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사니와(이름 및 독자설정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카미카쿠시(神隠し)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유명한 이야기지요. 원인불명의 행방불명을 칭하는 말로,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사라진 것을 신이 숨겼다고 둘러댄 데서 나온 단어입니다. 산짐승에게 먹혔거나 괴변을 당한 걸 둘러댄 경우가 대부분입니다만, 걔중에는 가끔 진짜 신이 벌인 것도 있어요.
하지만 말입니다, 뭔가를 감춰버리는 건 사실 신에게도 꽤 힘든 일일 겁니다. 단 한 명의 인간이 이 세상에 남기는 흔적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걸어왔던 길에는 발자국이 남죠. 알고 지낸 이들에게는 목소리나 얼굴에 관한 기억이 남습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카메라도 도처에 있지요. 말하자면 거미줄에 걸린 나비 한 마리를 거미줄을 부수지 않고 꺼내오는 겁니다. 그래서 알 만한 신들은 카미카쿠시를 함부로 벌이진 않아요. 위험하고 어려우니까요.
한 명의 인간을 세상에서 감추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다. 하물며 그 대상이 한 인간이 아닌, 커다란 한 저택이라면 어떨까요? 그 저택이 있던 공간 자체를 세상에서 잘라내 감춰버리는 건 얼마나 힘들지 상상도 가지 않지요. 저 하늘에 머무르는 높은 분들이라도 그건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무모한 일이라도 때로는 시도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신들도 미칠 때가 있는 것이지요.
일전에 말씀드렸듯이 저는 시간 정부에서 사니와 편에 보내는 온갖 우편물을 가져옵니다. 꾸러미 속에 잔뜩 넣어서 등에 둘러맵니다. 자그마한 여우가 등에 그렇게 많은 우편물을 질 수 있느냐고요? 어느 만화인가에 4차원 주머니라는 것이 나왔다지요, 그런 논리라고 생각해 주시면 편합니다. 왜 그렇게 보시나요, 이래뵈도 저 역시 요괴인 쿠다기츠네인데.
그 날도 저는 정부에서 우편물을 들고 왔습니다. 이른 아침이었지요. 사니와는 아직 일어나 있지 않을 터였습니다. 반드시 사니와에게 직접 전해야 하는 게 있다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아닌 경우에는 근시에게 건네주면 될 일이었지요. 제가 아는 한, 그날은 근시에게 전해줘도 되는 날이었습니다.
정원의 다리를 총총 건너고 있으니 금색 옷을 입은 이가 보였습니다. 하치스카 코테츠는 사복도 금색으로 빛나서 멀리서도 확연히 알 수 있었지요. 아마 그날은 그가 근시였을 겁니다. 제가 가까이 다가가니 그가 제 등의 꾸러미를 가져갔습니다.
"오늘 내려온 조서?"
"예에, 그렇습니다. 사니와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어제 조금 몸이 아팠으니까. 오늘은 늦게 일어나지 않을까. 그 편이 좋고."
쓴웃음을 지으며 하치스카가 꾸러미에서 삐져나온 두루마리 하나를 꺼냈습니다. 유독 붉은 실로 단단히 매듭이 지어져 있어 시선을 끌었던 것이겠지요. 그는 꾸러미를 한손 손목에 건 채 두루마리를 펼쳐 보았습니다. 근시는 사니와에게 올라가기 전 조서를 미리 확인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효율성을 위해서지요.
조서를 읽는 동안, 하치스카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습니다. 평소 늘 옅은 웃음을 띠고 있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시고, 허리에 찬 본체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혼마루 건물과 조서를 번갈아보더니 저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이게 정말로 정부에서 온 조서?"
목소리는 뭔가를 꽉꽉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였지요. 그 순간,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치스카 코테츠의 팔에서 꾸러미가 떨어져 정원 바닥에 내용물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제가 뭐 하는 거냐고 한 소리 하려던 순간, 그는 혼마루 건물 안으로 빠른 걸음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황급히 그를 쫓아갔습니다. 코테츠 도파가 기동이 그렇게 빠른 줄은 몰랐습니다. 그는 우치가타나들이 자는 방 중 하나(이 혼마루는 도종끼리 모여 자는데, 우치가타나는 수가 많아 반으로 나눠 자고 있었습니다)로 들어가더니 벽을 두드리며 다른 이들을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일어나. 긴급 사태다! 자고 있을 때가 아니야!"
"아침 댓바람부터 대체 무슨 일이니, 우아하지 못하게."
카센 카네사다가 머리를 짚으며 중얼거렸습니다. 아직 잠에서 덜 깨서 그런지, 표정이 좀 무섭더군요. 소란스러운 소리에 일어난 다른 이들도 대체로 같은 표정이었습니다. 카슈 키요미츠는 아예 베개로 귀를 막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더군요.
벽을 두드렸기 때문인지 옆방에서도 왁자왁자한 소리가 기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아직 머리가 까치집이던 무츠노카미 요시유키가 하품을 하며 이쪽으로 건너왔습니다.
"꼭두새벽부터 뭔 일이여?"
"직접 읽어봐."
하치스카가 그때까지 들고 있던 두루마리를 건네주었습니다. 잠기운이 묻은 얼굴로 무츠노카미가 그것을 살펴보았지요. 몇 초만에 그 얼굴에서 잠기운이 싹 없어졌습니다. 그는 하치스카와 눈을 마주치더니, 자신이 있던 방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곧 한층 더 시끄럽게 사람들을 깨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러는 거야?"
카슈가 겨우 베개를 치우고 물었습니다. 정확히는 카센이 베개를 치워버려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난 것이었지요. 하치스카는 평소보다 굳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일단 연회장으로. 중대 사태야. 주인이 일어나기 전에 어떻게든 해야 해."
도검남사들은 본디 싸우는 자들입니다. 잠에서 깨어 어딘가로 모일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꽤 짧지요. 무엇보다 그들의 갑주는 신력으로 만들어진 거라, 필요할 때만 실체화시키면 되는 것이거든요. 갑주를 입는 데 시간을 소모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연회장에 사니와를 뺀 모두가 모이는 데에는 길어야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침 가지기도를 아직 올리지 못했는데, 무슨 일인지 슬슬 알려줬으면 하는구나."
이시키리마루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는 아직도 한손에 고헤이를 든 채였습니다. 일어나긴 일찍 일어났는데, 신당에서 기도를 준비하던 걸 코기츠네마루가 억지로 끌고 온 거였거든요. 표정은 온화했지만 사실 꽤 화가 나 있었을 겁니다.
하치스카는 줄곧 손에 잡고 있던 조서를 펼쳤습니다. 일단 그날은 그가 근시였기에 다른 남사들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연회장 안에 퍼져 나갔습니다.
"「상기의 사유로, __년 __월 __일 오전 0시를 기하여 사니와 키리히메(가칭)의 해임을 명함. 소속 도검남사는 후임자가 올 때까지 해당 혼마루에 계류시킴」"
그것이 마지막 문장이었습니다.
술렁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로 이 혼마루 사니와의 이름이 거론되었는지, 해임이라는 단어가 정말 들렸는지,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앞줄에 앉은 남사들의 표정으로 보아 사실인 듯했습니다.
"주... 주, 주인님이, 떠나시는, 거에요?"
정적을 깬 것은 고코타이였습니다. 둘째 줄 즈음에 앉아있던 그는 호랑이를 껴안은 채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평소라면 그를 달랠 이치고히토후리도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곧 바닥을 쾅 내려찍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오오쿠리카라와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가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헤시키리 하세베가 다다미를 주먹으로 내려찍고 있었습니다.
"인정할까 보냐!"
"하세베군, 진정해, 마음은 알겠지만 너무 소란을 피우면 주인이 일어나 버려."
쇼쿠다이키리가 진정시키고 있었습니다. 하세베는 그 이상 무어라 입을 열지 않았지만, 멀리서 보아도 얼굴에 격앙된 기운이 한가득했습니다. 그는 평소 별로 감정을 표출하지 않기에 그런 일은 굉장히 드문 일이었습니다.
다른 이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이들, 조서를 달라며 제 눈으로 확인해보겠다는 이들 등 반응은 다양했지만 납득이 간다는 반응은 하나도 없었지요.
"이렇게 갑작스레?"
"주군께서 해임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은 없지 않나요? 너무 사유가 미심쩍어요."
"게다가 __일이라니 당장 내일이잖아, 신변정리를 할 여유조차 주지 않고?"
"사유라고 적어놓은 것도 반역이니 뭐니 하지만, 구체적으로 뭘 했다는 말이 하나도 없어. 너무 두루뭉술합니다."
왁자지껄해졌습니다. 사니와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더군요. 그 때,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야만바기리 쿠니히로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것보다, 그 녀석. 사니와를 그만두면 어떻게 되는 거지?"
웅성거림이 서서히 잦아들었습니다. 말한 본인의 표정만큼이나 분위기가 창백해졌습니다. 다들 서로를 둘러보며 눈빛으로 묻고 있었습니다.
이 혼마루의 사니와는 본디 죽은 사람입니다. 그것도 몇 백 년 전, 센고쿠 시대에 이미 죽어 강가의 유령이 되었던 몸이지요. 정부에서 유령에 몸을 주어 사니와로 쓰는 실험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실험의 몇 안 되는 성공작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 사실 자체는 남사들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들이 혼란스러워했던 것입니다. 사니와로 쓰이기 위해 되살려진 사람이 사니와에서 해임된다면, 그 말로가 어떠할지. 그것에 관해서는 들은 바가 없었으니까요.
아니나다를까 저를 움켜쥐는 손이 있었습니다. 이와토오시가 제 목덜미를 잡고 들어올렸습니다. 갑자기 몸이 붕 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제게 그의 뇌성 같은 목소리가 꽂혀왔습니다.
"콘노스케여, 그대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겠지?"
"목덜미를 갑자기 그렇게 쥐면 아픕니다, 내려 주십시오!"
"아아, 내려주지. 질문에 대답한 후에. 말을 돌리는 것은 좋지 못한 습관. 자, 어서 말해봐라."
"그걸 어떻게 제가 직접 말합니까! 제가 기밀을 함부로 말할 입장인지요?"
이와토오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의 다른 한 손이 위협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 곁에 앉은 이마노츠루기도 빨간 눈으로 저를 빤히 바라봤는데, 일견 차분해 보여 더욱 무서웠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바람처럼 덮쳐 저를 날려버릴 것 같았거든요. 정말, 제게 무슨 힘이 있다고 다들 뭔 일만 있으면 저를 협박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대로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 또한 정부에서 언질을 받은 터였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돌려 말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드러내 놓고 장식할 수 없는 칼이 있다고 칩시다. 그 칼이 이가 빠져 다시는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와토오시와 이마노츠루기의 표정으로 보아, 그들은 알아들은 것 같았습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지요. 도타누키가 혀를 차는 소리만 작게 들렸습니다. 저는 겨우 나기나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연회장 한쪽에 몸을 말고 앉았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줄곧 가만히 있던 미카즈키 무네치카가 움직인 것은. 그는 그 때까지 조서를 손에 들고 있던 호네바미 토시로에게서 조서를 가져갔습니다. 그가 두루마리를 바닥에 내려놓고 칼을 뽑아 내리칠 때까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미카즈키는 그대로 칼을 몇 번 더 우아하게 휘둘렀습니다. 두루마리는 깔끔하게 몇 번을 베여 몇 조각으로 갈라졌습니다. 해임이라는 두 글자는 아예 가로로 반동강이 나 버렸지요.
"이것으로 주인에게는 전달되지 않게 되었다. 핫핫핫하."
그는 초승달 같은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습니다. 마치 수국이 아름답구나, 하고 평범한 감상을 이야기하는 귀족 같더군요.
"그렇다고 이 조치를 막을 수는 없어. 이것은 이미 결정된 사실을 통보하는 종이에 지나지 않아."
우구이스마루의 말대로였습니다. 미카즈키의 칼에 잘려나간 것은 단순한 종이일 뿐, 0시가 되면 사니와에게 '조치'가 내려지는 것은 이미 정해진 사실이었습니다. 종이를 벤다고 그것이 없어진다면 좋았겠지만, 세상 일은 그리 쉽게 굴러가지 않는 법이지요.
미카즈키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는 칼을 칼집에 꽂았습니다. 금속이 스치는 소리가 끝나자, 그는 종이 조각 하나를 집어들며 말했습니다.
"그 말대로구나. 이깟 종이가 무슨 힘이 있다고 주인의 처분을 막을 수 있겠느냐. 허나 우리에게는 힘이 있지. 우리는 무기지만 츠쿠모가미, 자연을 다스리는 자들만은 못하나 엄연한 신령의 좌에 있지 않더냐."
"어이, 미카즈키 형씨. 그 말은."
"......카미카쿠시."
사요 사몬지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미카즈키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것이 될 리가 없잖습니까, 라고 저는 말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저보다 앞서 소우자 사몬지가 입을 열었습니다.
"카미카쿠시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익히 알 테지요? 진명, 주인의 진짜 이름. 우리 중 그것을 아는 이가 있습니까? 주인 자신조차도 자신의 진짜 이름을 모르잖아요."
그 말대로였습니다. 조서에 적힌 이름은 편의상 붙여진 이름일 뿐, 생전의 진짜 이름이 아닙니다. 진짜 이름은 오직 정부만이 알지요. 사니와의 카미카쿠시를 막고 한편으로는 사니와가 반항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 중 하나라던가요. 이름을 빼앗긴 유령은 이름을 쥔 자에게 절대 반항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미카즈키의 얼굴에서 왜 웃음기가 가시고 있지 않았을까요. 그는 싱글싱글, 자리에서 일어선 채 모두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다들 알지 않느냐는 눈빛을 좌중에게 보낸 순간, 이시키리마루가 말했습니다.
"미카즈키여, 설마, 이 혼마루째로 감추자는 것은?"
미카즈키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는 캥 하고 짖었습니다. 맙소사, 이게 무슨 말입니까. 사니와 하나를 감추지 못한다면, 이 혼마루 자체를 감춰버리겠다는 이야기 아닌가요. 그런 일은 들어본 적도 없었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을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이들을 돌아보았습니다. 누가 저 말도 안 되는 말에 뭐라고 입을 열어보라고 할 참이었지요.
"주군을 지키기 위해라면 무슨 짓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다. 금기든 뭐든 상관없다."
헤시키리 하세베의 어조에 저는 말하는 걸 포기했습니다. 그 목소리에는 조용한 광기가 서려 있었습니다.
광기는 다른 이들에게도 이미 옮아간 듯했습니다. 단상의 근시석에 앉은 하치스카도, 늘 쾌활하게 웃던 아와타구치의 단도들도, 평소라면 지나친 행동을 제재했을 톤보키리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신들의 분노의 편린을 그 때 저는 보았습니다.
말이야 간단하지, 혼마루를 감춘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몇십 명이 사는 저택을 그저 보이지 않게만 하는것도 어렵습니다. 하물며 그 때 남사들이 벌이려 했던 일은 단순히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 이상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니와가 있는 혼마루 전체를 이 세상에서 잘라내려 하는 것이었어요.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군요.
"오래 갈 수는 없을 겁니다. 우리는 지금 인간의 집단만을 속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 현세 전체를, 삼라만상을 지배하는 이치를 속이려 하는 것입니다."
저택의 경계를 돌며 타로타치가 말했습니다. 그는 벽에 부적을 붙이거나 바닥에 곡옥을 묻거나 하고 있었습니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요. 그것이 바로 그 속임수를 쓰기 위한 초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입니까? 이렇게 되면 당신들은 출진도 원정도 나갈 수 없습니다. 혼마루에 결계를 펴서 세상에서 잘라내려 하다니, 그런 무식한 짓에 한두 명도 아니고 혼마루의 남사 전체가 동의하는 건가요?"
"주인을 잃는 것보다야 백 배 낫잖아."
지로타치가 이야기하며 구덩이를 팠습니다. 타로타치가 곡옥을 묻을 구덩이였습니다. 술을 마시고 들뜬 것처럼(그는 언제나 술을 마십니다만) 가벼운 목소리였지요.
"정부에서 도망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무시무시한 일인데, 아예 이 세상을 속이려 하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요, 당신들은. 세상 어느 설화에 죽음을 피하는 데 성공한 사례가 있단 말입니까."
"꼬장꼬장하긴. 뭐,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하면 저승의 신께서도 조금 눈감아주지 않겠어?"
지로타치가 웃으며 손에 든 곡괭이를 내리쳤습니다.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렇게 쉽게 눈감아줄 거면 세상에 죽는 사람이 왜 나오겠습니까.
완전히 질려서 저는 혼마루 건물 쪽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니와가 근시와 마루에 앉아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야?"
"응, 아무래도 그래야 하는 모양이야. 우리도 덩달아 휴가를 받았네."
하치스카가 저렇게 말솜씨가 좋았던가요. 그는 사니와에게 어물쩡 앞으로 출진도 원정도 없을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 손에는 그럴듯하게 적은 가짜 조서가 들려 있었습니다.
저는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혼마루에서 벌이려 하는 일은 문서 위조 정도는 애교로 보일 정도의 일이었으니까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사니와는 다들 쉴 수 있다면 다행이라며 다정하게 웃었습니다. 키리히메라는 명칭답게, 안개처럼 흐릿하면서도 부드러운 웃음이었습니다.
결말 말입니까? 아아,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렇게 바로 알려드릴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거. 아무튼 의식의 주도를 맡은 이시키리마루의 말을 빌리자면 '한 사람을 죽음에서 감추는 행동'이었으니까요. 그 여파도 상당했습니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후에 하도록 하지요. 지금은 일단 그 놀란 표정부터 진정시키고, 유부초밥이라도 먹으며 속을 달랜 후 다시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