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사니와(이름 및 독자설정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6.06.05 검사니 전력 60분 '길을 잃다'
코를 찌르는 물냄새에 헤시키리 하세베는 혀를 찼다. 습기는 검에 별로 좋지 않은데다, 갑주에 코트까지 걸친 그의 옷은 습기를 머금으면 금방 무거워지기 십상이었다. 빨리 이 곳을 벗어나자고 생각하며 그는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사실 어디로 나아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방이 똑같은 풍경이기 때문이었다. 하얀 안개가 사방을 꽉 채우고 하늘까지 덮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세베는 칼을 뽑아들고 손을 앞으로 쭉 뻗어보았다. 칼끝이 안개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세베는 칼을 도로 꽂아넣고 입을 손으로 감쌌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디로 가도 마찬가지일 듯했다. 하다못해 땅을 보고 가려 해도, 땅 역시 보이는 곳은 다 똑같은 들풀에 덮여있을 뿐이었다. 이런 이상한 곳에서 길을 헤맬 시간 따위 없는데, 아직 주군께 올리지 못한 보고가 있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하세베는 감에 의지해 다음 걸음을 내딛었다.
"응?"
땅에 다른 흔적이 나타났다. 풀과 확연히 다른 색의 자국이 땅에 남아있었다. 검은 염료를 쏟은 것처럼 보이는 그 자국은, 자세히 보니 약간 붉은 기를 띠고 있었다. 하세베는 그 흔적이 무엇인지 곧바로 알아차렸다. 사람을 벤 적이 있는 검인 그에게 핏자국은 지극히 친숙한 것이었다.
핏자국은 어디로 끌려간 것처럼 나 있었다. 어째서 이것에 신경이 쓰이는 것인지도 모른 채 하세베는 그 자국을 따라 눈을 옮겼다. 짙은 안개에 가려진 곳 너머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몇 발자국 가지 않아 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 깊어 보이지도 않건만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안개의 색을 입어 수면이 우윳빛이 되었기 때문일까. 하세베는 강을 내려다보았다. 약간 곤혹스러워하는 자신의 표정이 비쳤다.
'주군께서 싫어하시는 곳이군.'
수면에 비친 하세베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의 주인은 안개를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안개가 낀 강가는 더더욱 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세베 본인은 안개든 강이든 상관없었지만, 주인이 싫어하는 것을 그가 좋아할 리는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장소는 하세베에게는 더없이 거슬리고 거북한 곳이었다. 어째서 이런 곳에 자신은 발걸음을 옮긴 것인가. 그는 핏자국이 남은 잔디를 발로 가볍게 긁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때, 수면이 흔들렸다. 하세베는 자신의 그림자가 빠르게 흩어지는 것을, 그리고 그 그림자가 다른 모습을 그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칼 손잡이에 손을 올린 그 순간, 물 속에서 하얀 그림자가 떠올랐다.
"......아파."
그림자는 그렇게 말했다. 그 목소리에 아연실색한 하세베의 앞에, 그림자는 실체를 만들어 물 위로 떠올랐다.
흐르는 강 위에 멈춰서 하늘거리는 그 모습은,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빼면 한 마리 잉어 같기도 했다. 흐트러진 기모노가 떠올랐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하며 색놀이를 했고, 그 색들을 핀처럼 고정하고 있는 눈동자가 푸르게 빛났다. 물살에 하늘거리는 하얀 머리칼은 신부의 베일 같기도, 죽은 자의 수의 같기도 했다.
하세베는 칼을 뽑지 않고, 수면에 떠오른 여인을 응시했다. 그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주군?"
여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을 보며 넋을 놓은 남사에게 시선을 주기는 했으나, 멍한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여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 강물에 섞이고 있음을 하세베가 알아차린 것은 그 때였다. 주인은 울고 있었다.
"아파. 가슴이, 아파."
그 말에 하세베는, 주인의 가슴이 방금 전 그가 발로 디뎠던 자국과 같은 색으로 물들어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강물에 떠올라 있는데도, 이미 다 말라서 검붉게 되어 있는데도, 그곳은 아물어 있지 않았다. 우윳빛 강가에 한 줄기 붉은빛이 섞여 흘러갔다.
하세베는 주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주인의 모습은 물그림자처럼 잡히지 않았다. 차가운 물이 장갑을 적셔 손에 달라붙게 만들었지만, 그 손에 잡히는 것은 몇 방울의 물뿐이었다. 그는 주인을 당황해 바라보았다. 여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파. 가슴이 너무 아파."
"......주군, 누굽니까, 주군께 이러한 상처를 남긴 자는."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되뇌는 주인에게 하세베는 물었다. 그는 어느 새 강가에 꿇어앉아 있었다. 하세베를 올려다보는 주인의 눈에서 한층 많은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몰라. 창을 든 사람들. 아마도 아버님의 적. 그 외에는 모르겠어."
"그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명만 내려주십시오. 그들을 제가 전부 베어버리겠습니다."
하세베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여인이 자신을 신하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데도 이런 말을 하다니, 자신도 참 중증이라고 그는 속으로 자조했다.
여인의 눈이 떨렸다. 잠시 후, 그녀의 파랗게 질려 핏기가 없는 입술이 움직였다.
"당신은, 누구?"
"헤시키리 하세베. 주군의 신하....가 될 자입니다."
하세베는 말끝을 바꾸었다. 그는 자신이 헤매어 든 공간이 어디인지 대충 짐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처음 주인을 만났을 때처럼 고개를 숙였다.
여인은 신하라는 말을, 헤시키리라는 이름을 되뇌었다. 하세베는 가능하다면 하세베 쪽으로 불러주셨으면 한다고 말을 남기려다 그만두었다.
"아파."
"예, 무척 아프실 듯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주군께 해를 입힌 자들을 전부 도륙하고 싶군요."
"추워."
"예, 물 속이니까요.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건져드리고 싶습니다."
"외로워."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세베는 손을 수면에 댔다. 파문이 여인의 뺨에 닿았다. 수면에서 하늘거리던 여인의 얼굴에 조금 생기가 돌았다.
"당신은 계속 여기 있을 거야?"
"......그것은 어렵습니다."
하세베는 고개를 저었다. 여인의 얼굴에서 생기가 가셨다. 비록 과거의 허상에서라고는 하나 주군의 뜻을 거부한 자신을 용서하지 말라고 속으로 빌며 하세베는 말을 이었다.
"시간이 흐른 후, 주군께서는 이 물을 떠나 제 곁에 오시게 됩니다. 저는 그 때 이래의 주군의 곁을 지켜야만 합니다."
".......당신은 나를 좋아해?"
흐르는 물소리에 묻히지도 않고, 약한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하세베는 허리를 조금 숙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는 저와 만난 이후의 주군을 마음 깊이 품고 있습니다. 혼마루의 누구보다 주군의 곁에 있고 싶고 주군의 제일이 되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당신을 구할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면 주군께 마음을 들킬 일 없이 주군께 마음을 고백할 수 있다. 그런 생각에 하세베는 확고한 말투로 말을 맺었다. 안개 속에서 그의 헤멤 없는 목소리가 수면에 꽂혔다.
여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눈에서는 눈물이 그쳐 있었다. 여인이 생긋 웃었다고 생각한 순간, 그 모습이 수면 아래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비눗방울처럼 곱고 여렸다.
역시 이것은 과거의 주군의 모습을 그린 꿈이었다. 그렇게 새삼 깨달으며, 헤시키리 하세베는 잠에서 깨어났다.
"......주군."
아직 새벽이 물러가지 않은 어두운 방 안, 하세베는 자신의 곁에 손을 뻗었다. 같은 이불 속, 그의 곁에는 하얀 머리의 여인이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뺨에 손가락이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