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사니와(이름 및 독자설정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혼마루에서 밭 쪽으로 난 문으로 나가 조금 걸으면 매화나무가 여럿 자라는 곳이 있었다. 백매화가 대부분이지만 드문드문 홍매화가 자라 전체적으로는 아름다운 연분홍빛 흐름을 만드는 멋진 장소였다. 매화가 만발하는 시기도 지나 기세가 수그러든 지금도, 그 잔상은 여전히 가슴을 설레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그 매화나무 중 가장 큰 홍매화 아래, 사니와 키리히메는 가만히 꿇어앉아 땅을 파고 있었다. 호미 같은 것으로 얕게 땅을 파는 그 모습을, 곁에 서 있던 검붉은 옷의 소년이 기품있게, 하지만 의아하다는 듯 지켜보았다.
"뭔가 심으려는 거야?"
그 물음에 키리히메는 고개를 저었다. 파낸 자리를 손으로 가늠하고는 그 바닥을 꼭꼭 다지는 모습에, 마사무네 도파의 단도 휴우가는 더욱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기사 무엇을 심기에 이 위치는 매화나무에서 너무 가까웠다. 하지만 그렇다면 대체 뭘 하려는 것일까, 휴우가가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키리히메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곱게 싸인 흰 종이 꾸러미는 매우 가벼워 보였다. 그러나 옅게 보이는 그림자가 그 안에 무언가가 들어 있음을 알려주었다. 종이를 들치려던 키리히메가 순간 휴우가 쪽을 보았다. 곧 사니와는 부끄럽다는 듯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방금 파놓은 땅 쪽으로 허리를 굽혔다.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말하고 키리히메는 종이에 쌌던 것을 땅을 판 자리에 흘려넣듯이 부었다. 안에 있던 것들이 힘없이 팔랑팔랑 떨어지는 것이 휴우가의 눈에도 똑똑히 보였다.
말라버린 나뭇가지와 꽃송이들이었다. 본래는 예쁘고 신선한 빛을 자랑했을 홍매화였다. 그러나 지금 키리히메의 손에서 떨어지는 그것들은 볼품없이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군데군데 변색되고 뒤틀린 그 모습은 썩은 것 같기도 했지만, 그나마 땅에 내려앉자 그 흉진 형상이 흙색에 묻혀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압화를 만들려다 실패했어. 이 나무 밑에서 주워온 거였는데."
"압화를?"
"응. 가지까지 한데 말리려고 했던 게 안 좋았나 봐. 나중에 보니까 매화는 가지는 따로 말리는 법이 있대."
쓰게 웃으며 흙을 덮는 키리히메의 표정에서는 실수한 것에 대한 겸연쩍음보다는 아릿한 슬픔이 더 진하게 묻어나고 있었다. 휴우가는 매화나무를 올려다보고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이렇게 보기 좋은 매화나무에서 얻어온 가지를 못 쓰게 만들었다면 마음이 아플 법도 하다고, 기품 어린 단도는 그렇게 이해했다. 그냥 버리지 않고 장례를 치러주듯 땅에 묻어줄 정도로 감상적인 주인이라면 더더욱.
휴우가는 함께 허리를 굽혀, 자신의 주인이 흙을 다 덮은 위를 한손으로 토닥여 다져주었다. 그리고는 다른 손으로 품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주인에게 건네주었다. 키리히메가 고맙다고 웃으며 수건을 받아들었을 때, 단도 근시는 문득 생각난 것을 물었다.
"가지까지 같이 말리려던 이유가 있어? 표본을 만들려던 건... 아닌 것 같고."
사니와의 얼굴을 보며 휴우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혼마루의 주인은 표본을 만들어 분류하는 것을 즐기는 성격은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사니와의 얼굴에선 그런 정연한 것보다는 보다 감상적인 것이 느껴졌다. 적어도 휴우가는 그렇게 생각했다.
키리히메는 손을 수건으로 훔치고, 수건을 가볍게 털어 흙을 떨어냈다. 그리고는 적당히 접어 휴우가에게 돌려주며 애매하게 웃었다. 어린 시절의 실수담을 이야기하는 듯한 표정으로, 사니와가 답했다.
"함께 있는 모습이 예뻐서 잘라내기가 아까웠어. 그래서 같이 해주려고 했는데, 잘 모르고 만들어버려서 이렇게."
그렇게 말하는 주인은, 휴우가의 눈에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세상과 동떨어져 보였다. 신령인 도검남사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다고 한 박자 늦게 스스로에게 딴지를 걸며, 휴우가는 쓴웃음을 지었다. 마음 여린 주인이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지키는 단도인 자신에게는 보람 있는 주인이다. 일찍이 높은 이들 간의 선물로, 또 격조 있는 부적으로 이름 높았던 마사무네 파의 단도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깝네. 다음에는 잘 될 거야."
"그러면 좋겠다."
"그럴 거야. 지금 다른 가지를 가져가겠어?"
"지금은 괜찮아. 내년에 한껏 피면 그 때 또 도전해볼래."
"그래."
휴우가는 미소와 함께 홍매화를 올려다보았다. 거의 져버렸지만 얼마 전까진 흐드러지도록 눈부시게 피었던 이 꽃을, 내년에도 주인이 볼 것이라는 약속이 생겼다. 다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라고, 단도 남사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내년에는 더 잘 해 보자."
그 때는 오늘처럼 꽃을 땅에 묻기보다, 예쁘게 마른 압화로 무언가를 만들자. 휴우가는 그렇게 말하며 주인의 손을 잡아 주었다. 닦았지만 자신의 손에는 흙이 여전히 묻었다며 키리히메가 당황했지만, 휴우가는 그것을 신경쓰지 않고 더 굳게 잡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