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사니와(이름 및 독자설정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즈키 나가미츠는 부드러운 말투와는 달리 자기 자신에게는 생각보다 엄격한 도검남사였다.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밤에는 자신이 그 날 할 일을 다하였는가를 확인한 후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자신이 만든 단 것을 곧잘 돌리고 사니와에게도 가끔은 숨을 돌려도 좋다고 서글서글 웃지만 자신에게는 절대로 무르지 않은 남사, 그것이 아즈키였다. 그렇기에 그런 그가 혼마루의 하루를 알리는 아침 조회에서 꾸벅꾸벅 조는 것은 본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오늘 오사카 성에 출진할 이들은……."
죽 늘어앉은 남사들을 보며 이름을 읊으려던 사니와 키리히메가 맨 앞줄 제일 오른쪽을 보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 시선 끝에서,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키 큰 도검남사가 앉은 채로 앞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얕은잠에 빠져 있었다. 사니와와 제일 가까운 근시석에 앉아있던 다이한냐 나가미츠가 제 형제격인 남사를 흘끗 보며 눈을 가늘게 떴고, 아즈키 바로 옆에 앉은 켄신 카게미츠가 황급히 아즈키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아즈키는 팔이 흔들려도 당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속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코를 골거나 머리로 방아를 찧어대는 등 요란하게 자는 건 아니었지만 워낙 키가 큰 탓에 그 졸아대는 모습이 두드러져, 조금 멀리 앉은 다른 남사들까지 그쪽으로 제각기 시선을 보내올 지경이었다.
"…이어서 밭일 당번은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와… 아즈키 나가미츠."
키리히메가 잠시 뜸을 들인 후 아즈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제 이름이 불리자 고개를 들어 끄덕인 쇼쿠다이키리와는 달리, 아즈키는 여전히 눈을 뜨는 기색조차 없었다. 평소라면 맡은 바 임무를 다하겠다는 부드러운 웃음으로 성실히 응할 그가 그러고 있으니, 더더욱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아즈키 뒤에 앉아있던 시즈카가타가 그 등을 가볍게 두드렸으나, 아즈키의 상체가 더욱 앞으로 기울어질 뿐이었다(그러고도 엎어지지 않은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 모습을 몇 초 바라본 키리히메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아즈키가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으니 지명을 변경합니다. 밭일 당번은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와 하쿠산 요시미츠."
흰 여우를 어깨에 태운 무기질적인 인상의 도검남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선이 잠시 자신으로부터 서너 칸 떨어진 쪽에서 여전히 잠에 빠진 도검남사를 향했다가 이내 감겼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기어나오려 했다. 그러자 근시인 다이한냐가 헛기침을 서너 번 하여 소란을 가라앉혔고, 키리히메는 계속 그 날의 전달사항을 쭉 읊어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즈키는 전혀 일어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상으로 조회를 마칩니다. 다들 오늘 하루도 잘 부탁해."
혼마루의 주인이 두루마리를 내려놓으며 조회의 끝을 고했다. 여기저기서 남사들이 기지개를 켜며, 혹은 옆에 앉은 이들과 무언가를 이야기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아즈키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평소라면 빠르게 일어나 새로운 단 것을 만들어야겠다며, 혹은 달리 도울 것이 없는지 주변을 돌아봐야겠다며 소매를 걷어붙일 남사가 그러고 있으니, 여기저기서 그를 향해 시선이 꽂힐 수밖에 없었다. 보통 이 정도로 보면 눈이 뜨일 만도 한데 대단하다고 코류 카게미츠가 어이없어하는 동안, 단상에서 몸을 일으킨 키리히메가 그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아즈키, 아직도 안 일어났어?"
"주인. 아아, 눈을 뜰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시즈카가타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추며(주인을 대할 때의 버릇이었다) 대답했다. 키리히메는 살짝 무릎을 굽혀 아즈키의 얼굴을 들여다보려 하면서 걱정스레 눈꼬리를 떨구었다. 열릴 줄 모르고 굳게 닫힌 두 눈꺼풀, 주변은 알지 못하고 평온히 펴진 눈썹을 시선으로 훑은 사니와가 무릎을 도로 펴면서 중얼거렸다.
"요즘 피곤한 걸까. 혹시 몸이 안 좋은 건……."
"딱히 그런 기색은 없었어. 애초에 우리는 인간 같은 병엔 걸리질 않고, 피곤할 정도로 힘을 쓴 일도 없고."
"가끔 생각에 잠기거나 할 때는 있지 않았던가요?"
"아즈키는 항상 그렇잖아?"
이쪽으로 다가온 코테기리 고우의 말까지 가볍게 받으며 코류가 어깨를 으쓱했다. 둘 다 아즈키와 같은 방을 쓰는 남사들이었다. 키리히메는 아즈키 곁에 앉은 단도에게 시선을 주었고, 그 역시 불안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재차 무겁게 숨을 내쉰 키리히메는 아즈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자연스게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어깨에 한손을 얹었다.
"아즈키? 아즈키, 일어나. 조회 끝났어."
아즈키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미간에 가볍게 힘을 주며, 키리히메는 아까보다 조금 세게 아즈키의 어깨를 흔들었다.
"아즈키! 일어나, 아즈키. 피곤하면 방에 돌아가서 자는 게 좋겠어."
"……음……?"
겨우 반응이 돌아왔다. 앞으로 불안정하게 숙여져 있던 고개가 도로 펴지고, 아즈키가 서서하 눈을 떴다. 그러나 완전히 떠지지는 못하고 반쯤 게슴츠레하게 뜨인 지점에서 멈추었다. 잠기운이 여전히 두텁게 덮인 채, 그가 멍한 눈빛으로 위를 응시했다.
"음… 주인……?"
"응. 아즈키, 정말 괜찮아? 혹시 어디 좋지 않은 건 아니야?"
"아아……."
아즈키는 애매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 그것을 대답이라 부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긍정하는 것으로도, 그저 탄식하는 것으로도 들리는 맥없는 목소리에 키리히메가 아즈키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일렀다.
"오늘은 아무 일도 없으니까 방에 가서 푹 쉬어. 혹시 몸에 이상이 있다면 진단을……."
"……그런가, 이것도, 꿈이구나."
전혀 맥락에 맞지 않는 작은 혼잣말이 떨어졌다. 바로 곁에 있는 한두 명만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린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어, 키리히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때문에 아즈키가 손을 들어 뒤통수를 감싸왔을 때, 그리고 그대로 손에 힘을 주어 얼굴을 끌어당겼을 때, 사니와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응!?"
키리히메가 숨이 막히는 외마디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무척 억눌려 있었는데, 실제로 아즈키의 입술이 그 입을 단단히 막았기 때문이었다.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던 키 큰 도검남사는, 역시 평소의 모습에선 전혀 상상치 못할 행동을 보였다. 즉, 제 주인에게 입을 깊이 맞췄다. 친애의 표시로 가볍게 볼에 입술을 대는 것과도, 존경의 뜻으로 손등에 입맞춤을 남기는 것과도 다른, 눅진하고 깊이 파고드는 구애 행동에 당사자인 키리히메는 물론 다른 남사들도 어안이 벙벙해져 굳어버렸다.
모두가 할말을 잃은 상황에서 아즈키만이 계속 움직이고 소리를 냈다. 앉은 자세 그대로 한손으로 주인을 끌어당긴 채, 마치 혼을 빨아들이듯 깊숙히 숨을 들이쉬고 호흡을 섞고 있었다. 그 안에서 혀가 어찌 움직이는지는 당사자들 외에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지만, 입이 끈적한 습기를 빨아들이는 듯한 소리가 작게 울렸다.
"……하아."
입술이 떨어지고, 아즈키가 키리히메의 뒤통수를 놓아주었다. 어느새 살짝 무릎을 세우고 있던 남사는 도로 정좌한 자세가 되어, 잠에 취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 그대로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눈을 스르르 감아버렸다. 입술이 무언가 달콤한 말을 중얼거라는 것 같았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고, 그 몸이 옆으로 크게 기울어 넘어질 뻔한 것을 옆자리의 켄신이 제 온몸으로 간신히 받쳤다.
한동안 침묵만이 흘렀다. 키리히메 자신도 무어라 말을 꺼내지도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방금 전까지 아즈키와 깊이 맞닿았던 입술을 멍하니 빠끔거렸다. 다른 남사들 또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을 뿐 뭐라고 서두를 떼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한 표정이었다. 손을 휘저으며 뭐라고 말하려다 관두는 이가 있었고, 입술을 깨물다가 결국 입을 도로 다물어버리는 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몇 초가 흐르고.
"아즈키 나가미츠, 네놈, 주군께 무슨 무례를 범한 거냐!"
연회장 입구에 가까운 쪽에서 끓는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뒤이어 칼은 뽑으면 안 된다며 말리는 목소리가 황급하게 터져나왔다. 비슷한 목소리가 연회장 가운데에서도, 그로부터 벽에 좀 더 가까운 쪽에서도 들려왔다. 그 중 한 명이 결국 뛰쳐나오려는 것을 코테기리와 시즈카가타가 달려가 황급히 붙들었다.
"이런이런. 꿈인 줄 알고 마음을 털어놓은 건가… 괜찮아?"
근시인 다이한냐가 제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사니와에게 말을 걸었다. 키리히메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못하고, 그저 아까 전에 아즈키를 흔들어 깨웠던 손으로 제 입을 가릴 뿐이었다. 얼굴이 새빨갛게 귀끝까지 물든 것이, 하얀 머리카락과 대조되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마치 설중(雪中)에 핀 매화 같은 모습이었다.
"정말이지. 이 녀석, 두드려서라도 깨울까?"
"동료에 대한 폭력은 용서되기 어렵습니다, 코류 카게미츠."
금발의 남사가 큰 손을 들어 같은 도파 남사의 뒤통수를 후려치려는 것을 하쿠산이 말렸다. 주변에서 그런 소동이 일어나는 동안에도, 간신히 몸을 바로세운 켄신이 크게 숨을 내쉬는 동안에도, 그리고 키리히메가 홍조에 진하게 물들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바라봐 오는 동안에도, 아즈키는 그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잠에 빠져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