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사니와(이름 및 독자설정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현존 니혼고의 무게는 창자루 등의 코시라에를 포함하면 약 2.8kg 가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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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창을 한번 들어 봐라."

저녁놀이 비쳐들어 주황색이 되어가는 방 안에서, 도검남사 니혼고가 그렇게 말했다. 앞으로 내민 한손에는 긴 창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전체적으로 짙은 색을 띤 창자루는 저녁놀이 비침에 따라 검게 칠한 듯 번득이기도, 자개 공예를 넣은 듯 반짝이기도 했다. 그것이 자신에게 내밀어진 의미를 알지 못하고 그저 그 자태에 정신을 빼앗긴 채, 사니와 키리히메는 한참 가만히 서 있었다.

"창을 들어 봐라."

니혼고가 다시 한 번 낸 목소리에 키리히메는 퍼뜩 정신을 도로 차렸다. 푸른 눈의 사니와는 눈을 한참 깜빡이다가, 창자루를 굳게 붙잡은 손을 보다가, 그 창을 내밀고 있는 남사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조용히 침을 삼킨 사니와는, 이윽고 조심스레 두 손을 내밀어 창을 받아들었다.

"와아."

키리히메는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소리를 내었다. 다리가 휘청거리다가 간신히 무게중심을 잡아 똑바로 몸을 세웠다. 창을 잡은 두 손에는 아직 힘이 충분치 못했는지 긴 창이 위태위태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곧 빠르게 중심을 잡아, 키리히메는 창집에 감싸인 날을 사선 위로 향한 자세로 창을 어찌어찌 들었다. 버거워하면서도 중심을 잡고 자신이 손에 든 것을 주의깊게 찬찬히 살피는 제 주인을, 니혼고는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린 채 내려다보았다.

"4근(2400g)을 좀 넘을 거다. 어떠냐?"
"묵직해."

키리히메는 그렇게 대답하며 두세 번 더 걸음을 휘청거렸다. 무게도 무게지만 길이가 긴 탓이리라.  아마 창이 좀 더 굵었더라면 지금처럼 받쳐드는 자세도 아니고 자루를 반쯤 껴안은 자세로 있었을 것이라고 니혼고는 짐작했다. 퍽 우스운 모습을 본의 아니게 연출하고 있는 주인을 바라보는 보랏빛 눈이 아주 조금 붉은 광택을 내는 듯했다.

"길이가 그만하니 당연하지. 그래도 동쪽 녀석에 비하면 가벼운 편이라고?"
"오테기네랑 비교하는 건 치사하다고 생각해."

키리히메의 말에 니혼고는 수긍하는 뜻을 담아 피식 헛웃음을 지었다. 소리를 내어 껄껄 웃지 않은 것은 정3위로서의 품위가 나타난 것일까, 아니면 다른 남사의 이름이 주인의 입에 오른 것이 마뜩찮았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었는지 답조차 잊어버리며, 니혼고는 키리히메와 거리를 한 걸음 좁히며 다시 말했다.

"그래도 이 창은 들 수 있군. 그럼 하나 더. 나를 들 수 있겠나?"
"무리야."

키리히메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가볍게 경악한 표정에 니혼고는 하마터면 너털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혼마루의 도검남사 니혼고는 제 주인보다 키가 머리 하나 이상은 컸고, 어깨도 떡 벌어져 체격이 좋은 남사였다. 웬만한 장정도 가볍게 들려 시도할 수 없는 풍채를 지닌 그를, 손발 가늘고 근력도 특출하지 않은 키리히메가 드는 것은 무리였다. 시도해봤자 꿈쩍도 하지 않을 테고, 설령 들어올렸다 해도 곧바로 다리가 무너져 니혼고의 몸에 깔려버릴 게 자명했다. 그 사실은 키리히메도 니혼고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뭐, 그렇겠지. 수십 관貫은 될 테니."

어깨를 으쓱한 니혼고는 키리히메의 손에서 창을 가져가서는 다시 제 한쪽 어깨에 걸쳤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모습에 키리히메는 그 창이 원래부터 니혼고의 신체의 일부였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곧 속으로 가볍게 웃었다. 어떤 의미에선 실제로 니혼고의 일부, 정확히는 그의 본체니까.
그렇게 생각하던 키리히메는 문득 니혼고가 자신에게 더욱 가까이 온 것을 알아차렸다. 고개를 위로 꺾어야 얼굴을 올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니혼고가 제 주인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어깨에 손을 얹어 가볍게 꾹 눌렀다. 따뜻한 무게가 메추라기의 날개 같은 얇은 어깨를 묵직하게 감쌌다.

"4근 좀 넘는 무기였던 것이 이만치 무게를 가진 존재가 된다. 신기하지? 이렇게 만드는 힘을 지닌 게 너다."

그렇게 말하는 니혼고의 손이 키리히메의 어깨를 놓아주었다. 저녁노을을 입은 눈이 도장을 찍둣 사니와를 내려다보는 동안. 그 손이 서서히 올라가 키리히메의 머리에 얹혔다. 머리카락 결을 더듬는 손가락은 아주 잠깐 쭈뼛거리나 싶더니 곧 대담하게 움직여, 지위 높은 도검남사의 한쪽 손은 제 주인의 머리를 상냥히 쓰다듬고 있었다.

"무력하지 않다는 거다."

바닥 깊은 곳의 물을 퍼올려 건네는 듯한 낮은 목소리와 함께, 니혼고의 한손이 연신 사니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키리히메가 눈을 크게 떴다가 몸을 떨었고, 그 두 손이 서로를 꼭 잡으며 키리히메 자신의 가슴팍을 눌렀다. 그 눈동자가 수면에 돌을 던진 듯 흔들리고 있는 것을, 시선이 이리저리 떠돌다가 니혼고를 향해 되돌아오는 것을, 니혼고는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똑똑히 보았다.
정3위의 관위를 지닌 남사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 키리히메가 어떤 표정으로 혼자 업무실에 서 있었는지, 그 표정을 니혼고가 보았는지, 그것을 보고 어떤 짐작을 했는지, 그의 입에선 그 중 어느 것도 나오지 않았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손이 그대로 키리히메의 상반신을 끌어당겨 껴안아, 보이지 않는 눈물을 한참 동안 거두어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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