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사니와(이름 및 독자설정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6.06.19 검사니 60분 전력 참가작품 (주제: 잠버릇)
"주군, 곧 날이 밝습니다."
이미 어슴푸레 밝아진 방 안에서 톤보키리는 조용히 고했다. 그의 두툼한 손이 옆에 누워있는 이불 뭉치를 상냥히 두드렸다.
이불 뭉치가 꼼지락꼼지락 움직였다. 여름이 되어 가벼운 소재로 바꾸었던 이불은 몇 번 움직이자 쉽게 풀어졌다. 그 속에 숨어있던 하얀 머리카락이 빼꼼 정수리를 내밀었다.
"주군, 기침하십시오. 아침입니다."
정수리 이상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 주인의 몸을 톤보키리는 이불 너머로 다시 토닥였다. 이렇게까지 주인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사니와 키리히메는 아침잠이 적은 편이라, 남사들이 깨우러 올 때쯤이면 이미 머리까지 다 빗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맞이하는 편이었다. 심지어 새벽 수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야마부시와 얼굴을 마주하는 일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방 안이 뿌옇게 밝아질 때까지 몸도 일으키지 않다니, 무슨 일일까. 톤보키리는 눈썹을 치켜떴다.
그는 천장을 올려다보던 몸을 움직여 주인 쪽으로 돌아누웠다. 그의 바로 옆에 웅크리고 있던 이불 뭉치가 잠시 멈칫하더니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정전기에 달라붙는 보풀 뭉치도 아니고.... 라고 생각하며 톤보키리는 아까보다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아침입니다, 오늘은 조례 시간이 평소보다 앞당겨져 있지 않습니까. 슬슬 채비하시지 않으면 조례가 늦어질 겁니다."
이불 뭉치가 잠시 꿈틀했다. 그 틈이 벌어지고 속에서 하얀 팔이 나왔을 때, 톤보키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일어날 기미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몸 상태가 좋지 않거나 지친 것일까, 그는 내심 걱정했다. 요새는 딱히 바쁘지도 않은데 지칠 만한 일이 무엇이 있었을까, 그는 골똘히 생각에 잠기려 했다. 그러나 곧 원인으로 의심되는 것 중 하나를 떠올리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전부는 아니라 할지라도 6할 정도는 톤보키리 자신의 탓이었다.
헛기침을 하고 그는 주인을 바라보았다. 주인이 몸을 일으키면 인사한 후 이불을 치워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자신도 따라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이불 속에서 뻗어나온 손은 그가 예상치 못한 행동을 취했다.
이불이 찰싹 달라붙어왔다. 여름 이불의 까끌까끌한 소재가 남사의 복근에 그대로 닿았다. 이불 한 겹 너머의 체온도 확실하게 함께 전해져왔다. 톤보키리는 일어나려다 다시 요 위에 털썩 눕고 말았다.
하얀 두 팔이 그의 몸통을 꼭 끌어안았다. 가슴팍 바로 아래, 명치 부근에 따뜻한 숨결이 흘렀다. 맨살에 머리카락이 부벼지며, 달큰하고 희미하게 눅진한 체취가 풍겨왔다.
"주, 군?!"
톤보키리는 깜짝 놀랐다. 하마터면 반사적으로 그 몸을 밀어낼 뻔했다. 주인임을 알기에 그러지 않았던 것인지, 이불 너머로도 느껴지는 놀랍도록 보드라운 감촉에 그러지 못했던 것인지는 그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자신의 몸에 꼭 붙어 얼굴을 들려 하지 않는 주인을 그는 한동안 어찌할 바 모르고 내려다보았다. 가느다란 두 팔로 힘껏 굵직한 몸통을 껴안아오는 것이, 마치 먼 길을 떠나는 가족을 보내지 못해 떼쓰는 어린아이 같았다.
"주군, 잠버릇이 지나치십니다...!"
붉어진 얼굴을 머리카락이 가려주기를 바라며, 톤보키리는 주인의 몸을 흔들었다. 그러나 키리히메는 당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이런 태도 또한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것만큼이나 드문 일이었다. 희미한 걱정은 확실한 우려로 바뀌었다. 톤보키리는 실례한다고 속삭이며, 키리히메의 몸 대부분을 가리고 있던 이불을 들추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몸이라도 편찮으신 것인지요? 그렇다면 아침 조례를 무르겠습니다만."
대답 대신 잠결에 뒤척이며 내는 듯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힘은 확실히 있어, 물리적 고통에 괴로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목소리며 손끝이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톤보키리는 주인의 뒷머리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물었다.
"악몽이라도 꾸신 것입니까? 아침입니다, 꿈으로 두려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날이 밝지 않았습니까......"
거기까지 말했던 톤보키리의 코끝에 습기를 한가득 머금은 공기가 새삼 다시 느껴졌다. 거기서 그는 시간에 비해 방 안이 유독 어둑어둑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여름이라 낮이 길어져 지금쯤이면 벌써 환해야 할 방 안에 아직도 그늘이 남아있었다.
그는 키리히메의 몸을 손으로 붙든 채 몸을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정원의 풍경과 맑은 하늘이 보여야 할 바깥이 희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아침 안개가 유독 진하게 서려 있었다. 창문 틈새로 물기 어린 공기가 느껴질 정도니 밖은 오죽하랴. 창문 너머에 바로 연못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라니. 톤보키리는 혀를 찼다.
'혹시 이것 때문인가?'
그는 배 부근에 느껴지는 온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불을 조금 더 벗기자 고개를 푹 수그리고 그의 몸을 부여잡은 여인이 똑똑히 드러났다. 흐트러진 옷을 가다듬지도 못한 채,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지도 못한 채, 그저 본능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버팀목을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었다. 안개가 진하게 낀 날 밤이면 키리히메가 자주 보이는 잠버릇이었지만, 설마 아침에도 나타나리라고는 톤보키리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키리히메는 안개(霧, 키리)라는 뜻의 이름과는 대조적으로 안개를 두려워했다. 패닉에 빠져 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안개가 심하게 서린 날이면 눈에 띄게 동요해서 주변 남사들을 덩달아 놀라게 만들고는 했다. 특히 안개가 이렇게 뿌연 날이면 무언가를 꼭 껴안지 않고는 못 버틸 지경이었다. 일전, 아침 조례를 하러 나오는 길 내내 그 날 근시였던 남사의 팔을 꼭 껴안고 있던 모습이 톤보키리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무리도 아니었다. 사람은 자신이 심한 상처를 입었던 기억을 두려워해, 그 때를 연상시키는 것에서 최대한 멀찍이 떨어지려 하기 마련이었다.
"어-이, 일어났어? 오늘 아침, 좀 일찍 연다고 하지 않았어?"
문 너머에서 오테기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날 근시였다. 그러나 사니와는 아직 두려움에 감싸여 잠에서 깨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허리를 꼭 부여잡은 키리히메를 토닥이며 톤보키리가 목소리를 높였다.
"주군께서는 오늘 몸이 불편하시다. 몸이 낫는 대로 모셔갈 테니, 아침 일정은 취소하고 각자 평소대로 해 달라고 전해주게."
"엑, 어이, 왜 네가 대답하는 거야?"
오테기네가 얼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톤보키리는 뒤늦게 아차 싶어 머리릍 탁 짚었다. 어떻게든 넘어가주길 바랄 뿐이었다.
다행히 오테기네는 더 이상 뭐라 묻지 않고 그대로 방문에서 멀어져갔다. 그는 남에게 뭔가를 떠벌리고 다니는 성격은 아니었다. 아마도 괜찮겠지. 한숨을 내쉰 톤보키리는 여전히 바들바들 떨고 있는 키리히메에게 고개를 돌려 상냥하게 말을 흘려넣었다.
"괜찮습니다. 아침 일정을 뒤로 물렸으니, 안개가 가실 때까지 방 안에 계시면 됩니다. 저도 계속 여기에 있겠습니다."
".....응......"
잠꼬대하는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떨림이 조금 가라앉고, 근육이 불거진 허리를 가냘픈 손이 한층 강하게 부여잡아왔다.
톤보키리는 아까 전 내렸던 이불을 다시 그러모아 키리히메의 몸을 감싸 꼭 끌어안았다. 가슴팍에 느껴지는 숨결이 한층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