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사니와(이름 및 독자설정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네네키리마루는 늘 맨발이네."
사니와 키리히메가 붓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툇마루에서 올라와 제 발을 훔치던 네네키리마루가 고개를 들었다. 표정변화가 크지 않은 그 얼굴에서는 사니와의 그 말을 듣고 그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짐작하기 어려웠으나, 수건을 한쪽으로 치우며 대답하는 목소리는 평소처럼 울리는 듯하면서도 고요했다.
"발을 무언가로 감싸고 걷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아 이렇게 다니고 있다."
"응… 편하다면 상관없지만, 아프지는 않아?"
"무엇이 말인가?"
네네키리마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에 성큼성큼 걸어들어와 다다미 바닥을 밟는 그의 두 발은 조금 전까지는 정원 바닥을 밟았을 터였다. 시기는 초봄이나 아직 이른 봄의 추위가 남아있어 날은 쌀쌀했고, 게다가 때늦은 눈이 내리는 바람에 정원 바닥은 더욱 차갑고 깔깔했다. 실제로 네네키리마루의 두 발은 잘 보면 평소보다 살짝 벌건 빛을 띠고 있었다. 그 발을 가만히 보며, 키리히메가 걱정스레 제 손을 모았다.
"날이 추운데 맨발로 괜찮은가 해서. 오늘은 눈도 내렸고."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산의 짐승도 언제나 맨발로 다니지."
"네네키리마루는 짐승이 아니잖아."
"성질은 크게 다르지 않을 터이다. 무엇보다 나는 오늘보다 추운 날에도 눈밭을 이 발로 다니지 않았는가."
"그러고 보니 그렇네."
키리히메는 쓴웃음을 지었다. 발목까지 잠길 정도의 눈이 쏟아진 날에도 아무렇지 않게 맨발로 이러저리 다니며 눈을 치우던 네네키리마루를 보고 기겁하여 달려나갔던 기억이 키리히메의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발을 싸맬 것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은가 당황하여 묻던 사니와에게, 산의 남사는 대체 무엇을 그리 걱정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되돌려 준 바 있었다. 지금의 네네키리마루와 꼭 같은 반응이었더랬다.
닛코 후타라산에 기거하였던 그가 특이한 것일까, 아니면 도검남사 자체가 신령이기에 인간과는 다른 몸인 것일까. 다다미 위에 털썩 앉아 제 턱을 매만지는 네네키리마루를 보며 키리히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느 쪽이건 맨발로 다니는 본인이 아무런 불편함도 없다면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을 끊으면서도, 하얀 머리의 사니와는 줄곧 네네키리마루의 발치를 살폈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은 남사의 한쪽 맨발이 사니와의 눈에 들어왔다. 태연한 네네키리마루의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그 발끝은 여전히 붉어 보였다.
"…저기, 네네키리마루. 발에 잠깐 손 대도 괜찮을까?"
"음?"
사니와의 입에서 문득 나온 말에 네네키리마루가 눈썹을 치켜떴다. 언뜻 보기에는 화난 것처럼 보이는 그 표정에 키리히메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것이 정말로 그가 화난 것이 아니라 그저 표정 변화가 그런 것일 뿐이란 걸 아는 지금에 와서도, 몸이 움찔해버리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날씨가 추우면 두르기 위해 가져왔던 천(현세에서는 숄이라고 부른다 했다)을 보지 않고 더듬어 쥐며, 키리히메는 가만히 네네키리마루의 답을 기다렸다.
고산의 사슴 같은 인상을 지닌 중후한 도검남사는 주인을 한참 말없이 쳐다보았다. 제 턱에서 손을 내린 그는 잠시 흠 하는 소리를 흘리더니 혼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세웠던 무릎을 펴서 발을 앞으로 내밀자 키리히메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혹시 네네키리마루를 뜨악하게 만들었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그럼 실례할게."
"개의치 않는다. 허나 대관절 무엇을……?"
네네키리마루가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키리히메는 애매하게 웃어 그 말을 넘기며, 부드러운 천을 양손에 널듯 들어 무릎걸음으로 다가왔다.
내밀어진 발은 수건으로 닦은데다 신력이 작용한 것인지 깔끔했다. 그러나 잔생채기는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 보였고, 전체적으로 투박한 바위 같은 인상과 맞물려 발을 더욱 거칠어 보이게 했다. 피는 나지 않는 걸 보면 이전에 난 상처, 혹은 현현 때부터 있던 형태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키리히메는 천으로 네네키리마루의 발을 감싸듯 덮어 양손으로 꼭 쥐었다. 예상대로 차가운 느낌이 천을 넘어 손에 확 끼쳐왔다.
"동상 걸릴까봐 걱정돼."
네네키리마루가 그런 일은 겪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키리히메는 가슴에서 올라온 말을 자연스레 입에 흘렸다. 얼음이 겉에 얇게 덮인 듯 서늘한 발을 천으로 꼭꼭 감싼 사니와는 두 손을 모아 그 발을 꼭 쥐었다. 네네키리마루의 덩치가 워낙 큰 탓에 그 발도 커서, 두 손으로도 전부 쥐여지지는 않았다. 발등과 발골을 문지르듯 슥슥 어루만진 사니와는 자기도 모르게 하, 하고 숨결을 내뱉으며 가벼이 주무르듯 손을 움직였다. 천 너머로 조금씩 온기가 오르는 것이 느껴지자 키리히메의 입가가 부드럽게 미소를 머금었다.
"네네키리마루가 괜찮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발이 따뜻한 게 더 좋을 거 같아. 앗, 혹시 이런 건 불편했을……?"
발을 손에서 놓으며 키리히메가 고개를 들었다. 옅은 웃음을 얼굴에 펴바른 채 고개를 든 사니와는, 그 때서야 남사가 아까 전부터 아무 말 없이 이쪽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굳고 위엄 있는 인상의 남사는 언제부턴가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아까 전에 눈썹을 치켜떴을 때 이상으로 동그랗게 뜨인 눈이 선명했고, 평소 꾹 다물려 있는 입은 잘 보면 슬쩍 벌어져 있었다. 얼굴이 붉어지거나 눈썹을 찌푸린 기색은 없었지만, 그는 어떤 의미에서건 놀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남사의 발에서 천을 끌어내 한쪽에 두며 키리히메가 조심스레 그의 눈치를 살폈다.
"저, 네네키리마루?"
"……주인이여."
네네키리마루가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평소보다 깊게 들렸는데, 언짢아하는 중인지 쑥쓰러워하고 있는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그 목소리의 색을 가늠하려 키리히메가 귀를 쫑긋 세운 찰나, 닛코 후타라산 신사의 오오타치가 말을 이었다.
"그 두 손을 모아 내 품에 넣어 보아라."
"네?"
평소에 제 남사를 상대로는 쓰지 않는 경어가 사니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화들짝 놀라 허리를 곧추세운 키리히메와는 대조적으로, 네네키리마루는 이쪽으로 몸을 굽힌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내번복 차림의 도검남사는 그렇잖아도 가슴팍이 벌어져 있는 옷깃을 한손으로 슥 잡아당겨 벌려 보였고, 그 모습에 키리히메는 하마터면 딸꾹질을 할 뻔했다.
키리히메는 주저주저 네네키리마루의 품과 제 두 손을 번갈아보았다. 잠시 후, 사니와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역시나 무릎걸음으로 제 남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옷깃 속에 살며시 집어넣었다. 발과는 대조적인 온기가 기분 좋게 확 퍼져 손끝에서 손등까지 꾸욱 덮어왔다. 살짝 따끔따끔할 정도의 온도차에 키리히메가 눈을 깜작이고 있자, 네네키리마루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정도로 차가워져 있었다."
"아, 응?"
키리히메가 고개를 들어 남사를 바라보았다. 주인을 내려다보는 남사의 표정은 역시 흔들림이 없었으나 아까보다 감정의 색이 짙어져 있었다. 상대를 가엾게 여기는 듯도 쑥쓰러워하는 듯도 한 표정으로, 오오타치는 뜸을 들인 후 다시 말했다.
"주인의 손은 잠시 내 발에서 냉기를 거두어간 것만으로도 이토록 크게 시달린다. 내게는 그 쪽이, 발이 냉기에 접하는 것보다 아득히 타격이 크다."
"시달린다고 할 정도는……."
"나와는 달리 주인은 동상을 입는 몸이다. 시달린다 하여도 어폐는 없을 터."
네네키리마루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제 주인의 어깨를 꾹 쥐어 끌어당겼다. 눈앞의 남사의 품에 손을 넣은 자세로, 키리히메는 얼떨결에 네네키리마루의 품에 머리를 기대다시피 하고 있었다. 쿵쿵거리는 심장소리 사이로 남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방금 전 해준 행위에는 감사한다. 그러나 그대의 손이 차가워지는 것은 원치 않아. 그것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
평범한 말투가 절절하게 들리는 이유는 심장소리가 머릿속을 어지럽힌 탓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키리히메는 두 손을 꼭 모아쥐었다. 네네키리마루의 발을 매만져주며 냉기를 얻어왔던 손은 어느새 화끈거릴 정도로 뜨거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