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독신(독자설정 포함)이 등장합니다
※ 영걸(다이다라봇치)×독신 성향
오늘은 무슨 일을 해야 하더라.
잠에서 깨어난 독신이 제일 먼저 떠올린 생각이었다. 오늘이 며칠인지, 어째서 잠에서 깼는지, 그런 것들을 제치고 맨 먼저 든 생각이 오늘 하루 주어진 임무가 무엇인지라는 사실에 독신은 반쯤 감긴 눈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야오로즈계의 명운을 짊어진 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자신을 달래며 독신은 제 이마를 오른손 손등으로 눌렀다. 뺨이 푸석푸석한 탓일까, 눈가에서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독신은 눈꺼풀을 닫고 그 위를 꾹 눌러 눈물을 도로 삼켰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 표정에 울음기는 남아있지 않았다. 새해 첫날부터 얼굴에 눈물자국이 남으면 불길하기도 하고 다른 영걸들에게 걱정을 사리란 생각에서였다. 다른 좋은 것을 생각하자며 독신은 자신을 다독였다. 이를테면 방금 전까지 꾸었던 꿈이라던가.
'후지산이 나오는 꿈은 길몽이라고 그랬는데. 그러고 보니 다이다라봇치는 후지산에 걸터앉을 수 있을 정도로 크다던데, 거인 모습일 때도 그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그래도 미끄럼틀 정도로는 쓸 수 있을지도 몰라.'
말꼬리를 잡아 잇는 두서없는 생각이 독신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후지산 꼭대기에서부터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오는 다이다라봇치를 잠시 떠올린 독신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본인에게 이야기하면 자신을 놀리는 거냐며 토라질 테니 절대 얘기할 수는 없지만 한 번 보고는 싶은 모습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독신은 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심되는 향기와 온기가 줄곧 곁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곁에는 방금 전까지 독신이 생각하던 이가 잠들어 있었다. 아름다운 외관과 큰 키를 지닌 요족의 영걸 다이다라봇치가 독신 쪽으로 몸을 웅크리듯 얼굴을 향한 채 눈을 닫고 있었다. 평소 걸치고 다니는 낙낙한 의상보다는 가벼운 잠옷을 걸친 모습은 별다른 특이한 점이 없는데도 어딘가 어색했는데, 독신은 그의 모습을 한참 응시한 후에야 겨우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추운 겨울인데도 이불 하나 없이 자고 있었던 것이다. 본래는 그를 덮고 있었을 이불이 꾸깃 반으로 접혀 자신의 몸을 이중으로 덮고 있는 것을 본 독신은 피식 웃어버렸다. 다이다라봇치의 잠버릇은 막 잡아올린 참다랑어가 발광하는 것 같다고 잇신타스케가 투덜거렸던 이야기가 아른아른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도 잘 때 좀 부딪혔을까?'
그런 것치고는 몸에 딱히 욱신거리는 곳은 없었다. 잠결에도 다이다라봇치가 어지간히 참았거나, 어젯밤에 힘을 있는대로 쏟아붓고 잠시나마 얌전해진 것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머리맡의 등불을 밝히며, 새해 첫 새벽부터 못 하는 생각이 없다고 독신은 자신을 꼬집었다.
어스름한 등불이 켜지자 다이다라봇치의 얼굴이 더욱 확실히 드러났다. 다행히 빛이 세지는 않아 그가 눈을 뜨지는 않았다. 오묘한 푸른빛 머리카락이 따뜻한 등불빛을 입어 저녁놀 지는 바다 같은 색으로 흔들렸다. 단정히 닫힌 눈과 긴 속눈썹, 살짝 벌어진 입을 비롯한 얼굴은 험한 잠버릇과는 도무지 이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조형을 자랑했다.
독신은 조심스레 뻗은 손을 다이다라봇치의 뺨에 살짝 얹었다. 힘찬 붉은 선으로 그려진 문양을 덮고 머리칼과 볼을 쓸어주는 손가락이 조심스러웠다. 그러고 보면 다이다라봇치는 항상 관을 쓰고 있어, 축제 때 타이코(太鼓)를 치려 옷을 갈아입었을 때를 빼면 이런 모습은 그다지 볼 일이 없었다. 관을 벗은 그는 생각보다 선이 고와 보였다. 그럼에도 옷 틈새로 보이는 몸은 변함없이 탄탄하고 골격이 도드라지니 또 신기할 노릇이었다. 무언가를 만드는 요괴이며 동시에 부수는 요괴인 그에겐 어울리는 면모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독신은 늘어진 영걸의 머리카락 끝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후후."
쑥쓰러움에 조금 소리내 웃은 후, 독신은 그에게서 손을 떼었다. 그 잘생긴 얼굴을 계속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이대로는 그를 깨울 것 같았다. 무엇보다 오늘은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새해 첫날이라고 악령들이 쉬는 것도 아니었고, 첫날이니만큼 본전의 영걸들과 인사도 해야 했다. 날이 밝고 조금 후면 멀리 원정을 나갔던 텐구 영걸들도 돌아올 테고, 새해를 맞이하여 이것저것 하고 싶다는 영걸들의 요청서도 아직 쌓여 있었다. 오후에는 후구루마요히의 공부에 어울려주겠다는 약속도 했었고, 에도 등지에 보낼 편지도 있었다. 지금부터 일어나서 열심히 움직이지 않으면 시간에 맞출 수 없을 터였다.
본전의 주인은 이중으로 자신을 덮은 푹신한 이불을 곁에서 자는 영걸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일단은 일어나서 이 흐트러진 옷부터 갈아입을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몸을 들려던 순간.
"어디 가려고?"
허리를 껴안는 굳센 손길에 독신은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한 것을 간신히 손으로 짚고, 독신은 목소리가 들린 쪽을 보았다.
언제부터인가 다이다라봇치가 눈을 뜨고 있었다. 눈이 반쯤 감긴 부루퉁한 표정으로 독신 쪽을 보고 있었는데, 그것이 졸려서 그런 것인지 다른 이유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독신과 눈이 마주치자 그는 볼을 조금 부풀리며 팔에 더욱 힘을 꾸욱 주었다. 조금 아프다고 생각하며 독신이 나무라듯 입을 열었다.
"가야죠. 새해 첫날에 할 일이 많아요."
"봇치쨩, 일 많은 건 평소에도 마찬가지잖아."
다이다라봇치의 목소리는 아직 완전히 잠에서 깨지 않아 평소보다 착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두 팔은 잠에서 완전히 깨 있었다. 독신이 일어나기는커녕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게 꾹 껴안은 채, 그는 팔을 좀체 풀어주지 않았다. 그 모습을 귀엽다고 생각하면서도 독신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가야 하는 거에요. 그보다, 내가 깨웠어요?"
"아, 뭐…… 아니, 응. 봇치쨩이 깨웠어. 그러니까 내가 다시 잠들 때까지, 책임지고 여기 있으라고."
"나, 일해야 하는데요……."
고갯짓으로 머리맡 한참 위쪽에 있는 책상을 가리치며 독신이 중얼거렸다. 그 곁에는 처리해야 할 서류들이 쌓여있을 터였다. 보통은 일하는 곳에 쌓아두지만 밤늦게 방에 가져와서 해야 할 것들도 있어 가볍게(?) 들고 온 것이 적어도 두루마리로 네댓 개는 되었다.
그러나 다이다라봇치는 그 쪽을 보지 않았다. 한쪽 팔은 잠깐 허리에서 풀어주나 싶더니, 갑자기 그 팔을 들어 독신의 팔을 홱 잡아당겼다. 옆으로 구르듯 고꾸라진 독신의 몸을 제 품에 끌어당긴 다이다라봇치가 입을 비죽 내밀고 투덜거렸다.
"적당히 하고 새해 정도는 쉬라니까, 바보. 그러다가 쓰러지면 누가 간호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밉살스럽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목소리는 얄밉지 못했다. 일찍이 수많은 산과 호수를 만든 그 두 손으로 독신을 제 품속에 밀어넣곤 온몸으로 부비적거리며, 다이다라봇치가 토라져 속삭였다.
"내가 한다고."
그러면서 그는 몸을 빙글 굴렸다. 방금 전 독신이 자신에게 덮어준 이불로 그 자신과 독신을 한데 감싼 그는, 이불 속에서 독신에게 보비작보비작 몸을 맞대었다. 덩치도 크고 외관도 성숙한 미청년이건만, 이럴 때는 행동이 완전히 어린아이다. 독신의 머리칼에 제 뺨을 비비다 이래도 갈 거냐는 듯 시선을 향해오는 다이다라봇치를 보며, 독신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외로움 타는 걸까, 다이다라봇치."
"뭐?"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고개를 저으며 독신은 한숨을 쉬었다. 다이다라봇치는 덩치도 독신보다 크고 힘도 한참 셌다. 그가 이렇게 작정하고 달라붙으면 스스로는 떼어낼 재간이 없다는 것을, 독신은 이미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렇게까지 솔직해져 안겨 붙는 그를 뿌리칠 정도로 독신은 모질지 못했다. 다른 이들이나 카 군이 와서 들키게 되면 문제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럼 해가 뜨기 전까지만 이러고 있기에요."
다이다라봇치의 팔을 살짝 꼬집듯 잡은 후, 독신은 자신을 껴안은 영걸의 품에 제 얼굴을 묻었다. 다이다라봇치가 무언가 중얼중얼 이야기하다, 이내 독신의 몸을 꼭 껴안고는 한쪽 다리를 올렸다. 그 다리가 독신의 하체에 척 얹혀 몸을 얽듯 감겨왔다.
일어나자마자 오늘 할 일부터 생각해야 하는 팍팍한 감성에서 멀어져, 좋아하는 이와 이렇게 몸을 포개고 있다. 그것은 일어나자마자 울 뻔했던 독신의 마음을 촉촉히 적셔 달래주었다. 다만 다이다라봇치가 너무 세게 껴안고 조이는 탓에 숨은 좀 막혔다. 지금은 그것만이 독신이 품은 유일한 불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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