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독신(독자설정 포함)이 등장합니다
※ 영걸(가샤도쿠로)×독신 성향
구미(口味): 음식을 먹을 때 입에서 느끼는 맛에 대한 감각. 음식(飮食)을 대하거나 맛을 보았을 때 느끼게 되는 먹고 싶은 충동(衝動).
배가 고프다. 익숙하지만 여전히 불쾌한 감각에 가샤도쿠로는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조금 전에 음식을 입에 넣었는데도 강한 공복감이 그를 쥐어흔들고 있었다.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원념들이 아우성치는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가샤도쿠로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원인을 안다고 해서 허기가 사라져주는 것은 아니었다.
"하아……."
우울한 한숨을 쉬며, 검은 해골을 두른 요족은 제 곁을 보았다. 원념 한 조각도 달라붙지 않았을 듯한 깨끗한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가샤도쿠로가 따라 마지않는 자, 야오로즈계의 독신은 이제 막 손에서 마지막 서류 두루마리를 내려놓던 참이었다. 마지막 것이 유난히 길었던 탓일까, 두루마리를 말아 도로 봉하는 손길이 유독 느릿느릿 지쳐 있었다. 매듭까지 지은 두루마리를 곁에 곱게 포개둔 독신이 하아, 하고 숨을 내쉬었다. 가샤도쿠로가 아까 전 내뱉은 것과 겹치는,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다른 한숨이었다. 방금 전 가샤도쿠로의 한숨이 계속되는 고난에 짜내어진 것이라면 독신의 한숨은 짐을 내려놓은 이가 자연스레 자아내는 축포였다.
가샤도쿠로의 붉은 눈이 독신의 손을 따라 움직였다. 독신은 팔을 위로 쭉 뻗어 기지개를 켜고, 양쪽 어깨를 번갈아가며 네댓 번씩 톡톡 두들겼다. 너무 오래 앉아있어 뼈가 비명을 지른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영걸 곁에서, 독신은 살짝 흐트러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정리했다. 살랑, 머리가 흔들리면서 향기가 풍겨왔다.
"…대나무."
가샤도쿠로는 들리지 않게 짧게 중얼거렸다. 독신의 머리카락이 일렁이며 피어오른 것은 대나무 숲을 연상시키는 향이었다. 조금 전 식사 때 나온 죽순 요리의 향이 밴 것일까, 아니면 어느 영걸인가가 선물한 대나무 물통에 담아마신 물에서 옮겨받은 것일까. 어쩌면 댓잎으로 싼 떡 같은 다과를 즐긴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가샤도쿠로는 속으로 생각했다. 굶주리는 감각에 강렬히 사로잡힌 요괴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모든 것이 먹을 것과 이어지고 있었다.
"생각보다는 빨리 끝낼 수 있을 거 같아요."
독신이 자신의 오토기반을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지었다. 무심코 고개를 끄덕인 가샤도쿠로에, 독신은 조금 더 입꼬리를 올려보이며 재차 머리칼을 넘겼다. 살랑, 또 향기가 실려왔다. 푹신하니 입맛이 당기는 향이 대나무향 위에 더해졌다. 어디서 이런 향을 맡아보았더라 잠시 생각한 가샤도쿠로는 곧 답을 떠올렸다. 얼마 전 거리에 순찰차 나갔을 때 어느 과자가게 앞에서 맡았던 향과 같았다. 설탕을 진득하게 고아 만든 뭔가가 있었지, 하고 생각하며 가샤도쿠로는 눈을 아까보다도 여러 번 깜빡였다.
독신의 손에는 딱히 먹을 것도 없었다. 주머니나 품에도 딱히 간식거리는 없었다. 아까 전 입가심으로 가져온 것도 전부 가샤도쿠로가 먹어치운 후였다. 즉, 지금의 독신은 먹을 것과는 전혀 연관이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 지금의 독신님이 이토록 다르게 보이는 것일까. 살랑살랑 풍겨오는 향 때문이라고, 혹은 아까부터 심하게 뱃속에서 요동치는 공복감 때문이라고 가샤도쿠로는 멍하니 생각했다. 시원함과 푹신함이 어우러진 기묘한 조합의 향이 입맛을 자극하며 살살, 가샤도쿠로의 입을 끌어당겼다.
"어……?"
독신의 외마디소리가 들렸다. 그 얼굴이 유달리 초점을 잡기 힘들어 가샤도쿠로는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독신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기에는 그가 너무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두루마리 두어 개가 데굴데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두루마리 더미를 밀치고 다가선 자세로, 검은 옷의 해골 요족은 본전의 주인에게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숨소리에 섞인 녹진한 향이 느껴질 정도 가까운 거리에서, 정말 누군가 뒤에서 밀면 바로 입술이 맞물릴 모습으로, 그는 독신과 마주했다. 손가락 마디 하나가 겨우 들어갈 거리만을 사이에 둔 채, 가샤도쿠로의 입술이 몇 번을 닫혔다 열렸다를 반복했다.
…이 행위는 어떤 의미였더라. 무언가 몹시 중요하고 아무에게나 함부로 할 행동이 아니었다는 것은 가샤도쿠로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한 공복감 때문에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독신을 불쾌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이 그를 말릴 뿐, 해골 요괴의 온몸은 이 달콤한 향기를 마시면 배가 채워질 거라는 기대감에 두근거렸다.
할짝.
가샤도쿠로는 살짝 혀를 내밀었다. 당장 입술이나 이로 물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맛보기차 내민 것이었다. 그 혀가 독신의 입술 사이를 삭 긋고 지나갔다. 입가에 꿀이라도 바른 것인지 달콤한 맛이 나, 허기에 시달리는 요괴의 뱃속을 더욱 요동치게 했다.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는 상대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 법이었다. 그러나 소리는 확실히 들렸다. 가샤도쿠로가 한 번 더 혀를 내밀어 아랫입술을 훑자 독신이 짧게 아, 하는 소리를 냈다. 거절이나 불쾌함의 의사는 섞여있지 않았다.
"독신님."
짧게 호칭을 부른 후, 가샤도쿠로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독신과 그 사이의 거리가 0이 되었다.
입 속에서 특별한 맛이 날 리는 없었다. 게다가 독신의 입이나 혀를 깨물어 삼킬 수 있을 리도 없었다(그러느나 차라리 자신의 뼈를 떼어다 갉을 거라고 가샤도쿠로는 잠시 생각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영걸은 쉽게 떨어질 수 없었다. 혀가 아닌 머리가 살짝 새콤하고 몹시 달콤한 맛을 느끼고 있었다. 공복이라고 아우성치던 망자들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두근거림으로 뱃속이 차는 기분이 들어 가샤도쿠로는 숨을 흘렸다. 만복감이라는 것을 자신은 모르나, 아마 이런 것이지 않을까. 원념을 짊어진 영걸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아."
입술을 뗀 것은 숨을 마시기 위해서였다. 거리를 살짝 벌려 심호흡을 하던 가샤도쿠로의 눈에, 입을 손으로 가리고 가쁘게 숨을 삼켰다 내쉬는 독신이 보였다. 아까 전까지 맛보던 입술이 가려진 것이 아쉽기도 하고 발갛게 변한 독신의 얼굴이 염려되기도 하여, 가샤도쿠로는 본전의 주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독신님, 괜찮은가?"
"……아닌 것 같아요"
독신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조용했지만 살짝 떨고 있었다. 손을 입술에 얹었다가 내리며 눈을 연신 깜빡거리는 것이 퍽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뱃속에 이어 가슴 속까지 꽉 차오르는 기분이라고 가샤도쿠로는 생각했다. 저절로 호선을 그리는 입가를 굳이 고치지 않으며 그는 다시 물었다.
"한 번 더, 맛보게 해 줘."
"저는 먹거나 삼킬 수 없는데, 도요?"
독신의 말에 가샤도쿠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독신의 입술을 맛보는 것으로 배가 채워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러고 있으면 그의 등을 줄곧 짓누르며 허기를 떠밀어오는 원념들이 옅어지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둥실 떠오르는 듯한 기분이 지고의 미식을 입에 넣었을 때처럼 강하게 차올랐다. 그런 기분들을 가능한 한 잔뜩 맛보고 싶다고 가샤도쿠로는 강하게 바랐다.
영걸은 독신과 더욱 거리를 좁혔다. 입술이 맞물리고 또 한 번 혀의 감촉을 느꼈을 때, 한 박자 늦게 그의 머릿속에 어떤 사실이 떠올랐다.
'이거, 입맞춤이라는 거였던가.'
애정의 표시로 서로의 입을 맞추는 행위. 그것을 지금 가샤도쿠로는 독신과 주고받고 있었다.
그 사실을 한참 늦게 깨달은 영걸은 잠시 멈춰서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그리고 곧 다시 맛보기를 재개했다. 속속들이 상대의 입 속을 탐하는 깊은 입맞춤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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