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사니와(이름 및 독자설정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6.05.22 검사니 전력 60분 '수행'
첩첩산중에서 마주한 시냇물은 생각보다 넓었다. 산골짜기에 스며드는 바람소리에도 묻히지 않고 세차게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은 아파 보이기까지 했다. 강가에 서서 그 물을 내려다보던 사니와 키리히메는 소맷자락을 걷고 물에 손끝을 담갔다. 차가운 물이 퐁 하고 튀어 옷자락을 적셨다. 사니와는 시냇물 바닥을 내려다보더니 신을 벗으려 했다.
"그만두시게. 산의 물은 수행에 익숙치 않은 이에게는 사납기 그지 없으니."
굵직한 목소리가 그녀를 멈춰세웠다. 키리히메는 한쪽 신만을 벗은 채로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차갑긴 하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카카카, 도전하는 자세는 실로 바람직하나, 산의 물은 온도만이 문제가 아니네. 유속이 생각보다 빨라, 주인의 몸으로는 중간에 흐름에 휩쓸려 다칠지도 모르는 일일세."
"확실히 야마부시에 비해서는 몸이 약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까지 체력이 부실하지는 않다고 키리히메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살짝 뾰로통해진 듯한 말투에 야마부시는 특유의 너털웃음을 다시 한 번 터뜨렸다.
"그렇게 실의에 빠질 것은 없네. 자신의 한계를 알고 수행의 자세를 가다듬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지. 카카카."
"하지만, 이대로는 건널 방법이 없지 않아? 징검다리 삼을 돌도 보이지 않는걸."
"그도 그렇군. 이 상황에서는 역시 물을 가로질러 건널 수밖에 없겠지."
그렇게 말하며 야마부시는 신을 벗었다. 그의 신은 굽이 높은 것으로, 키리히메가 보기에는 평지에서도 신고 다니기 어려워 보이는 구조였다. 그 신을 신고도 산을 자유자재로 타는 야마부시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미끄러운 시냇물 바닥까지는 위험한 모양이었다.
신을 허리춤에 찬 야마부시는 잠시 주인을 내려다보았다. 곧, 그는 주인에게 손짓하며 몸을 낮춰 무릎을 굽혔다.
"잠시 업히시게."
"응?"
"물살을 건너야 하지 않겠는가. 이 물을 건너지 않으면 다음 쥬쿠(宿)까지 도달할 수가 없네."
"아니, 그..... 야마부시, 괜찮아?"
"소승은 이러한 물살에도 단련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네. 무거운 짐을 지고 건넌 적도 있지. 주인을 등에 업고 건너는 것은 가뿐하다네, 카카카."
다시금 쾌활하게 웃으며 야마부시는 제 어깨를 두드렸다. 키리히메는 머뭇머못 야마부시와 시냇물을 번갈아보았다. 잠시 후, 그녀는 한숨을 들이키며 얌전히 남사의 등 위에 올랐다.
주인을 등에 업은 야마부시가 일어서가 사니와의 시야가 한순간에 확 올라갔다. 그 갑작스런 변화에 사니와는 휘청 뒤로 넘어갈 뻔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위기감에 사니와는 자신도 모르게 야마부시의 목을 꼭 껴안았다. 누옷, 하고 특이한 외마디소리를 낸 야마부시가 곧 사니와를 업은 자세를 좀 더 단단하게 바로잡았다.
"카카카, 이번에는 꼭 잡았는가? 그럼 출발하겠네. 신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게, 주인이여."
"으, 응."
키리히메가 대답하자마자 야마부시는 물 속으로 발을 내딛었다. 첨벙 하고 나는 물소리는 아까 전 키리히메가 손을 담갔을 때보다 훨씬 요란했다.
물살을 헤치는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그러나 걸음이 조금씩 아래로 떠내려가는 것 같아 키리히메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팔에 들어간 힘을 눈치챘는지 야마부시가 안심하라는 말을 건넸다.
"걱정하지 말게나, 주인이여. 본래 흐르는 물을 건널 때는 이렇게 대각선으로 흐름에 어느 정도 맞추며 건너는 법일세. 결코 흐름에 밀리고 있는 것이 아니지."
"그런 거야?"
"완전히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지. 흐름에 맞추면서도 결코 중심을 잃지 않는 것, 이것 또한 불도에 다다르는 수행의 경지일세."
끝에 키리히메가 알지 못하는 진언을 덧붙이며 야마부시는 다음 걸음을 내딛었다. 키리히메는 팔에 힘을 주어 매달리며 시냇물을 내려다보았다. 꽤 멀찍이 내려다보이는 물줄기는 여전히 세찼지만, 두 팔에 가득 안긴 단단한 근육 때문인지 아까보다는 그 위력이 덜해 보였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키리히메는 몸의 힘을 풀었다. 야마부시가 걸친 슈겐도 가사의 감촉이 옷 건너로 느껴졌다. 뻣뻣한 털은 코기츠네마루의 털결처럼 마냥 곱지는 않았지만 대신에 두툼한 안정감이 있었다. 혼마루에 있을 때 가끔 그 등을 볼 때에도 참 넓은 등이구나 싶었지만 이렇게 맞닿아 있으니 그 느낌이 확 와 닿는다고 키리히메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때 그녀는 처음에 야마부시의 등에 타기 전 주저했던 이유를 떠올렸다. 딱히 그가 못 미덥거나 한 것은 확실히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는 팔에서 힘을 빼며 야마부시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저기, 야마부시, 정말 괜찮아?"
"응? 무엇이 말인가?"
"이렇게 업는 거. 저.... 수행자는 색(色)을 가까이 하면 안 된다고, 그렇게 들었는데."
적어도 키리히메가 아는 수행자들은 그러한 계율이 있었다. 이성(異性)을 가까이하여 마음을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면, 지금 자신은 야마부시의 수행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의 수행이 어떤 것인지 신경쓰여 무리해서 동행을 청한 것도 미안했는데 그래서야 정말로 면목이 없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키리히메는 빨리 내려와야 할 것 같은 생각에 몸을 움찔거렸다.
시냇물이 끝나고, 야마부시의 젖은 발이 맞은편 흙길 위에 올라섰다. 이제 내려와야 하려나 하고 키리히메가 준비를 하려던 순간, 수행자 남사가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카카카, 주인도 많은 것을 신경쓰는구려. 그 배려의 마음씨, 실로 고맙네."
"아, 응, 아니, 딱히 감사받을 건 아닌데. 오히려 안 좋은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지 않을까......"
"신경쓰지 않아도 좋네, 주인이여. 계율에 얽매이는 것 또한 수행자에게는 독이라네."
신조차 신지 않은 채 야마부시는 흙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오히려 등에 업은 주인을 단단히 고정시키기 위해 자세를 다지며 그는 말을 이었다.
"소승이 주인이자 동행자 되는 이를 저 시내 건너편에 남겨두거나, 주인에게 위험천만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저 차고 센 흐름을 건너게 시켰다 해 보시게. 그것이 과연 수행자의 자세일지? 소승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네."
"그런 걸까?"
"그리 믿는다면 그리 되는 것이지. 카카카. 주인이여,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게나. 주인을 돕는 것으로 공덕을 쌓을 수 있어 소승에게도 이익이라네."
"그럼 다행이지만.... 저기, 야마부시, 시내는 한참 전에 다 건넜는데."
야마부시의 발치에서 들리는 사각사각 소리를 가리키며 키리히메가 말했다. 그 말대로 시냇물 소리는 벌써 제법 등 뒤로 멀어졌고, 사니와는 여전히 남사의 등에 업혀 있었다. 앞에 펼쳐진 산길은 그렇게 험해 보이지도 않았다.
아까 전까지 선문답하듯 거침없이 대답하던 야마부시가 처음으로 대답을 늦게 끌었다. 그는 몇 걸음을 흐음, 하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두 팔은 단단히 키리히메를 업고 있었다.
"아먀부시....?"
"...카카카, 소승도 아직 미숙하다는 것이라네. 주인이여, 이 번뇌를 상쇄하기 위해서라도 소승의 산중수행에 좀 더 도움을 주시게."
"도울 수 있다면. 어떻게...?"
"한동안 더 업혀 있어 주시게나. 공교롭게도 오늘 소승이 가져온 짐은 너무 가벼워 산길을 걷는 데 충분한 시련이 되지 못하니. 주인의 몸을 떠받치며 걷는다면 충분한 수행이 되지 않겠는가."
"나, 그렇게 무거워?"
키리히메는 살짝 놀란 듯 말을 꺼냈다. 야마부시는 대답하지 않고 그녀의 몸을 살짝 띄워 등 위에 더 편하게 자리잡게 하였다. 체온 때문인지 그의 어깨와 등이 아까보다 좀 더 뜨뜻해진 것 같다고 느끼며, 키리히메는 야마부시의 등에 꼭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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