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사서(이름 및 독자설정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층에 있는 미요시의 방에서는 바깥 정원이 잘 보였다. 아스라히 밝아오는 새벽에 드러나기 시작한 우거진 덤불은 다가온 가을 때문에 생기는 다소 잃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푹신해 보였다. 위에서 무언가 떨어져도 잘 받아낼 것 같은 그 어둑한 친근함은, 방 안의 환한 궁지와 너무도 대비되어 보였다. 적어도 미요시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저기, 지금 어떤 기분?"
궁지가 그에게 다시금 말을 걸어왔다. 미요시는 짧은 검은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시선을 창문에서 방 안으로 돌렸다. 방 안으로 들이닥쳐온 침입자는 당당하게 의자까지 빼서 앉은 채, 그를 특유의 졸려 보이는 눈으로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미요시는 이 눈이 다른 문호들을 향하는 것을 종종 본 적이 있었다. 집요할 정도로 상대에게 달라붙어 질문하는 그 모습을 재미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정작 자신이 그 당사자가 되어보니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언뜻 힘 없어 보이는 두 눈이 지금은 어떤 화살촉이나 총탄보다도 아프게 자신을 찔러오고 있었던 것이다.
한숨을 쉬는 미요시를 향해, 다시금 재촉하는 목소리가 날아왔다. 미요시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시간을 아무리 끌어도, 아무리 침묵으로 대답해도, 시마자키는 특유의 취재벽을 관철해 계속 달려들어 오겠지. 땅이 꺼지도록 재차 숨을 내쉬는 미요시의 입에서 말이 기어나왔다.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기분임다......."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기분......"
멍한 목소리로 자신의 말을 되뇌는 취재자의 목소리에, 미요시의 열 손가락이 그 자신의 머리카락을 더욱 세게 파고들었다. 끄응, 하고 고뇌하는 목소리가 사각사각 수첩에 뭔가를 써내려가는 소리 사이로 흘렀다.
하필 시마자키에게 들키다니. 오다 다음으로 걸리고 싶지 않은 상대에게 걸렸다는 사실에 미요시의 머리가 핑핑 돌았다. 적어도 전생한 후의 그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고, 도서관에서 사이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럴 때 그의 취재벽은, 악의가 없기는 해도, 아니 악의가 없기에 더더욱 성가셨다. 그 자신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성질은 존경할 만하지만, 이라고 미요시는 눈을 꼭 감고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저기, 내 말 들려? 지금 묻고 있어."
시마자키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무슨 질문이었건 간에 제발 자신이 짐작하는 그것이 아니기를 빌며, 미요시는 대답했다.
"죄송함다, 못 들었슴다."
"그럼 다시 말할게. 사서 씨의 어디가 좋은 거야? 응?"
왜 맞지 않았으면 하는 짐작은 항상 맞는 것인가. 미요시는 고개를 푹 수그리며 다시금 신음소리를 냈다.
새벽이라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은 실수였다. 미요시는 절실하게 그 사실을 실감했다.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도 잊고, 그는 방 안에서 몇 번이고 사랑의 고백을 연습했던 것이다. 시적인 말을 했다가 이건 아니라고 소리지르며 다른 말을 찾고, 저돌적인 말을 했다가 이것 역시 아니라고 제 뺨을 짝짝 때리며 다른 말을 찾기를 반복했던 미요시의 목소리는 복도까지 새어나왔다. 그것을, 하필 일찍 깨어 복도를 걷고 있던 시마자키가 들어버렸던 것이다. 그는 곧바로 늘 품속에 갖고 다니는 수첩을 들고 미요시의 방에 들이닥쳤고, 지금까지 취재라는 이름의 질문 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이건 도망칠 틈이 없었다.
"이런 거, 들어도 취재거리는 안 되잖슴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미요시는 말을 던졌다. (미요시 본인의 생각에 기초하자면) 아직도 많이 부족한 문인의 짝사랑 따위, 기사 소재는커녕 삼류 소설의 소재로도 주목받지 못할 텐데. 상대도 그렇게 생각해주기를 바라며 미요시는 시마자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시마자키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일이야. 언제 소재로 쓸 수 있을지 몰라."
"소재로 쓰는 건 관둬 줬음 함다....... 솔직히 별로 내키지 않슴다."
"응응. 그래서, 사서 씨의 어디가 좋은 거야?"
정말 알아듣기는 한 것일까. 아마 아니겠지. 미요시는 소리내어 크게 한숨을 내쉬며, 줄곧 숙이고 있던 등을 뒤로 쭉 펴서 고개를 천장으로 향하게 했다. 밝혀 놓은 천장 등이 유달리 눈부셨다. 눈이 부셔 가늘게 뜬 눈 사이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코쿠라 쇼엔, 이 도서관의 특무사서. 그 이름을 떠올리자 그의 회색 눈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책을 정리할 때, 서류를 작업할 때, 그리고 대외적인 직업인 화가로서의 일을 할 때면 그 두 눈은 진지함을 품어 한층 색이 짙어지고는 했다. 그 눈이 보기 좋다는 생각 정도는, 가끔 그 눈을 무언가에 빗대어 시로 써 보고 싶다는 생각 정도는 한 적이 있었다.
다음으로 떠오른 것은 목소리였다. 맨 처음 전생해서 만났을 때, 「하기와라 씨라면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며 쓴웃음을 짓던 목소리는 낭랑하니 중성적이어서, 남성인지 여성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 애매모호함이 되려 비밀에 감싸인 듯한 느낌을 주어 시적 영감을 준다고 생각했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금 미요시의 머릿속을 그가 꽉 채우고 있는 이유는.
"...쇼엔 씨는, 힘이 넘침다."
"체력 얘기?"
"그것도 있슴다만."
미요시는 힘없게나마 처음으로 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쇼엔의 체력은 상당한 편이었다. 그 요시카와의 체력 단련에 끌려나가서도 숨은 헐떡일지언정 낙오된 적은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미요시가 떠올린 힘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서 일을 하는 모습도 보기 좋슴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보기 좋슴다. 본인은 늘 이런 그림으로는 부족하다며 늘 고민에 빠지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슴다. 그 넘치는 의지가, 저는 마음에 듬다."
시마자키는 잠자코 수첩에 말을 받아적어 내려갔다. 미요시는 천장을 쳐다보던 고개를 내렸다. 막상 얘기하고 나니 속이 후련한 생각도 들어, 그는 표정을 아까보다는 누그러뜨렸다. 물론 이 말이 어디에 어떻게 인용되거나 사용될지 몰라 불안해져 다시금 미간을 찌푸리기는 했지만.
"의지... 힘.... 과연. 동족애호라는 거네."
그런 말이, 취재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미요시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동족이라니,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궁금해진 그는 처음으로 시마자키를 향해 묻는 말을 던지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미요시 씨, 방에 계십니까?"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보다 거칠게 일어나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주 들었던 중성적인 목소리에, 시마자키는 차분히, 미요시는 깜짝 놀라 문 쪽을 바라보았다. 문틈으로 엿보이는 사람 그림자에 미요시의 얼굴이 화악 붉어졌다.
"무, 무슨 일임까?!"
그의 목소리를 들어오라는 허가로 받아들였는지, 문이 활짝 열렸다. 예상대로, 사서 코쿠라 쇼엔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방으로 들어와 문에 한쪽 팔을 기대고 선 쇼엔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아까 미요시가 떠올렸던 회색 눈은 퀭하니 쑥 들어간 눈두덩 속에서 간신히 탁하게 빛나고 있었고, 얼굴 피부도 푸석푸석한 것이 훤히 보였다. 머리는 전반적으로는 착 가라앉아 있었지만 군데군데 집어뜯은 것처럼 일어나 있어, 몇 번인가 손으로 쥐어뜯은 듯한 흔적이 선명했다. 옷은 막 갈아입은 것처럼 그나마 깔끔했지만, 잘 보면 평소의 조끼와 재킷, 넥타이가 전부 실종되어 셔츠와 바지뿐이었다.
쇼엔은 그 피곤이 역력한 눈으로 방 안을 살폈다. 수첩의 새 페이지를 넘기며 자신을 응시하는 시마자키와 얼굴이 새빨개진 채 눈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 미요시를 번갈아본 그는 이내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미안한 듯 말을 꺼냈다.
"아, 얘기 중이셨습니까?"
"......이제 일어나려던 참."
그렇게 말하며 시마자키가 일어났다. 미요시는 속으로 안도했다. 시마자키가 방금 전까지의 이야기를 그에게 하면 어쩌나 가슴을 졸였던 것이다.
쇼엔은 방문에서 팔을 떼고 방 안으로 한 걸음 더 내딛었다. 그와 스쳐 지나가려던 시마자키가 문득 멈춰서 쇼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밤, 샌 거야?"
"네. 시마자키 씨는 취재 중이셨습니까?"
"응. ...저기, 있잖아."
"죄송합니다만, 제 취재는 아침식사 이후로 미뤄 주시겠습니까? 지금은 졸려 쓰러질 지경입니다."
시마자키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 쇼엔은 손을 내저으며 반은 미안하다는 듯, 반은 피곤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시마자키는 수첩에 뭔가를 다시 끼적이더니, 이내 수첩을 덮고 그대로 떠나갔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바람처럼 떠나가는구나 하고 미요시는 멍하니 다른 생각을 했다.
"시마자키 씨는 오늘도 열심이시군요."
졸려 미치겠다는 얼굴을 한 채, 쇼엔은 쓴웃음을 지으며 방금 전까지 손님이 앉아있던 의자의 등받이를 짚었다. 방문 쪽을 잠시 바라보던 그가 미요시를 돌아보며 쓴웃음을 더욱 짙게 지어 보였다.
미요시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평소 이상으로 탁한 눈빛이며, 마치 숙취에 시달린 듯한 후줄근한 모습은 매력적인 모습과는 솔직히 거리가 꽤 있었다. 그럼에도 그 모습이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은 분명 자신이 뭔가에 미친 탓이다. 치밀어오르는 감정에 미요시는 소리라도 지르고 싶어져 제 이마를 탁탁 쳤다. 그 제스처에 쇼엔이 놀라 등을 곧추세웠다.
"미요시 씨?"
"아, 아무것도 아님다. 그보다 쇼엔 씨, 밤 샌 검까?"
"네. 주문에 맞춰야 했기에.... 겨우 완성해서, 지금 말리는 중입니다."
그 입에서 나온 한숨은 안도하는 것일까, 아쉬워하는 것일까. 아마 양쪽 다 섞였을 게 분명한 그 한숨을 미요시는 여전히 붉어진 얼굴로 들었다. 쇼엔은 미요시의 얼굴빛은 눈치채지 못한 듯 계속 말을 이었다.
"사서 일도 있으니 현실적으로는 여기까지입니다만...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더 붙잡고 있어야 했는데, 저도 아직 부족합니다."
"그래도 대단함다. 사서 일만으로도 바쁠 텐데 잘 해내고 있지 않슴까."
"...감사합니다, 미요시 씨."
쇼엔의 웃음에는 씁쓰레한 맛이 섞여 있었다. 미요시는 자신의 말이 겉치레로 들린 게 아닐까 속으로 걱정했다. 자신이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며 방금 한 말은 절대로 빈말이 아님을 최대한 어필하려, 그는 그 나름대로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알아들은 건지 못 알아들은 건지, 쇼엔은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입이 잠시 혼잣말을 중얼거린 후, 이내 미요시를 향해 다시 벌어졌다.
"용건 말입니다만... 잠시 침대를 빌려도 되겠습니까? 아침 식사를 하기 전까지 한두 시간 정도면 됩니다."
"엑!? 치, 침대, 말임까?!"
미요시는 펄쩍 뛰어오를 뻔했다. 방금 전까지 고백을 연습하던 상대가, 자신의 방에서 자고 가겠다고 말을 꺼내온 것이었다. 놀라지 않는 것이 무리리라. 그는 말을 더듬더듬해 가며 간신히 질문을 되돌렸다.
"무, 무슨 일임까, 가, 갑자기?"
"방까지 올라가기가 너무 졸려서.... 제 방은 3층에 있지 않습니까. 이대로는 올라가다 계단에서 잘 거 같습니다."
"그 정도, 임까?"
"이틀을 밤을 샜더니... 혹시 어렵다면 다른 방을......."
"괘, 괜찮슴다! 써도 됨다, 괜찮슴다."
용수철이 튕겨올라가듯 나온 목소리에 누구보다 미요시 자신이 놀랐다. 그가 있는 1층에는 다른 문호들의 방도 있었다. 그 중 몇은 이미 일어났겠지. 그들의 방으로 보내는 것은 본능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행히 쇼엔은 미요시의 어조를 이상히 여기지 않았다. 그는 그저 고맙다고 이야기한 후, 거의 쓰러지듯이 미요시의 침대에 푹 누웠다. 매트리스가 그렇게까지 푹신한 편은 아닌데 괜찮을까, 아직 이불을 가을 것으로 바꾸기 전인데 괜찮을까, 속으로 안절부절 못하던 미요시에게 쇼엔이 문득 빙그레 웃어 ㅂ였다.
"미요시 씨의 방은 편안하군요."
"그렇, 슴까? 다른 방과 비교하면 단촐한 편이라고 생각함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실례되는 행동인 줄 알면서도, 자꾸 와 버리게 되는군요."
그렇게 말하는 쇼엔의 발치에서 툭 신발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침대 위로 완전히 몸을 올려 이불을 덮으며, 쇼엔은 벌써부터 졸음에 반쯤 침식된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남겼다.
"아침 식사 때는 깨워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그는 눈을 감았다. 얼굴이 아까 전 이상으로 달아올라 폭발 직전인 미요시를 남겨둔 채였다.
한참 동안의 정적 후, 미요시는 제 양 뺨을 양손으로 퍽퍽 두들겼다. 이대로는 안 된다, 시에라도 집중해서 이 싱숭생숭한 마음을 날려버리자. 그런 생각에 그는 의자를 억지로 잡아 책상으로 되돌아갔다. 행여나 의자 끌리는 소리가 쇼엔을 깨울까 봐 들어올려 옮기자, 의자의 묵직한 무게가 다소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었다.
책상에 앉아, 미요시는 공책을 펼치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의 머릿속에 여러가지가 아직도 맴돌고 있었다. 연습하고 있던 사서를 향한 고백의 말이, 시마자키의 취재가, 지금 곁에서 자고 있는 쇼엔의 얼굴이 차례차례로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하아... 누굴 탓하겠슴까."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미요시는 공책에 시선을 박고 시의 습작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연모할 연 자를 자신도 모르게 공책 한켠에 썼다가 줄을 그어 지워버리는 손이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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