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사니와(이름 및 독자설정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루에 혼마루에 오는 우편물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면 놀랄 겁니다. 정말 많아요. 사니와에게 사적으로 오는 편지를 빼더라도 말이죠. 이 혼마루는 우편망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보니 제가 일일이 시간 정부와 혼마루를 오가면서 편지를 전달한답니다. 이 정도쯤 되면 저도 월급을 받을 자격이 있어요. 식사에 얹어주는 유부를 두 장 정도 더 늘려 주면 좋겠군요.
아,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샐 뻔했네요. 아무튼 이 혼마루에 오는 우편물 대부분은 시간 정부에서 온 것입니다. 내용이야 당연히 이거 하라, 저거 하라 명령하는 거죠. 그냥 몇 번 출진하라, 어디로 출진하라 같은 간단한 얘기부터 남사들을 동원해 어떤 정보를 수집하라는 까다로운 비밀 임무까지 내용은 천차만별이에요. 때로는 그게 사니와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사니와는 일단 시간 정부의 지휘를 따르는 몸이니까요. 적어도 이 혼마루의 사니와는요. 기본적으로 거부권이 없어요. 만약 안 하겠다고 버티면? 그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보시면 대충 알게 될 겁니다.
그 날도 저는 시간 정부에서 사니와 키리히메 앞으로 보내지는 조서들을 한가득 가지고 혼마루에 왔습니다. 제가 요괴인 쿠다기츠네여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그렇게 많은 서류들을 한번에 가져오진 못했을 겁니다. 다행히 정원까지 들어오니 남사 한 명이 짐을 나눠 가져가 주더군요. 그 날 근시였던 모양입니다.
사니와는 집무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걸로 봐서 뭔가를 계산하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어찌나 골똘히 몰두하던지 저와 남사가 방에 들어와도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였습니다. 같이 왔던 아츠시 토시로... 당시에는 아직 아츠 토시로라고 불렸습니다만, 아무튼 그 남사가 목소리를 내니 그제서야 고개를 들었습니다.
"대장, 여우씨가 편지들 가져왔대."
"고마워, 아츠. 콘노스케도 늘 고마워."
"무척 집중하고 계시더군요. 끝내지 못한 일이라도?"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도움패 수가 장부와 맞지 않아서. 장부 쪽에 누락이 있었어."
"어제 근시한테 물어봤어? 분명 히라노였잖아, 어제는."
이후에 물어보겠다고 말하며 사니와는 저와 아츠시 토시로가 가져온 서류들을 건네받았습니다. 편지봉투를 뜯는 동작은 좀 부자연스러워 보였는데, 아마도 사니와가 본디 옛 시대 사람이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교육을 받았다고는 해도 몸에 밴 습관은 어쩔 수 없지요.
편지들의 내용은 대충 짐작이 갔습니다. 사니와는 몇 개는 옆에 차곡차곡 쌓아 두고, 몇 개에는 붓으로 표시를 하고, 몇 개는 옆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근시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아츠시 토시로는 본인에게 돌아온 종이들을 살펴보다 눈을 빛냈지요. 새로운 전장에 관한 뭔가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대장, 대장! 이거 봤어?"
"응. 아츠라면 보고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어."
"헤헹, 손이 근질거리는데!"
손을 붕붕 휘두르는 아츠시에게 웃어 보이며 사니와는 다음 봉투를 뜯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봉투, 색깔이며 크기가 보통 정부에서 보내는 것과는 많이 달랐죠. 그 때는 특별히 따로 보내는 명령인가보다 하고 별 말을 안 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뭐라고 말을 걸었어야 했습니다.
사니와는 편지를 주의깊게 읽었습니다. 그리 길어 보이지도 않는 종이를 몇 번이고 꼼꼼히 훑어보고 있었죠. 곧 사니와는 편지를 봉투에 도로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는 품속에 집어넣었지요.
"대장, 그거 뭐야?"
"개인적인 문제."
사니와는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 날은 처리해야 하는 서류 자체는 많지 않았지만 출진을 워낙 많이 해야 했기에 빨리 책상일을 다 하고 나가야 했었습니다. 사니와는 최대한 빨리 서류들을 넘겼고, 아츠시 토시로도 나중엔 일어서서 방 여기저기를 왔다갔다하면서 이것저것 꺼내오고 집어넣기를 되풀이했죠. 유독 어지럽기는 했지만 평소와 크게 다를 건 없는 날이었습니다.
다만 점심 시간이 되어 밖에 나갈 준비를 할 때, 사니와가 잠시 뜸을 들였습니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깍지를 낀 손이 점점 눈에 띄게 떨기 시작했습니다. 아츠시 토시로가 말을 건넬 정도였죠.
"대장, 괜찮아? 어디 몸 안 좋아? 야겐 불러올까?"
"괜찮아, 잠깐 현기증이 나서."
사니와는 일어서면서 고개를 저었지만, 단순한 현기증이라기엔 얼굴이 너무 창백해 보였습니다. 마치 누군가 한동안 목을 조르다 아슬아슬한 때 놓아준 것 같은 표정이었습니다. 아츠시 토시로도 뭔가 더 물어보려 했지만, 사니와가 점심을 재촉해서 그 때는 유야무야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그 때는 저도 배가 고픈 것도 있어서 깊게 묻지 않았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어물쩍 넘어갔던 건 실수였습니다. 사니와는 그 이후로도 몇 번인가 비슷한 모습을 보였지요. 며칠에 걸쳐서 말입니다. 뭔가를 깊이 생각하다 갑자기 휘청이거나 입을 틀어막곤 해서 근시를 몇 번이고 놀래켰습니다. 한 번은 찻잔을 떨어뜨려서 하마터면 다리를 델 뻔하기도 했습니다. 다다미 위에 차가 쏟아지고, 찻잔이 바닥을 데구르르 굴렀습니다. 그 소리에 저도 놀라서 입에 물고 있던 유부를 떨어뜨릴 뻔했는데, 곁에서 밥을 먹던 남사들은 오죽했을까요. 맞은편에 앉아있던 헤시키리 하세베가 내민 물수건을 받아들면서도 사니와의 안색은 좋지 않았습니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미안, 잠깐 뭔가 생각하느라."
"너무 무리하덜 말어. 그러다 쓰러지믄 될 것두 안 되여."
하카타 토시로가 찻잔을 바로세우면서 달래는 게 보였습니다. 사니와는 알았다고 대답했습니다만 여전히 안색이 파리한 게 멀리서도 보였습니다. 간식을 먹을 때쯤에는 원래대로 돌아와서 안심했지만, 비슷한 일은 몇 번이고 일어났습니다.
한번은 한동안 햐앟게 질린 얼굴을 푹 수그린 채 대답을 하지 않아서 그 날 근시였던 고코타이가 울어버렸습니다. 사니와는 한참 후에야 겨우 고개를 들었는데, 표정은 평소와 비슷하게 돌아왔지만 잘 보니 입술이 덜덜 떨리고 있었습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 요즘 몸이 조금 좋지 않네."
"그, 그럼 쉬시는 게 좋지 않을, 까요? 저, 그… 아프실 때 무리하면, 그, 큰일나요."
"맞는 말이야. 안색도 안 좋은데, 들어가서 쉬라고."
대련장 쪽에서 츠루마루 쿠니나가가 걸어오면서 말했습니다. 무슨 대련을 그리 신나게 했는지 갑옷이며 머리카락이 꽤 난리가 났었지요.
"쉴 정도까지는 아니야."
"어이어이, 그렇게 넘어가다가 병이 더 커지는 거야. 인생에 놀라움은 중요하지만, 주인이 쓰러져서 깜짝 놀라는 전개는 아무리 그래도 사양하고 싶다고."
"츠, 츠루마루 씨의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 오, 오늘 일은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주인님은 쉬셔요. 저, 저어... 필요하시면 저희 호랑이 한 마리, 빌려드릴게요."
"호랑이보다는 부축해 데려갈 녀석이 필요하지 않겠어? 어이, 톤보키리, 이후 일정 없으면 좀 부탁해도 돼? 내가 하고 싶지만, 난 이 다음에 카라 도령과 대련이라서."
츠루마루 쿠니나가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지요. 뒤에는 아마 그 때까지 대련 상대였을 톤보키리가 서 있었습니다.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사니와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주군, 괜찮으시면 방까지 모시겠습니다."
"괜찮은데...... 알았어, 그럼 잠깐만 누울게. 고코타이, 저녁식사 전에 깨워줄래? 호랑이들은 저녁 때에도 계속 이러면 그 때 빌릴게."
"예...!"
"푹 쉬라고, 몸이 안 좋을 때에는 쉬는 게 최고야."
츠루마루 쿠니나가와 고코타이가 말하는 걸 뒤로 하고, 사니와는 저택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까보다는 훨씬 상태가 나아 보였지만, 처음 몇 발자국은 아직도 휘청거려서 톤보키리에게 거의 기대다시피 했지요. 저는 어쩔까 고민하다가, 근시 곁에 남았습니다. 고코타이는 일은 야무지게 하지만 워낙 심지가 약해서 혼자 일할 때면 떠는 일이 많았거든요. 츠루마루 쿠니나가가 오오쿠리카라가 데리러 올 때까지 계속 옆에서 지켜봤던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그 이후, 저는 고코타이가 일을 마치는 걸 본 후에는 한동안 연회장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저녁 식사를 기다렸습니다. 이 혼마루는 연회장을 식당으로 쓰고 있었거든요. 한동안 맛있게 자고 있으니 점점 사람들이 올라오더군요. 저녁 식사 시간이 된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기지개를 쭉 펴고, 제 앞에 그 날 당번이 식사를 가져다주기를 기다렸습니다.
"식사 때가 다 됐는데."
"가, 가서 모셔올, 게요!"
고코타이가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식사 당번들은 식사를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고, 다른 남사들은 몰래 반찬을 집어먹거나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고고타이가 혼자 돌아올 때까지는 말이죠.
"어, 주인은?"
"저, 주인님은, 저녁식사는 좀 무리일 것 같다고... 방에서 쉬시겠다고, 그, 그러셨어요."
"그렇게 아팠던 거야? 이런이런, 그 정도였으면 쉬는 정도로 끝낼 게 아니라 의원한테라도 데려갈 걸 그랬어."
츠루마루 쿠니나가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고코타이는 낮에 말했던 대로 한 마리를 빌려줬는지 호랑이 네 마리와 함께 자리에 돌아왔지요. 남사들은 식사하기 시작했지만, 더러 불안해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헤시키리 하세베는 아예 자기도 밥을 먹지 않겠다면서 차로만 배를 채우더군요.
밥을 다 먹고, 저는 사니와의 방에 가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거든요. 방에 들어가 보니, 사니와는 이부자리에 앉아 고코타이의 호랑이 한 마리를 어루만지고 있었습니다. 혈색은 훨씬 좋아 보여서, 지금이라면 무리없이 밖을 돌아다닐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많이 괜찮아진 모양이군요."
"응."
"의원에 가 보는 게 좋지 않겠냐고 츠루마루 쿠니나가가 이야기하던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문제는 아니니까 괜찮아. 츠루마루한테는 나중에 고맙다고 얘기해 둬야겠네."
사니와는 웃으며 호랑이를 쓰다듬고 있지 않던 쪽 손으로 뭔가를 주섬주섬 집었습니다. 편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걸 품에 도로 집어넣는 걸 보고 저는 그게 뭔지 떠올렸습니다. 아츠시 토시로가 근시이던 날 왔던 것들 중 하나였습니다. 개인적인 문제치고는 참 오래 끈다고 생각하면서 저는 물어봤습니다.
"그거, 정말 개인적인 문제 맞습니까?"
"공적인 문제라면 근시에게 넘기거나 집무실에 두고 왔을 거야."
"그럼 정말 까다로운 개인적 문제인 모양이군요."
사니와의 안색이 어두워지는 게 등불빛만으로도 충분히 보였습니다. 뭔가 말하려다 입을 다무는 걸 몇 번인가 반복했는데, 그 때마다 얼굴빛이 눈에 띄게 안 좋아졌습니다. 한참 후에야 사니와가 심호흡을 크게 하면서 입을 열었습니다.
"콘노스케. 도검남사들은 혼마루 밖에서도 일할 수 있을까?"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남사들이 출진하는 지역도 전부 혼마루 밖입니다."
"그 이외의 장소에서. 이를테면 보통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이 시대의."
"권장할 만한 내용은 아니군요. 규정상 문제는 없습니다만, 관련 규정이 미비하다는 쪽이 정확합니다."
"그렇구나."
사니와는 호랑이의 등을 쓸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말과는 달리 표정은 아직 뭔가 개운하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이건 분명히 뭔가 있다, 저는 그렇게 직감했습니다. 사니와의 사생활에는 제가 간섭할 일이 아닙니다만, 그렇게 물어보는 걸 보면 도검남사에도 관계된 일이었던 게 분명했죠. 저는 그걸 좀 더 캐물으려 했습니다. 그 때 누가 문 밖에서 기척을 내지만 않았다면 말입니다.
"톤보키리입니다. 편찮으신 와중에 죄송합니다만, 내일 직무에 관하여 드릴 말씀이 있어 실례하였습니다."
"괜찮아. 무슨 일이야?"
"내일 근시 문제입니다만, 본디 호타루마루 공이 맡게 되어 있으나 현재 부상을 입고 귀환하여 내일은 어려울 것 같다고 합니다."
"저런. 호타루마루한테는 푹 쉬라고 얘기해 줘. 그럼 내일 근시는 누가 교대하기로 했어?"
"주군께서 허가하신다면 저와 순서를 바꿀 것 같습니다."
"응, 괜찮아. 호타루마루한테 몸조리 잘 하라고 전해 줘."
닫힌 문 너머에서 알겠다는 기합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는지, 창호지문 밖으로 갑자기 큼직한 그림자가 나타났지요. 그림자는 잠시 위치를 낮추는가 싶더니 옆으로 사라지려 했습니다. 그 때, 사니와가 갑자기 그 그림자를 붙들었습니다.
"잠깐."
"예?"
"어, 저, 그..... 도움패를 호타루마루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
"아, 예.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이 혼마루는 도움패는 사니와의 관리 하에 있어서, 남사가 쓸 때면 사니와에게 건네받게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남사는 안에 들어와야 했지요.
도움패 하나를 꺼내 건네주던 사니와가 잠시 손을 멈췄습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건 처음에 남사를 불러세웠을 때부터 눈치챘습니다. 요컨대 도움패는 그냥 물꼬를 트기 위한 것이었다는 거죠. 호랑이가 고로롱거리는 소리만 흐르기를 몇 초쯤 지났을까요, 사니와가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도검남사는 역사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거지?"
"예, 주군께서 저희를 불러내셨을 때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그럼 만약, 내가 그것과 관계없는 것을 명령하면, 다들 어떻게 생각할까?"
"관계없는 것이라 하심은?"
사니와는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품 속에 집어넣은 소매가 달달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사니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지요. 아까 전부터 뭔가 이야기를 빙빙 돌려서 얘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톤보키리가 입을 열어 정적을 깨뜨렸습니다.
"다른 이들에 관해서는 확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저는 주군께서 합당한 명령을 내리신다면 그에 맞는 공을 세울 뿐입니다. 그게 무인의 역할이지요."
"합당한 명령... 그런 것만 내려온다면 좋을 텐데."
"주군?"
"뭔가 있는 거지요?"
저는 사니와에게 캐물었습니다. 사니와는 대답하지 않고, 혼자 뭐라 중얼거릴 뿐이었습니다. 워낙 작게 중얼거려서, 아무리 귀를 세워도 다 들리지 않더군요. 이래저래 공기가 무거워졌습니다.
그 상황에선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거나 입을 열기 힘들었습니다. 오직 호랑이만 팔자 졸게 늘어져서 울었지요. 사니와는 중얼거리는 것조차 그만두고 가슴에 손을 올리고 있었고, 남사는 계속 정좌한 채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얼굴을 앞발로 긁으면서 둘 중 누군가가 다시 말하길 기다렸습니다.
"주군의 상관 되는 이에 관해서는 저희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지금 이 혼마루는 주군을 따르고 있습니다. 상부의 뜻이 어떻건 저희는 주군의 뜻을 따르고, 그 결과를 주군께 돌리게 됩니다. 주군께서 제일 편하신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맞지 않을지요?"
사니와는 한참 말이 없었습니다. 품속에 집어넣은 손이 뭔가를 꽉 움켜쥐는 것이 언뜻 보였습니다. 한참 후, 그녀는 고개를 젓는 시늉을 하더니 손을 내밀었습니다.
"응, 참고할게. 갑자기 이런 말 꺼내서 미안해. 여기 도움패."
"심려하실 것 없습니다. 예, 확실히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밤 되시길."
덩치 큰 남사는 도움패를 받아들고 자리를 떴습니다. 갑자기 사람 하나가 없어지니 방이 유난히 텅 비어 보였죠.
저는 사니와를 올려다봤습니다. 사니와는 그 이후로도 촛불이 다 탈 때까지 한참을 고민에 잠겨 있었습니다. 제가 잠들기 직전에 본 사니와는 이젠 꾸깃꾸깃해진 편지를 꺼내들고 입술을 깨물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사니와는 자리에 없었습니다. 문을 나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사니와는 뒷뜰 한켠, 장작을 잔뜩 쌓아놓은 곳에 있더군요. 이 혼마루는 아직 땔감으로 불을 피우기에 이 구석에서 나무장작을 패거나 종이, 나무 종류의 쓰레기를 잘 정리해서 연료로 쓰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 보니 사니와는 두 남사와 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장작 당번인 듯한 야마부시 쿠니히로와, 아침 땔감을 가지러 온 고코타이가 거기 있더군요.
"고코타이, 호랑이 고마웠어. 나한테도 잘 따르고, 귀여운 아이였어."
"다, 다행이에요. 저, 주, 주인님은 이제 괜찮으신 건가요?"
"아마 괜찮을 거야. 걱정시켜서 미안해."
"카카카, 자신의 건강에도 신경을 쓰는 것이 좋지.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 또한 수행!"
"명심할게. 이쪽이 오늘 쓸 것들이야?"
사니와는 한켠에 작게 쌓인 더미를 바라보았습니다. 작게 쪼개놓은 장작들과 꾸깃꾸깃 낡은 종이가 거기 있었습니다. 사니와는 종이를 빤히 바라보더니,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올려놓았습니다. 며어제 밤새 들여다보고 있던 그 봉투였습니다.
"그것, 괜찮습니까?'
저는 서둘러 물었습니다. 사니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응. 하지 않을 거니까."
그 때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아득하게 들렸습니다.
그 순간, 사니와가 갑자기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마터면 장작더미 위로 넘어질 뻔한 것을 두 남사가 간신히 붙잡았습니다.
"주군? 아직 다 낫지 않은 것 같으오만!"
"주인님, 괜찮으세요?"
"미안... 잠시, 다리에 힘이 풀려서."
사니와는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다시 섰습니다. 입술색까지 옅어진 것이, 마치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를 찌른 후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거기서 저는 뭔가 떠올랐지요. 이 혼마루의 사니와에게 걸려있는 특이한 주술 말입니다. 저는 화들짝 놀라 땔감 위에 놓여있던 편지로 고개를 돌렸습니다만, 그 편지는 이미 그 자리에 놓여있지 않았습니다. 마치 누군가 재빨리 감춘 것처럼 말이죠.
확인할 방법도 없고, 사니와에게 물어도 말할 거 같진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죠. 만약 제가 짐작한 게 사실이라면, 금방 조치가 취해질 터였으니까요. 그래도 그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슬슬 간식 시간이군요. 뒷이야기는 나중에 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