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사니와(이름 및 독자설정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일 오른쪽의 가장 작은 창고는 잘 쓰지 않는 잡동사니들을 주로 보관하는 곳이다. 자주 꺼내보지는 않으나 버리기도 애매한 책들, 파기 기간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는 옛 서류들, 혼마루에 놓을 곳이 없어져 옮겨둔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제일 안쪽 선반에서부터 차곡차곡 들어차 있다. 입구 쪽에는 아직 신력을 불어넣기 전 상태의 의뢰패나 도움패를 놓아두기에 창고 자체는 곧잘 열리지만, 안쪽 깊숙한 곳에까지 누군가가 들어오는 경우는 그다지 없다. 그 때문인가, 창고는 낮에도 캄캄한 구조였다. 높이 위에 난 창으로 한 줄기 빛이 비쳐 들어오기는 하지만 단지 그뿐으로, 창고의 문을 닫아버리면 어두침침해졌다. 그렇기에 창고 안쪽까지 뒤지려면 낮에도 등불을 가져올 필요가 있었다.
그런 시각이 희미해지는 창고 안에서, 숨이 뒤얽히는 소리가 조용히 둥지를 틀고 있었다.
"톤보키리…."
어둠 속에서도 윤곽이 보일 정도로 새하얀 사니와가, 제 근시의 이름을 속삭였다. 사니와 키리히메는 톤보키리에 비해 몸집이 훨씬 작았다. 그 때문에 양쪽이 모두 일어선 상태에서는, 키리히메가 그에게 매달려 간신히 고개를 위로 내밀고 입을 맞추는 형국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자세 때문일까, 키리히메는 더더욱 필사적으로 보였다. 응, 하고 긴장한 신음을 삼키며, 살짝 숨을 헐떡이며, 사니와는 까치발을 들고 위로 두 팔을 뻗었다. 희고 가느다란 두 팔이 톤보키리의 목에 감기고, 도톰한 입술이 자신보다 훨씬 큰 남사의 입술과 맞물렸다. 멀찍이 등불대 위에 올려둔 희미한 등불의 빛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발갛게 달아오른 뺨 위로 땀방울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윽."
톤보키리가 짧게 숨을 끊어쉬었다. 몇 초 동안 그는 잠시 주저했다. 게슴츠레하게 살짝 뜨인 따뜻한 눈동자가, 꼭 감긴 채 자신에게 매달려오는 주인의 눈썹을 바라보며 흔들렸다. 그러나 톤보키리는 제 눈을 닫으며 그 주저함을 떨쳐버렸다. 탄탄한 체격의 남사는 허리를 아래로 낮추어 숙였다. 그리고 키리히메의 등에 한쪽 팔을 감아 꼭 제 몸에 붙이듯 끝어안았다. 어두운 빛의 내번복 자락이 키리히메를 폭 감싸, 마치 톤보키리가 제 주인을 온몸으로 삼키는 것 같은 모습이 되었다. 다른 쪽 팔의 두터운 손이 키리히메의 뒤통수를 단단히 받치자 손가락 사이로 하얀 머리카락이 사르락 흘러내렸다. 입맞춤이 더욱 깊어지고, 목소리는 억눌린 신음이 되었다. 전장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던 톤보키리의 호흡이 지금은 연신 가쁘게 부서져내렸다.
"누군가 들어올지도 모릅니다."
입술을 떼고 톤보키리가 그렇게 고했다. 키리히메가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창고의 문이야 닫아 두었지만 잠근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가 들어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창고 제일 안쪽의 큰 선반이 만든 사각지대에 숨어 밀회를 가지는 연인들을 누군가 봐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약, 혼마루의 누군가가 들어와 이 모습을 본다면.
키리히메가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톤보키리가 다시 제 주인에게 입을 맞추었다. 허리를 낮추고 입술을 맞물리게 하여 누르는 동작은 아까보다도 깊고 격렬했다. 상대를 녹여 삼키려는 듯이 오랫동안, 그러나 서두르지 않으면 없어져 버릴 것 같은 상대를 다루듯이 조급하게, 혀가 혀와 얽히고 숨결이 뒤엉켰다. 다부지고 우직하며 성실한 도검남사로서는 놀라우리만치 감정에 휘둘리는 모습이었다.
톤보키리는 주인의 머리를 놓지 않았다. 키리히메도 남사의 목에 두른 팔을 풀지 않았다.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들뜬 숨소리가 갈수록 농밀해졌고, 구석에 숨어 나누는 입맞춤은 더더욱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선반이 눌려 나무가 삐그덕대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를 덮듯이 질척한 소리가 났다."
"본디 주군께 이러한 감정을 품어서는 안 됐습니다."
"그…런… 걸까."
입술을 내밀면 맞물릴 정도로 아주 살짝 거리를 벌리고, 둘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키리히메가 가쁜 숨을 고르며 상대를 응시하자 톤보키리는 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말과는 대조적으로, 한 번 더 키리히메의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갰다. 이번에는 깊이 얽히지 않고 그저 체온을 확인하듯이 꾹 누르는 입맞춤이었다.
"그렇습니다. 오롯이 섬기고 그저 모셔야 할 주군이신 당신이건만. …연모하고 있습니다."
톤보키리로서는 드물게 깊은 열기를 품은 고백이었다. 그는 키리히메를 그 품에 꼭 안은 채 미끄러지듯 바닥에 앉아 구석에 등을 기댔다. 자연스럽게 함께 주저앉아내린 키리히메를, 톤보키리는 뜨거운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고백이, 신하의 몸으로 연정을 품는 자신을 용서해 달라는 참회가, 소리없이 소용돌이쳤다. 곧 다시 혀가 얽히고 입술이 맞닿았다. 숨소리가 등롱 속 불이 타듯이 갇혀 타올랐고, 그 소리는 맞닿은 가슴 속의 심장소리에 묻혀버렸다.
"나도, 좋아해."
키리히메가 속삭였다. 평소 먼저 이런 말을 하지 못하는 이 소심한 사니와가 입을 선뜻 연 것은 밀회의 향기에 취했기 때문이리라. 톤보키리는 헛웃음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영광이라고 답해야 할까, 감사하다고 답해야 할까. 그 어느 것도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져 말하지 못하고, 남사는 제 주인을 끓어안은 팔에 힘을 더욱 주었다. 벽과 선반이 이루는 좁은 구석에 몸을 우겨넣듯 기댄 채, 남사는 다시 사니와와 서로의 입술을 탐했다. 상대의 체취를 들이마시고 자신의 기색을 덧칠해갔다. 그 소리가 억눌려 질척질척 흐르는 것은 행여나 누가 들어와 소리를 들을까 목소리를 한껏 낮추었기 때문이었다.
'밖에 바람이 불어주면 좋겠군.'
톤보키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세찬 바람이 윙윙 불면 그 바람소리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지워줄 텐데. 그것을 굳이 속삭일 생각은 하지 않고, 톤보키리는 더욱 체중을 실어 키리히메와 숨결을 섞고 체온을 나누었다. 아무리 목소리를 참아도, 가리지 못한 애정이 녹아내리는 소리가 되어 방울지는 것만은 그들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