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추어의 비공식 번역 및 해설입니다
※ 하단의 주석은 번역자가 덧붙인 것으로 공식과 연관이 없습니다

 

1일차

더보기

 

주인에게主へ

인연이 있는 지역을 찾아가, 자신을 돌이켜보는 것이 저희의 수행이라고 합니다.
제게 있어서는 이나바 가문이지, 호소카와 가문일지.
저는 두 집안을 오갔던 칼이기에, 양쪽에 각기 애착이 있습니다.(※1)
그렇다면……. 우선, 향하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1) 코테기리 고우는 이나바 가문과 호소카와 가문을 여러 번 오갔다. 
(호소카와 유사이가 이나바 마사카츠에게 보냈고, 유사이의 손자 호소카와 타다토시 때 다시 호소카와에 들어갔으며, 그 후 다시 이나바 가문에 보내져 1918년까지 전래되었다)


 

2일차

더보기

 

주인에게主へ

여기는 나가사키의 데지마出島.
이 시대에 유일하게 외부를 향해 열려있던 장소입니다.
쇄국이 완성된 후라 하여도 해외와의 교류가 완전히 끊겼던 것은 아닙니다.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이 데지마에서는 무역이 성했지요.(※2)

자, 오다와라의 이나바 미노노카미 마사노리 님의 사자로서 들어왔습니다.
전 주인이 외국의 문화에 깨어있는 분이셔서 살았습니다.(※3)
마침 난국蘭国(※4)의 상선이 입항한 차입니다.
아아, 전 주인들이 말했던 대로군요. 의상, 악기, 율동, 가슴이 뜁니다…….
긴 항해에 춤과 노래는 불가결하지요. 사람의 몸에도, 마음에도.
그리고 항구에 도착하면, 춤과 노래가 말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습니다.

거기에 있는 것은 순수한 마음과 소원. 형체 없는 것을 표현한 모습. 그 장소에 한하는 물거품.
기억할 수 있는 만큼 이 몸에 새기자.

 


※2) 에도 시대 일본은 기독교 선교 금지 및 무역 통제를 목적으로 1622년부터 1637년에 약 5차례에 걸쳐 쇄국령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서구 국가 중에서 네덜란드는 예외로, 나가사키의 데지마에 한정하여 상선의 입항 등을 허용하였다.

※3) 코테기리가 언급한 인물은 마사나리계 이나바 종가의 3대 당주이며 오다와라번 2대 번주인 이나바 마사노리稲葉正則. 조선통신사의 접대, 나가사키와 에도의 중개역 등 막부의 해외 무역 방면으로 중용되었으며, 번의 의사들에게 서양의 의술을 익히게 하는 등 외국 문화의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4) 네덜란드를 가리킨다. 에도 막부의 쇄국 정책 때 서구 국가 중 유일하게 통상이 제한적으로나마 허용되었던 나라.


 

3일차

더보기

 

주인에게主へ


호소카와 가로 향하고 있습니다.(※5)
마사노리님이 저를 문화 담당자로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호소카와 가문 분들께 전하는 것이 지금의 저의 역할.
어찌나 기쁜 일인지.

그러니까, 언제까지고 미숙하다는 말만 하고 있을 순 없지요.
이 스테이지, 저 혼자(한 자루)만이라도 성공시켜야만 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겪었던 경험 전부로 응해 보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물거품을, 

이 눈으로 보고, 이 몸으로 익히고, 얻은 것을,
당신의 곁에.

 


※5) 코테기리 고우의 내력에서 알 수 있듯이, 이나바 가문과 호소카와 가문은 에도 시대에 교류를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