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와라에 대하여 :: 2. 요시와라의 구성원


※ 1편(요시와라의 역사, 구조, 하루): http://rayelwr.tistory.com/11

※ 2편(요시와라의 구성원): http://rayelwr.tistory.com/12

※ 3편(유녀의 삶과 등급): http://rayelwr.tistory.com/13

※ 4편(오이란): http://rayelwr.tistory.com/14



[유녀(遊女)에 대하여]

근세 일본에서는 성을 파는 여성을 '유녀(遊女)', '유군(遊君)', '창기(娼技)' 등으로 불렀습니다. '오이란(花魁)'은 본디 상급 유녀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후대로 갈수록 유녀 전반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요시와라의 유녀의 수는 전성기 기준으로 약 3천 명에 달했습니다. 요시와라 유녀들의 명칭, 이름, 격식, 화대 등을 정리한 안내 책자 <요시와라 사이켄(吉原細見, '요시와라 호소미'라고도 읽습니다)>에 따르면, 1658년에는 2108명의 유녀가, 1775년에는 총 2021명의 유녀가 요시와라에 거주했습니다.


유녀 및 업소를 광고하거나 유녀를 살 만한 돈까지는 없는 이들에게 판매할 목적의 우키요에도 유행했습니다.


유녀와 비슷하나 다른 개념으로는 '유나', '메시모리온나', '요타카' 등이 있었으나 이들은 요시와라 소속이 아닌 사창(私娼)으로, 보다 급이 낮게 취급되었습니다.

1) 유나(湯女): 본디 목욕탕에서 목욕을 거드는 여성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이후 목욕탕에서 성을 파는 역할로 변질되었습니다.

2) 메시모리온나(飯盛女): 에도 시대의 여관인 하타고(旅籠)에서 성을 파는 여성입니다.

3) 요타카(夜鷹): 길거리의 매춘부.  교토에서는 츠치기미(辻君), 오사카에서는 소우카(惣嫁)라 불렀습니다. 나이 들어 매춘에 뛰어든 여성, 혹은 성병에 걸려 쫓겨난 여성이 주로 요타카가 되었으며, 돗자리를 갖고 다니다 길거리에서 손님을 받았습니다.


※ 유녀의 등급, 삶, 상급 유녀인 오이란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편을 참조.




[손님에 대하여]

유녀를 찾는 손님은 '유객(遊客)'이라 불렸습니다. 특정 유녀(특히 오이란)를 3번 이상 찾은 손님은 해당 유녀의 '나지미(馴染み, 단골)' 내지 '단나(旦那, 남편)'라 불렸습니다. ('단나'라는 호칭은 오이란 및 타유의 단골 한정으로만 쓰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요시와라 내부에서는 신분의 고하를 따지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고, 높은 신분의 상징인 가마와 패도(칼을 차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요시와라에서는 화대를 낼 수 있는 재력, 그리고 품격과 교양을 일컫는 에도식 단어인 '이키(粋)'가 곧 손님의 격을 결정했습니다.


초기의 요시와라의 주요 고객층은 다이묘를 비롯한 무사 계급 및 부호였지만, 후대로 갈수록 서민층이 주요 고객이 되었습니다.


유객이 유녀와 사랑에 빠지는 일도 간혹 일어났는데, 이 때 유객이 유녀를 데려가는 방법은 다음 3가지가 있었습니다.

1) 유녀가 정식으로 계약이 해지되는 28세까지 기다렸다가 데려간다: 유녀의 평균 수명은 23세 전후로 매우 짧았기에 어려웠습니다.

2) 낙적료(유녀를 유녀 신분에서 빼내기 위해 가게에 지불하는 비용)를 지불하고 데려간다: 낙적료는 일반적으로 매우 비싸, 부자나 무사 계급이 아닌 이상 어려웠습니다.

3) 야반도주: 시로베에나 경호원에게 잡힐 가능성이 매우 높았으며, 잡힐 경우 유객은 경종을 울리는 의미에서 살해당했습니다.


유객이 장기 투숙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요시와라의 기타 구성원]

1. 게이샤(芸者)

유녀와 혼동되어 쓰이나 이들의 역할은 엄연히 달랐습니다. 게이샤는 춤과 노래를 담당하는 역할로 몸을 파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으며, 오비를 앞으로 매지 못하게 한 것도 그 조치의 일환이었습니다.

원칙상으로는 요시와라의 게이샤는 차림새가 오이란보다 소박해야 했으며, 오비를 앞으로 맬 수 없었습니다. (화려한 외관의 게이샤는 교토의 견습 게이샤인 '마이코(舞妓)'입니다)

본디 게이샤는 남성의 역할이었으나 18세기 이후 인기가 떨어진 유녀들이 게이샤가 되면서 게이샤의 역할이 여성에게 넘어갔다는 설도 있습니다.


2. 반토신조(番頭新造)

유녀들의 중간 관리자로, 손님들과 유녀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28세를 넘겨 유녀 일을 그만둔 여성이 주로 담당했습니다.


3. 야리테/츠카이테(遣手)

유곽의 총 감독입니다. 30세 이상, 보통 40세 전후의 유녀 출신 여성이 맡았습니다.

손님과 교섭하여 유녀의 가격, 연회에 들어갈 비용, 유녀를 데리고 있을 시간 등을 조정하였습니다. 반토신조의 역할을 야리테가 하기도 했습니다. 유녀의 지명권은 손님에게 있었지만 야리테가 잘 교섭하여 다른 유녀에게 연결해 주기도 했습니다.


4. 보우하치(忘八)

유곽의 주인. 유교의 8개 덕목인 인, 의, 예, 지, 신, 효, 제, 충을 잊은 자들이라 하여 이렇게 불렸습니다.


5. (番)

종업원에 해당하는 젊은 남성. 크게 미세반, 니카이반, 불침번, 조리반, 후로반으로 나뉘었습니다.

1) 미세반(見世番): 잡무 담당. 오이란의 수행원으로서 행진 때 등롱이나 양산을 받쳐들고 따르는 역할도 맡았습니다.

2) 니카이반(二階番): 유녀가 손님을 맞는 건물 2층의 정리 담당. 손님이나 오이란이 시키는 잡무를 수행하는 역할도 맡았습니다

3) 불침번(不寝番): 순찰꾼. 불조심 및 치안 유지를 위해 거리를 순찰하였으며, 요시와라 내에서 충돌이 생길 경우 중재 역할도 했습니다.

4) 조리반(料理番): 손님, 종업원, 유녀의 식사를 준비하는 담당.

5) 후로반(風呂番): 목욕 준비 및 목욕탕 청소 담당.


6. 카케마와시(掛廻)/모노카키(物書)

오늘날의 접수 및 서기에 해당하는 역할로, 젊은 남성이 맡았습니다.

1) 카케마와시(掛廻): 청구서를 돌리고 돈을 수금하는 역할. 단골손님 및 상류층 손님(부호 및 무사)를 상대했습니다.

2) 모노카키(物書): 서기. 증서 및 장부를 작성하고 손님의 이름을 적는 등의 일을 담당했습니다.


7. 츄로(中郎)

반과 비슷하나 좀 더 급이 낮은 잡역부. 가게(특히 1층)의 청소나 요시와라 내 쓰레기의 청소를 담당하는 남성.

반, 카케마와시, 모노카키, 츄로는 요시와라 태생의 젊은 남성(주로 유녀의 자식)이 맡았습니다.


8. 시로베에(四郎兵衛)

요시와라 내의 치안을 담당하는 자경단 내지 그 일원. 요시와라 대문 오른편에 이들의 집회소가 있었으며, 미늘창(矛)을 들고 다녔습니다. 이들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유녀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도망친 유녀를 붙잡고 함께 도망친 남성을 죽이는 일도 대개 시로베에들이 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