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사니와(이름 및 독자설정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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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좋아하십니까? 다른 콘노스케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털 사이사이에 더운 기운이 꽉꽉 차고, 혀를 헥헥 내밀게 되는 괴로운 계절이에요. 혼마루의 계절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면 여름으로만은 바꾸지 말아 달라고 사니와에게 간청했을 겁니다. 이번 여름이 덥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재작년 여름은 좀 나았었던 거 같은데.

작년 여름은 어땠냐고요? 글쎄요,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작년 여름에는 더위 같은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거든요. 저도, 이 혼마루의 사니와와 도검남사들도. 장마가 찾아왔었던가도, 어떤 색의 수국이 피었었던가도, 아무도 기억하고 있지 않을 겁니다. 딱 하나 확실한 건 아무도 그 때로 되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뿐입니다.

 

 

작년 7월이면 한참 전력확충계획을 앞두고 있던 때였죠. 혼마루가 들썩들썩했습니다. 그게 정확히 어떤 임무가 될지 몰랐기에 그만큼 모든 면에서 대비를 하고 있어야 했으니까요. 자원을 모으거나 전투 경험을 쌓느라 혼마루의 4개 부대가 움직이지 않을 때가 없었습니다. 다들 많이 움직여서인지 식사도 푸짐하게 나오더군요. 어부지리라고 할지, 저도 덕분에 그 때는 잘 얻어먹었습니다.

남사들이 바삐 움직인다는 건 사니와도 할 일이 많다는 뜻이랍니다. 이 혼마루의 사니와도 눈에 띄게 바삐 움직였었지요. 평소에는 오후쯤이면 여유롭게 쉬면서 노래라도 읊을 텐데, 그 때는 그런 모습도 별로 볼 수 없었죠. 늘 장부를 정리하거나 남사들에게 지시를 내리거나 작전을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하카타 토시로가 근시였던 어느 날에는 기껏 정리한 장부에 코피를 쏟은 적도 있었지요. 그 때도 피가 나는 것보다 얼룩이 져버린 장부를 빨리 다른 곳에 옮겨적어야 한다면서 허둥거렸던 게 떠오르는군요.

당연한 일이지만 이 때는 손님도 거의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평소 찾아오는 손님은 전부 다른 혼마루의 사니와들이었는데, 그 때는 다들 전력확충계획을 대비하느라 다른 혼마루를 방문할 틈이 나지 않았거든요. 더욱이 이 혼마루는 이매망량의 세계 끝자락에 있으니만큼 사니와가 아닌 일반인들도 올 일이 없었죠. 그래서 어느 날 한 남자가 찾아왔을 때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저어, 시간 정부에서 온 __씨가 주인님을 뵙고 싶다고 하는데요."

 

고코타이가 잔뜩 긴장해서 전하더군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시간 정부에서 감시자를 직접 파견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거든요. 사니와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습니다. 그 날 근시이던 쇼쿠다이키리와 의논하다 말고 눈이 휘둥그레지더군요.

사니와를 따라 혼마루 대문까지 가 보니 정말로 그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중년 신사였는데, 여름에는 영 안 어울리는 고동색 정장을 쫙 빼입고 있더군요. 옷이며 머리카락이 전부 하얀 사니와와는 참 대비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실례하지. 잘 지내는 모양이군, 사니와 키리히메."

"예, 염려해 주시는 덕분에."

 

사니와의 말씨는 정중했지만 손발에 힘이 꽉 들어가 있었습니다. 갑자기 높으신 분이 예고도 없이 찾아오면 그럴 법도 하지요. 남자는 눈치를 못 챘던 건지 알면서도 무시했던 건지 껄껄 웃으면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응접실로 가는 내내 남사들의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밭일을 끝내고 돌아오던 이즈미노카미는 들고 있던 광주리를 놓쳐서 호리카와가 하나하나 다 수습했지요. 마당을 쓸던 오테기네와 호네바미도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토시로들, 특히 아키타와 미다레가 눈을 반짝이면서 졸래졸래 따라오려는 걸 이치고가 애써 막는 것도 보였습니다. 이 혼마루의 도검남사들이 처음으로 주군의 상관, 정부 측 사람을 봤으니 호기심이 일었던 거 같습니다. 사니와와 손님보다 한 발자국 뒤에서 걷던 쇼쿠다이키리는 애써 태연했습니다만 역시 꽤나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습니다.

응접실은 쓰이지 않더라도 정리는 잘 해 둡니다. 상할 염려가 적은 마른 다과 종류는 늘 구비해 두고 있고, 뜨거운 물만 있으면 차도 우려낼 수 있게 준비되어 있지요. 갑자기 찾아온 손님을 맞이해서도 변함없이 준비가 잘 되어 있더군요. 쇼쿠다이키리가 뜨거운 물을 가지러 간 동안 사니와는 방석을 꺼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요. 그런데 손님이 갑자기 문을 반쯤 닫았습니다. 창호지 문에 코를 부딪혀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습니다.

 

"미안하네만, 사니와에게만 전해야 하는 기밀사항이 있네. 근시도 잠시 물려 주겠나?"

 

쇼쿠다이키리가 주전자를 가지고 나타났을 때 딱 나온 말이었습니다. 제 얼굴은 표정을 섬세하게 그려낼 순 없습니다만 아마도 그 때 사니와의 뜨악해하는 표정과 비슷했을 겁니다. 주전자를 건네준 후 제가 밖에 남은 채 문이 닫히자 쇼쿠다이키리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볼을 긁적이더니 제게 말을 건넸지요.

 

"콘노스케 군? 이런 경우, 이전에도 있었던가?"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예, 없었고말고요. 애초에 정부에서 사람이 찾아온 일 자체가 없었습니다만, 그걸 감안해도 이번 일은 좀 이상했습니다. 근시나 다른 남사들을 자리에서 물리는 것까지는 있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조차도 밖으로 쫓겨나는 일은 원칙대로라면 없을 터였습니다.

같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니 다른 남사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습니다. 제일 먼저 말을 꺼낸 건 창 대신 빗자루를 어깨에 걸친 오테기네였습니다.

 

"뭐야,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안 좋은 일이라기보다는 잘 모를 일이 뭐, 일단 우리 주인이 물러나 있으라고 했으니 지금은 순순히 자리에서 뜨는 게 맞겠지."

 

쇼쿠다이키리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응접실 앞 마루에서 내려왔습니다. 저는 내려갈까 말까 고민했습니다만, 이치고히토후리가 저를 들어 내려오게 했습니다.

 

"비밀 담화 같은 것이겠지요. 여기서 너무 소란을 피우면 주군께 폐가 될 겁니다."

 

저를 내려놓으며 이치고가 말했습니다만, 그 말은 저만이 아니라 주변에 몰려든 다른 토시로 단도들, 그리고 이치고 본인에게 하는 말 같았습니다.

그 후에는 한동안 다들 정원에 앉아 있었습니다. 밭일이나 정원 청소는 진즉에 끝났고, 밖에 나간 이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나머지는 주인에게 직접 지시를 받아야 하는 일들만 남아 있었거든요. 마굿간 쪽에서 말을 돌보던 오오쿠리카라와 도타누키(당시에는 아직 도다누키라 불리기 전이었습니다)가 뭐라고 소리를 질러서 한둘이 그 쪽으로 가긴 했습니다만, 그걸 제외하면 다들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정원의 나무가 만든 그늘에 앉아서 지그시 응접실 쪽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긴장도 한참 아무 일이 없으면 풀리기 마련이죠. 남사들은 슬슬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하더군요.쇼쿠다이키리와 이치고히토후리는 식사 얘기로 들어갔고, 호네바미는 여전히 뭔가 불안해하는 고코타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오테기네는 그때까지 계속 서 있었는데 슬슬 다리가 아픈지 돌 위에 주저앉았습니다. 햇볕에 데워진 돌이 뜨겁다면서 다시 벌떡 일어나는 걸 보던 미다레가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이즈미노카미의 손을 피해 슬쩍 몸을 틀었습니다. 꼬리는 만지지 말라고 해도 이 사람, 아니 남사는 좀체 포기하질 않더군요.

끈덕진 손길을 피해 햇볕으로 나오니 눈이 쨍 아팠습니다. 응접실 앞에 뭔가가 지나가고 있는 걸 본 건 그 때였지요. 나키기츠네와 늘 함께 다니던 그 여우였습니다.

 

"어디 있습니까, 주인님-"

"여우군, 쉿!"

 

호리카와가 황급히 한손으로 손짓하면서 다른 한손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댔습니다. 여우의 뒤를 따라 나온 나키기츠네는 금방 그 손짓을 알아차려 줬습니다. 그는 함께 다니는 여우를 잡아올려 어깨에 태운 후 마루에서 내려왔습니다. 내려오기 전에 흘끗 응접실을 돌아보기는 했지만요.

나키기츠네가 가까이 오자 호리카와가 겨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나키기츠네는 늘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있어서 표정은 잘 모르겠지만, 눈이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고 있더군요. 다행히 호네바미가 입을 열었습니다.

 

"지금, 비밀 이야기 중."

"비밀 이야기입니까? 안에는 누가 있는 것입니까?"

"주군과 주군의 상관 되시는 분인 것 같아요."

 

아키타가 대답했습니다. 여우는 알아들은 것 같았습니다만, 나키기츠네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습니다. 상관이라는 표현을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저러나 싶던 그 때, 나키기츠네가 어깨의 여우를 쓰다듬었습니다. 여우에게 뭔가를 전할 때면 그런 제스처를 취하곤 했지요, 그 남사는.

 

"나키기츠네? 그것이 사실입니까?"

"왜, 뭔데 그래?"

"나키기츠네가 살짝 들은 게 맞다면, 안에서는 주인님과 그 사람이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저는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남사들도 비슷한 반응이었습니다. 당혹스런 표정을 짓는 이도 있었고, 응접실과 나키기츠네를 번갈아 보는 이도 있었습니다.

이 혼마루의 사니와에 한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혼마루 사니와는 평화주의자까지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본인이 직접 언쟁하는 건 좋아하지 않거든요. 게다가 상대가 정부 측 사람이라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혼마루의 사니와는 정부에 말 그대로 목숨을 빚지고 있어서 큰소리를 낼 수가 없으니까요. 설명하자면 길어지니, 이에 관해서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즈미노카미는 아예 쳐들어가서 뭔 일이냐고 해보자고도 할 정도였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안 될 말입니다만, 일단 저는 그늘을 벗어나 응접실 쪽으로 가 보기로 했습니다. 딱히 저는 이 혼마루에 빚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사니와와 정부 간에 마찰이 생기는 건 전령 입장에서도 피하고 싶었거든요.

여우는 말이죠, 꽤 귀가 좋답니다. 창호지에 제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게 마루 밑에 내려와 있어도, 그 정도 거리면 안에서 하는 이야기는 어렴풋이나마 들립니다. 귀를 세우고 듣고 있으니, 손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전장 이외에서도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 그것을 모르는 바는 아닐 터."

 

일견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였습니다. 하지만 잘 들으니 가래 끓는 것 같은 소리가 미세하게 섞여 있었습니다.

 

"들은 바는 있으나, 바깥 사정에는 어둡기에. 역사를 지키라는 사명 이외에는 제가 알지 못하는 영역입니다."

"이 또한 사명이라 한다면?"

"전령을 기다리겠습니다. 하지만 시간 정부는 결코 허술하지 않은 곳이니까요."

 

호오, 저는 조금 감탄했습니다. 이 혼마루의 사니와도 그런 목소리를 낼 줄 알았군요. 조곤조곤한 말씨는 그대로였습니다만 꽤 차분하달까, 감정을 쏙 뺀 담백한 답변이었습니다.

아니, 그보다 대체 앞에 무슨 이야기가 오갔기에? 무언가 불안함을 느끼고 더 들으려던 순간, 남사들이 모여 있던 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습니다.

 

"잠깐, 하세베군, 지금 다른 사람이랑 얘기 중이라니까!"

"급한 전갈이다. 주군께서 부대의 중상(重傷)에 관한 것은 즉시 보고하라고 평소 명하셨다."

"어이, 하지만 지금은!"

 

쇼쿠다이키리와 오테기네가 잡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남사가 보였습니다. 헤시키리 하세베, 그 날 1부대 대장이었습니다. 아츠카시 산에서 갓 돌아왔는지 갑옷에 칼자국이 남은 그대로였습니다. 마루에 오르려다 발치에 있던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덧붙이자면, 헤시키리 하세베는 저를 볼 때마다 눈이 매서워집니다.

 

"쿠다기츠네. 주군께서는 안에 계시나?"

"그렇습니다만 지금은 정부에서 온 상관과 이야기하는 중입니다."

"주군, 하세베입니다."

 

하세베는 제 말을 깔끔히 넘기고 방문을 향해 말했습니다. 그렇게 무시할 거면 왜 말을 걸었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안에서 뭔 말이 날아올지 몰라서 슬쩍 마루 아래로 몸을 집어넣었습니다.

거기서부터 좀 이상했습니다. 안에서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그르렁대는 듯한 소리는 났지만, 하세베의 보고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마루에서 나와 돌아봤을 때, 하세베는 방문을 열고 있었습니다.

 

"주군, 안에 계십니까? 중상자가 생겨 급히 실례합."

 

말이 끊겼습니다. 고개를 쭉 빼고 위를 보려 했지만 하세베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루 위로 올라왔을 때, 한순간 사니와가 턱을 붙잡힌 모습이 보인 것 같았습니다.

 

"네놈."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한 찰나, 휘익, 쾅.

머리 위로 뭔가가 날아갔습니다. 문짝이 날아간 줄 알았습니다. 반사적으로 몸이 움츠러들더군요. 풀이 자라있는데도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퍽 하고 들렸습니다. 어찌나 요란했던지, 제법 떨어진 곳에 있던 남사들이 다 돌아볼 정도였지요.

방금 전까지 방 안에 앉아있었을 남자가 풀바닥에 거꾸러져 있었습니다. 등부터 부딪힌 건지 잘 일어서질 못하더군요. 잠시 부들거리다 겨우 얼굴을 찡그리며 일어나려던 찰나, 남자는 동작을 멈췄습니다. 미간에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이 다가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변명은 듣지 않겠다. 죽어라."

 

자부합니다만, 저는 웬만한 건 봐도 그렇게 무섭다고는 안 느낍니다. 아니, 진짜에요. 아무리 험상궃은 사람이 저를 노려봐도 겁먹지 않고 술술 말할 자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만은 저도 몸 속까지 덜덜 떨리더군요.

칼날은 헤시키리 하세베, 그러니까 그 본체였습니다. 목소리가 말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북해도의 겨울이라도 그 목소리보다는 따뜻했을 겁니다. 그 때 제가 있는 위치에서는 등만 보였습니다만, 차마 앞얼굴을 볼 마음은 나지 않았습니다.

 

"하, 하세베공, 칼날을 거두십시오. 무슨 일입니까?"

 

이치고히토후리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세베는 칼을 거두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그대로 머리를 내리치려던 걸 멈추기는 하더군요.

 

"이 자가 주군께 손찌검을 하려 했다. 주군께 무례를 저지른 자를 살려둘 수는 없지."

 

얼굴색이 확 바뀐다는 게 어떤 건지 그 때 봤습니다. 쇼쿠다이키리는 가까이 오다 말고 팔을 거두었습니다. 누군가가 혀를 쯧 하고 차는 소리도 확실히 들렸습니다.

 

"그렇습니까. 자, 다들 물러나자. 별로 볼 만한 장면은 아닐 거 같구나."

"우리는 가만히 있는 거야?"

 

토시로의 장남이 동생 남사들을 한쪽으로 데려가려 하자 미다레가 말했습니다. 이치고히토후리는 어깨를 으쓱했지요. 다른 이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즈미노카미는 벌써 칼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있더군요. 호리카와가 잠시 참으라고는 했지만, 피가 땅바닥에 스미면 치우기 힘들 거라고 중얼거렸습니다.

내던져진 남자는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뒤로 몸을 밀어냈습니다. 하지만 뭔가에 부딪혔지요. 오테기네가 손에 들고 있던 걸 바닥에 박은 채 말없이 손님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마루를 쓸던 중이라 분명 손에 쥐고 있던 건 빗자루였을 텐데, 워낙 살기가 등등해서 잘 갈아진 창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 당장 목을 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말이야, 뒷수습이 어렵지 않을까? 주인에게 책임이 돌아올 텐데."

 

쇼쿠다이키리만 말리는 듯한 말을 했습니다.

 

"주군께 모욕을 주고 있던 자를 그냥 두라는 말은 아니겠지."

"그건 아니지만, 뒷처리가 어렵지 않겠어?"

"다행히 이 혼마루는 요괴가 활보하는 지역에 있다. 요괴 중에는 인간을 먹는 자도 있을 테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니 등골이 서늘해지더군요. 하세베라는 남사는 마음만 먹으면 어디까지고 무서워질 수 있다는 걸 그 때 새삼 재확인했습니다. 그 말에 쇼쿠다이키리도 그거면 괜찮겠다면서 말리는 걸 관뒀지요. 고개를 끄덕이는 게 마치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흐름에 겨우 입이 트였는지, 손님은 크게 소리쳤습니다.

 

"주인의 상관을 죽일 셈인가?"

"요괴에게 잡혀 죽은 거다. 적어도 그렇게 알려질 테지."

"하세베, 그만."

 

다들 응접실을 돌아보았습니다. 사니와가 걸어나오고 있었습니다. 아래턱 쪽이 좀 붉어져 있었던 거 같군요.

하세베는 주인의 말에야 겨우 칼을 거두었습니다. 다만 칼집에 집어넣은 건 아니고, 얼굴에 겨누고 있던 칼을 슬쩍 옆으로 비껴튼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요. 사니와가 한숨을 쉬며 흰 기모노의 옷깃을 손으로 정돈하는 게 보였습니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응, 괜찮아. 그보다 하세베, 칼을 거둬 줘."

 

하세베는 즉각 칼을 집어넣었습니다. 죽기 일보 직전이었던 사람을 한 번 노려보기는 했지요.

사니와는 __씨를 향해 시선을 돌렸습니다. 마루에서 내려와 가까이 가 보니, 사니와는 평소보다 얼굴이 굳어 있었습니다.

 

"다치신 곳은 없으신가요?"

"없어 보이나?"

 

__씨는 기가 막혀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니와는 조용히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용건을 끝마치셨다면 오늘은 돌아가 주세요. 제안에 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명령은 거부할 수 없을 텐데."

"정식 조서로 내려온 명령이라면요. 아키타, 이 분을 일으켜 줄래?"

 

아키타가 손님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__씨는 몸을 툭툭 털더니 사니와를 바라봤죠. 적의라고 할 정도로 뚜렷한 건 아니지만, 뭔가 불만이 있다는 눈빛이었습니다.

 

"다음부터는 이 혼마루의 남사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주길 바라네."

"전달해 보겠습니다. 이 분을 대문까지 모셔다 줄 수 있을까?"

 

사니와는 호리카와를 보며 말을 맺었습니다. 호리카와는 말없이 손님에게 손짓했습니다. 손님은 뭔가 더 말을 하려는 것 같았지만 이내 물러갔습니다.

손님의 그림자가 없어지자 그제서야 사니와가 휘청이더군요. 하세베가 부축하여 안으로 데려갔습니다. 토시로 형제들은 슬슬 점심 준비를 하자면서 쇼쿠다이키리와 함께 부엌 쪽으로 향했고, 오테기네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면서 빗자루를 뽑았습니다. 이즈미노카미는 뭔가를 궁시렁대며 옷을 갈아입겠다고 방에 들어갔습니다.

 

"이야이야, 소란스러웠군요. 이런 소란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키기츠네의 어깨에 앉아있던 여우가 말했습니다. 지당한 말이지요. 사니와에게도, 상부에게도, 남사에게도 좋을 것이 없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물론 제게도 말이죠.

하지만 일이라는 건 가끔은 최악의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하는 법입니다. 일부러 그런 말을 한 걸 보면, 그 여우나 나키기츠네는 뭔가 불길함을 느끼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에 관해서는 다음에 이어서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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