워줬으면 좋겠어."
톤보키리의 가슴에 이마를 누른 채 키리히메는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그 목소리는 톤보키리가 당황해 대답하던 말보다도 떨리고 있었다.
"하오나, 주군."
"…안 되면, 여기 있었단 흔적이라도 남기고 가……."
톤보키리가 무어라 말을 잇기도 전, 키리히메는 조금 더 밀어붙였다. 마지막 말은 올해 들어 키리히메가 한 말 중 제일 강한 어조였고, 어딘가 울음기가 섞여 있었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만약 혼자였다면 울었을 거 같은 느낌을 키리히메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톤보키리의 등을 붙잡은 두 손이 덜덜 떨렸다. 꽉 옷을 쥔 손에 힘이 더욱 들어갔다가, 조금 빠지려 했다. 그 순간, 키리히메가 고개를 들고 떨어지기도 전, 이번에는 남사 쪽에서 사니와를 끌어안았다. 꾹 누르는 듯한 거친 포옹에 키리히메는 콜록 기침을 했다.
"죄송합니다. 방금 그 말이, 제게는 분에 넘치도록 사랑스러워 무례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주인을 품 속에 끌어넣듯 껴안은 상태에서 톤보키리가 속삭였다. 제 연인의 가슴팍에 얼굴이 묻힌 키리히메는,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심장소리를 들으며 톤보키리의 말을 그 사이에서 잡아내어 들었다. 심장소리가 워낙 크게 들려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무척 행복한 일이었다.
"…주군의 뜻이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일 다른 공들에게 들키지 않으면서 최대한 늦게 일어나려면 어찌해야 할지, 어려운 일이 되겠군요."
중얼거리듯 대답하는 톤보키리의 맡끝에는 기묘한 웃음소리가 걸려 있었다. 오늘은 빈 자리를 남기고 가지 않겠다는 그 말이 너무 기뻐, 키리히메는 연인의 웃음소리를 이어받듯 작은 웃음을 터뜨려 이었다.
밖이 아직 어슴푸레한 이른 아침, 사니와 키리히메는 말없이 제 옆자리를 쓰다듬었다. 한 사람이 쓰기에는 너무 큰 이불 위에, 베개는 단 하나뿐. 어제 밤에만 해도 분명 두 개였을 텐데, 하나는 벌써 알아서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이불도 처음부터 키리히메 혼자만이 덮었던 것처럼 깔끔하고, 방 안에 감도는 공기조차도 처음부터 한 사람만이 마시고 내쉬었던 것처럼 서늘했다. 넉넉하게 남은 공간을 매만져보았을 때 느껴지는 희미한 온기만이, 그 자리에 한 명 더 누웠다 갔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었다.
"일찍 일어나네, 톤보키리는."
요를 더듬으며 키리히메는 한숨을 쉬었다. 어젯밤 같은 이불을 덮었던 남사는, 대체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정말 완벽하리만치 자신의 흔적을 치우고 떠나갔다. 이전에 함께했던 밤에도, 그 전에도 그랬다. 지금만은 그다지 달갑지 않은 신령의 조화에 키리히메는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다른 남사들에게 알리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말했던 것은 키리히메 자신이었다. 부끄럽기도 했거니와, 남사들 모두를 평등히 대해야 하는 사니와로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충직한 신하이기도 했던 톤보키리는 그 말에 동의했고, 그는 떳떳이 제 방을 비울 수 있는 야간 순찰을 맡는 날에만 제 주인의 방에 조심스레 찾아와 연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날이 밝기 전, 키리히메가 깨기 전 먼저 방을 빠져나가는 것을 양해해 달라고 고하는 것도 그는 잊지 않았다. 물론 키리히메 또한 그에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해서, 자신이 허락한 일인데도 아쉬움을 느끼고 마는 키리히메였다. 톤보키리가 제 주인의 아침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심스레 빠져나간다는 것도, 행여나 사니와를 깨우러 오는 근시에게 의심을 살까봐 제 흔적을 깨끗이 지우고 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톤보키리 나름대로의 사랑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키리히메의 가슴 속에는 먹구름이 끼고 마는 것이었다.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흘려주면 좋을 텐데."
하얀 요 위에 자줏빛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으면 금방 눈에 띈다는 것을 알면서, 키리히메는 혼자 투정을 부려보았다. 그리고는 몇 번 고개를 젓고, 몸을 일으켜 채비를 했다. 아까보다 밖이 밝아진 가운데, 복도 쪽 문 너머에서 근시의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나날이 지나갔다. 조만간 혼마루 시설을 검사하러 조사원이 온다는 통보가 와서 대청소를 계획한 것과, 다리를 청소하던 우라시마와 고코타이가 사이좋게 연못에 빠져서 소동이 난 것을 제외하면 평온한 나날이었다. 키리히메 또한 평소처럼 남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사카성으로 출진을 떠나는 하카타 일행을 격려하고, 대련장에서 나가소네와 무츠노카미의 대결을 참관하고, 그새 서고의 책을 거의 다 파악한 쵸우손에게 새 책을 구입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오늘 근시인 쵸우기와 부대 편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후 업무까지 어느 정도 정리됐을 때는 여러 남사들과 당고를 나눠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그 여러 남사 중에는 톤보키리도 섞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닷새쯤 후에, 아는 분의 혼마루에 가기로 했어."
키리히메가 당고 꼬치를 내려놓으며 이야기했다. 찻잔에 차를 따르던 모노요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언가 일이 있으신가요?"
"그냥 놀러오라는 말을 들어서. 아마 하룻밤 자고 오지 않을까."
"누가 같이 가야 하잖아. 누구랑 갈 거야?"
"아마도 톤보키리?"
아이젠의 물음에 키리히메는 맞은편에 앉은 덩치 큰 남사를 가리켰다. 반듯한 자세로 앉아 찻잔을 기울이던 톤보키리는 잔을 내려놓고는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
"핫, 알겠습니다."
"다른 혼마루에 간다면 복장도 신경써야겠네요. 옷은 생각해 두셨나요?"
"몇 가지는 생각해뒀는데, 아무래도 근시와의 조합도 생각해야 하니까. 톤보키리, 저녁에 잠깐 방에 올 수 있을까? 얘기를 맞춰야 할 것 같아."
"예, 목욕 시간 이후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흐트러짐 없는 다부진 말투로 톤보키리는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다정하지만 동시에 무척 예의바르고 반듯해서,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는 사정(私情)이 조금도 섞여있지 않은 것 같았다. 자신만 얼굴이 빨개지지 않으면 괜찮다, 그렇게 생각하며 키리히메는 김이 나는 찻잔을 일부러 얼굴에 가까이 가져갔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사니와의 볼을 덥히는 가운데, 멀리서 쇼쿠다이키리가 오늘 저녁식사 당번들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
달이 휘영청 뜰 정도로 늦은 저녁, 톤보키리는 키리히메의 사실에 발을 들여놓았다. 갑주까지 갖춰입은 정복 차림인 것에 키리히메는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톤보키리가 갑주를 구성하고 있던 신력을 흩뜨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쥬즈마루 공에게 부탁하여 야간 순찰 당번을 교대받았습니다. 그 편이 오늘 방을 비우기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하여."
꼼꼼하고 의외로 철두철미한 모습에 키리히메는 미소지었다. 어느새 몸에서 갑주를 완전히 지운 톤보키리는, 언제나처럼 제 주군이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키리히메가 자리잡은 것을 확인하고선 그 맞은편에 앉았다.
옷을 의논한다는 핑계는 방문을 닫은 순간 방 구석으로 굴러가 버렸다. 아직 부끄러움이 남은 풋풋한 침묵이 잠시 흐른 후, 톤보키리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입을 열었다. 아까 전보다 나지막하고 색채가 섞인 목소리였다.
"닿아도 괜찮겠습니까?"
"응."
키리히메가 대답하자마자 톤보키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코끝이 닿을 거리에서 뺨을 두터운 오른손으로 감싸고 목덜미를 왼손으로 쓸어주었다. 간지러운 미소가 양쪽의 입가에 걸리고, 남사는 그대로 제 주인에게 입을 맞추었다. 몇 번인가 겹쳤지만 매번 새롭고 가슴 속이 달큰해지는 입맞춤에, 키리히메의 가슴 속이 녹아내렸다. 그리고 흐물흐물 녹은 마음 속에서, 아침에 떠올렸던 자그마한 아쉬움이 고개를 내밀었다.
입술이 떨어졌을 때 키리히메는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톤보키리와 조금 더 오래 닿아있고 싶었다. 지금 입맞춤 얘기만이 아니었다. 아침이 되면 톤보키리는 또 해가 뜨기도 전에 제 흔적을 지우고 주인의 방에서 자취를 감출 터였다. 늘 그랬듯이, 주인을 배려하여 자신의 빈 자리조차 지우고, 도저히 어쩔 수 없는 희미한 체온만을 남기고 밖으로 나갈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허락해놓고서도 그것이 너무 아쉬워진 키리히메는, 자신의 팔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주인의 마음을 멋대로 알아챈 두 팔은, 아직 숨을 고르던 톤보키리를 꼭 붙들어 그 등에 매달렸다.
"주군?"
톤보키리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놀란 것이겠지. 키리히메는 어렴풋이 짐작했다. 사귀게 된 지 그리 시간이 많이 지나진 않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키리히메 쪽에서 먼저 나서는 경우는 잘 없었다. 그렇게 배워오기도 했거니와 부끄러움을 타는 탓에 늘 톤보키리 쪽에서 먼저 다가가는 전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 것이 오늘은 먼저 껴안아오니 놀랄 법도 했다. 그가 살짝 동요하고 있는 지금이라면 더 전하기 쉽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즉흥적으로 하며 키리히메는 속삭였다.
"오늘만 말하게 해 줘, 톤보키리. …내가 일어나기 전에 먼저 자리를 비우지 말아줘. 일찍 나가야 하면 차라리 깨워줬으면 좋겠어."
톤보키리의 가슴에 이마를 누른 채 키리히메는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그 목소리는 톤보키리가 당황해 대답하던 말보다도 떨리고 있었다.
"하오나, 주군."
"…안 되면, 여기 있었단 흔적이라도 남기고 가……."
톤보키리가 무어라 말을 잇기도 전, 키리히메는 조금 더 밀어붙였다. 마지막 말은 올해 들어 키리히메가 한 말 중 제일 강한 어조였고, 어딘가 울음기가 섞여 있었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만약 혼자였다면 울었을 거 같은 느낌을 키리히메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톤보키리의 등을 붙잡은 두 손이 덜덜 떨렸다. 꽉 옷을 쥔 손에 힘이 더욱 들어갔다가, 조금 빠지려 했다. 그 순간, 키리히메가 고개를 들고 떨어지기도 전, 이번에는 남사 쪽에서 사니와를 끌어안았다. 꾹 누르는 듯한 거친 포옹에 키리히메는 콜록 기침을 했다.
"죄송합니다. 방금 그 말이, 제게는 분에 넘치도록 사랑스러워 무례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주인을 품 속에 끌어넣듯 껴안은 상태에서 톤보키리가 속삭였다. 제 연인의 가슴팍에 얼굴이 묻힌 키리히메는,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심장소리를 들으며 톤보키리의 말을 그 사이에서 잡아내어 들었다. 심장소리가 워낙 크게 들려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무척 행복한 일이었다.
"…주군의 뜻이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일 다른 공들에게 들키지 않으면서 최대한 늦게 일어나려면 어찌해야 할지, 어려운 일이 되겠군요."
중얼거리듯 대답하는 톤보키리의 맡끝에는 기묘한 웃음소리가 걸려 있었다. 오늘은 빈 자리를 남기고 가지 않겠다는 그 말이 너무 기뻐, 키리히메는 연인의 웃음소리를 이어받듯 작은 웃음을 터뜨려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