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사니와(이름 및 독자설정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 곧 결혼할지도 몰라."
키리히메는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곁에서 내내 입술을 깨물고 있던 검은 갑주의 남자가 순간 모든 동작을 멈추었다.
그는 키리히메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헤 벌린 입에서는 곧 혀가 굴러나올 것 같았다.
"어이, 너, 뭐라고 했나?"
"곧 결혼할지도 몰라."
"그거, 그렇게 간단히 말할 문제냐?"
"당신도 이런 문제에 신경을 쓰는구나, 도타누키."
키리히메는 책상 위에 말려있는 서류 두루마리를 펴며 이야기했다. 도타누키는 뭔가를 말하려는 듯 더듬거리다 이내 머리를 짚으며 푹 고개를 수그렸다.
"너, 날 뭐라고 생각한 거냐. 나도 기본 상식 정도는 있어. 그, 결혼이라는 거, 그거 맞지? 부부의 연을 맺는, 그거."
"응."
"알면서 그렇게 당당히... 대체 누구랑 하는 거냐?"
"글쎄."
"하아?"
이번에야말로 도타누키는 벌떡 일어섰다. 키리히메가 눈을 깜작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당신, 생각했던 것보다 크네."
"그게 지금 할 말이냐. 나참, 이렇게 맹한 녀석이 주인이라니......."
"달관한 거라고 해 줘."
"맹한 거다, 맹한 거. 세상천지 어디에 난데없이 결혼한다고 하고 거기에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겠다고 하는 놈이 있냐?"
도타누키는 거기까지 말하고 손가락을 팽 튕겨 키리히메의 이마를 쳤다. 본래라면 주종 관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불경한 짓거리지만, 키리히메는 그 정도로 화내는 사니와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이마를 문지르며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완전히 모르지는 않아."
"아, 그러셔. 어떤 놈인데?"
"이 혼마루에 있는 도검 중, 가장 강한 도검."
데구르르. 도타누키가 들고 다니던 쪼개진 투구가 툭 떨어져 바닥을 굴러갔다. 키리히메는 그 투구를 쫓아 바닥을 기어, 사람의 목을 닮은 그것을 품에 안고 먼지를 닦았다.
도타누키는 바닥에 팩 자기 몸을 내던지듯 주저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거, 거 그거냐? 네 위라는 놈들이 한 말."
"응."
"뭔 되어먹지도 않은 말을 잘도......"
도타누키는 뭔가를 웅얼거렸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키리히메는 그를 이상하다는 눈길로 쓱 쳐다본 후, 윤이 나게 닦은 쪼개진 붉은 투구를 그에게 돌려주었다. 그러나 도타누키는 그것을 받아 평소처럼 옆구리에 끼는 대신 한쪽에 대충 내려놓았다. 투구가 픽 넘어가자 키리히메가 한쪽 눈을 찌푸렸다.
"닦아 놨었는데."
"내 투구엔 신경 끄고 네 일이나 생각해. 혼인이라고?"
"도타누키도 그런 거에 신경쓰는구나."
"그거야......! ......넌 아무런 생각도 없는 거냐?"
도타누키는 명백히 말을 하려다 삼키고 다른 말을 꺼내들었다. 키리히메는 그것을 짐짓 모른 체 해 주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혼마루에 있는 도검들은 다들 각자 강점이 있다. 그들 중 강한 자를 말하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오오타치 중에서 특히 활약해 주는 호타루마루였다. 선봉에 서서 큰 칼날을 등에 지고 휘두르는 모습은 작지만 의지가 되었다. 나기나타인 이와토오시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활약진이었다. 적 전체를 베어버릴 정도로 넓은 공격은 무척 든든했다. 그 외에도 누구보다 빠르게 적을 베어주는 하세베라던가, 야전에서 그 진가를 발휘해 주는 히라노라던가, 검비위사를 상대로 늘 공을 세우는 톤보키리 등 혼마루의 강자는 많았다.
생각에 빠져있던 키리히메의 눈이 문득 도타누키를 향했다. 그는 평소보다 한층 날카로워진 노란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얼굴의 수많은 상처가 그날따라 유난히 깊게 보였다.
"어, 어이?!"
갑자기 눈앞에서 도타누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키리히메의 손은 도타누키의 얼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고 있는 상처를 더듬고 있었다. 키리히메의 파란 눈동자가 묘하게 반짝이다 퍼뜩 흔들렸다.
"미안해."
"됐으니까, 알면 더듬는 건 관둬. ...그래서, 아무 생각도 없는 거냐, 너?
"알아들어야 하는 건 다 알아들었는걸."
"그게 어떤 녀석이든 상관없다고?
도타누키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키리히메는 목소리를 내려 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는 말을 마음 속에서 꾹 붙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키리히메는 다시 눈앞의 우락부락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잠시 우물거린 후, 엄청난 무거움을 느끼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 순간.
벽이 발치로 멀어져갔다. 강한 힘에 떠밀린 키리히메는 서류더미 위에 넘어진 채, 자신을 노려보는 한 쌍의 노란 눈과 마주했다. 거친 숨결이 볼을 타고 흘러 피부에 전율이 일었다.
도타누키의 으르렁대는 듯한 목소리가 머리카락 하나하나를 잡고 흔들었다.
"아무하고나 연을 맺어도 상관없다, 그 얘기냐?"
"......."
"그렇단 말이지... 그럼, 지금 여기서, 내가 그 상대가 돼도 불평하지 마라."
갑자기 손이 옷자락을 붙잡았다. 키리히메가 두 손으로 도타누키를 떠밀려 했지만, 그 두 손은 곧 애처롭게도 서류더미 위에 한손으로 묶여버렸다. 이성이 날아간 한 마리 짐승이 그르렁대며 가슴께에서 숨을 들이쉬었다.
키리히메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눈을 감고 몸의 힘을 뺐다. 그 변화는 그녀의 두 손을 속박하고 있는 도타누키에게도 금방 전해졌다. 사냥감이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자세를 취하자, 그는 옷자락을 놓고 키리히메의 얼굴 바로 옆의 바닥을 쾅 쳤다.
"저항하라고! 어이, 이럴 때에도 저항하지 않는 게 말이 되냐?"
"......저항할 이유가, 없는걸."
"뭐?"
"나는 명령을 거스를 수 없어. 정부에서 가장 강한 도검과 결혼하라 하면 그렇게 해야 해. 하지만 그 전까지 몸을 지키라는 명령을 듣지는 않았어."
키리히메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 눈물이 떨어져 모처럼 처리해 놓은 서류더미 위 글자들을 번지게 했다.
도타누키는 한참을 멍하니 사니와를 내려다보았다. 잠시 후, 그는 이를 뿌득 갈며 키리히메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어이, 날 얕보는 거냐?!""
"응?!"
"내가, 실전도인 이 내가 혼마루에서 강하지 않은 놈으로 보이냐는 말이다!"
그는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키리히메를 자신의 품에 안았다. 딱딱한 갑옷이 부드러운 피부에 파고들어 키리히메에게 기묘한 아픔을 선사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 감각을 받아들였다.
도타누키는 팔에 더욱 힘을 주며 소리지르듯 말했다.
"잘도 얕봐 줬겠다...! 두고 봐라. 그게 언제 정해지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다른 놈들을 제치고 제일가는 녀석이 되어 보일 테니까!"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머리카락 사이에 못박겠다는 듯, 그는 억센 손으로 서투르게 키리히메의 머리를 빗어내렸다. 워낙 서투른 솜씨에 중간중간 머리가 뽑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도 키리히메는 가만히 있었다.
"기다리라고. 실전도의 강건함을 얕보지 마라. 얕본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해 줄 테니, 목 닦고 기다려."
살벌한 말과는 달리, 키리히메의 등을 토닥이는 손에서는 끓어오르는 애정 같은 것이 확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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