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히메는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하지만 허리에 덮쳐오는 통증에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직도 열기에 데워져 있는 한숨을 내쉰 그녀는 대답 대신 자신을 위에 태우고 있는 상대의 품 속에 무너져내렸다.
니혼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제 주인을 끌어당겨 안았다. 제 입으로 묻기는 했지만, 괜찮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쨌건 간에 사태를 그렇게 만든 원인 제공자가 그였던 것이다.
'너무 해 버렸구만.'
그는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슬쩍 키리히메의 허리, 정확히는 골반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쓰다듬었지만 그녀는 움찔거리지 않고 가만히 그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정확히는 반응할 힘도 남아있지 않은 것일 테지, 하고 니혼고는 마른웃음을 흘렸다.
두 사람이 몸을 겹치게 된 지는 제법 되었지만, 매번 니혼고는 조절에 실패하고 있었다. 한 번으로 끝내자, 오늘은 무리시키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상대를 안는 순간 본능에 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가 아무리 짓궃게 나와도 전부 받아주는 키리히메의 태도 때문이기도 했지만, 결국 일차적인 책임은 그녀의 신음이나 몸짓에 흥분해 절제력을 잃는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래서야 또 아침에 고생시키겠군. 미안하다. 한 대 때려도 된다고? 맞아주마."
"안 때려... 때릴 힘도 없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키리히메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아스라이 빛났다. 한바탕 일을 치른 후의 그녀의 표정은 살짝 열을 띠고 있어, 평소와는 다른 귀여움이 풍겨나왔다.
연인의 뺨을 니혼고는 한 손으로 쓰다듬었다. 살살 볼을 어루만지는 두꺼운 손길에 키리히메는 가르랑대는 고양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살짝 입꼬리를 올린 입술에 이끌리듯, 그는 얼굴을 끌어당겨 슬며시 입을 맞추었다. 관계를 가진 직후의 키리히메는 평소보다 풀어져 있어, 혀를 넣는 깊은 입맞춤에도 기꺼이 응해왔다. 그런 반응이 더 보고 싶어 니혼고는 일부러 혀를 뒤로 물렸다. 예상대로, 키리히메는 아쉽다는 듯 제 쪽에서 혀를 집어넣어왔다.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그는 입술의 각도를 몇번이고 바꾸었다.
"하아... 까끌까끌해."
"혀가? 턱이?"
"둘 다."
"하하, 뭘 이제 와서. 하여간 귀엽기는."
너털웃음과 함께 니혼고는 일부러 키리히메의 뺨에 제 볼을 부볐다. 까끌까끌한 턱수염의 공격에 키리히메는 간지럽다며 까르르 웃었다. 슬슬 기운이 회복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니혼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키리히메를 놓아주고, 한쪽에 내려놓은 술병으로 손을 뻗었다. 日本이라는 글씨가 쓰여있는 투박한 술병과 그 옆에 굴러다니던 넓은 술잔을 솜씨 좋게 잡아올리자 키리히메가 그것을 빤히 바라보았다.
"마시게?"
"목도 마르고 말이지. 네게도 한 모금 나눠주지."
"나 술 약한 거 알면서."
"뭐, 한 모금 정도는 괜찮잖냐. 이번엔 내가 따라줄 테니까."
키리히메는 고민하는 눈치였다. 니혼고는 술잔에 술을 따르고는 그녀의 귓가에 일부러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