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사니와(이름 및 독자설정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햇살이 선명하게 미닫이문을 넘어 방 안에 크게 똬리를 틀었다. 등을 지고 누워있어도 무시할래야 무시할 수 없는 그 밝기에, 사니와 키리히메는 조심스럽게 한숨을 폭 내쉬었다. 언뜻 듣기에는 아침 잠투정으로 한탄하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기엔 그 두 눈에서는 이미 잠기운이 싹 가셔 있었다. 사실 키리히메는 햇살이 아직 옅게 차오를 때부터 이미 눈을 뜨고 있었다. 다만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것도 9할은 타인의 의지로.
"난센, 일어나 있어?
"어-."
읊조리듯 건넨 물음에 대답이 금방 올라왔다. 키리히메는 이불 속, 자신의 품에 매달린 두툼한 온기를 붙들면서도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온기가 몸을 뒤척이자 노랗고 의외로 결이 고운 머리카락이 사니와의 목덜미를 부볐다. 키리히메의 얼굴에 발그레한 기운이 더 짙어졌다.
사니와의 침실, 사니와가 덮는 이불 속에는, 정수리 부분만을 밖으로 빼꼼 내민 도검남사 한 명이 웅크리고 있었다. 고양이를 두동강 낼 정도로 날카롭다는 우치가타나, 이름 높은 이치몬지 도파의 일원인 난센 이치몬지가, 눈조차 뜨지 않은 몽글몽글한 모습으로 그 안에 들어앉은 것이었다. 그것도 그냥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 이불의 주인인 키리히메를 꼭 껴안은 채였다. 아직도 잠에서 다 깨지 않은 남사는 제 주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었는데,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작고 낮은 그르릉 소리가 숨소리에 섞여 들렸다. 고양이가 종종 내는 골골거리는 소리와 비슷해 귀엽기도 했지만, 벌어진 옷 틈으로 들어와 맨살을 간지럽히는 숨결에 쑥쓰럽다는 생각도 드는 키리히메였다.
"아침이야. 해도 뜬 거 같아."
"어-."
"난센도 오늘 아마 출진할 거 같아."
"어-."
"그러니까, 슬슬 일어나야 할 거 같아."
밤새 뒹군 탓에 제멋대로 뻗친 난센의 뒷머리를 만지작만지작 쓰다듬으면서, 키리히메는 달래듯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말에 난센의 숨소리가 살짝 변했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몇 초 정도 이어져 키리히메는 그가 자신의 목덜미를 물진 않을까 살짝 걱정했다. 난센이 고개를 들어 고양이의 것을 연상시키는 샛노란 눈을 위협적으로 마주쳐 왔을 때에는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난센은 곧 고개를 도로 키리히메의 품에 파묻었다. 부정을 표시하려는 것인지 얼굴을 부빌 목적인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그가 볼멘소리를 올렸다.
"좀 더 있어도 되잖아. 조회 때까진 아직 한참 시간 있다고, 냐아."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어미도, 제 주인을 붙잡는 투정도 귀엽다면 귀여웠다. 그러나 사니와를 붙드는 팔에 실린 힘은 우악스러울 정도로 강했다. 그 단단한 연결이 누려서는 안 될 즐거움처럼 느껴져, 키리히메는 애써 목소리에 힘을 주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것저것 해야 하는 게 많아. 준비도 해야, 하고."
말투가 여전히 흐릿한 것은 키리히메가 제 품에 매달린 사랑스러운 이를 밀어낼 정도로 모질지는 못한 탓이었다. 대신 키리히메는 난센의 옷자락을 꼭 쥐고 재촉하듯 잡아당겼다. 그러자 난센이 재차 고개를 들었다. 그가 아직도 졸린 기운이 서린 눈을 깜빡이더니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나는 이대로 더 붙어 있어야 한다고, 냐아."
"밤새 같이 있었잖아……."
"더 필요하단 말야. 떨어져 있으면 저주가 더 심해져. 도검남사가 약해지지 않게 해주는 것도 사니와의 일이잖아, 냐아."
그렇게 말하며 난센 또한 키리히메의 옷깃을 꼭 잡았다. 다만 그의 손은 떨어지라고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라, 놓을 생각 없다며 붙드는 것이었다.
키리히메는 쓰게 웃었다. 고양이를 벤 탓에 씌였다는 저주를 난센은 현현했을 때부터 몹시 의식하고 있었다. 전투 경험을 쌓아 실적이 늘면 저주가 풀릴지 모른다, 사니와와 관계가 가까워지면 저주가 가실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야기하며 눈을 빛내던 난센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 사실이 가슴에 살짝 시큰거리게 다가오는 것을 애써 제쳐둔 채, 키리히메는 반쯤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정말 저주가 싫구나, 난센."
"그야 그렇지. 고양이는 싫지 않지만, 얕보이는 건 딱 질색이니까."
머리를 끄덕인 난센은 또 골골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번 것은 딱히 등골에 소름이 돋지 않는다고 키리히메는 생각했다. 지금 소리는 어느 쪽이냐면 어젯밤 같이 이불에 들어갔을 때 몸을 붙여 자리를 잡으면서 난센이 내던 웃음소리에 가까웠다. 그에겐 절대 이야기할 수 없지만 이럴 때는 영락없는 고양이라고 사니와가 생각하던 찰나, 이치몬지 도파의 우치가타나가 무언가 작게 웅얼거렸다.
"……고."
"응?"
"…핑계라고. 사실은 그냥 너랑 떨어지기 싫어. 이불 밖으로 내보내기 싫다고."
갑자기 들려온 본심에 키리히메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런 사니와를 난센이 아주 살짝 몸을 떼고 바라봐 왔다. 부루퉁해진 눈빛이 도리어 속마음을 투명하게 내비쳐와 보는 이로 하여금 두근거림과 함께 발그레한 풋풋함을 느끼게 했다. 여전히 사니와의 등을 붙잡은 손은 억센데 표정은 뼈가 있으면서도 말랑말랑해, 키리히메는 숨쉬는 것조차 잊고 난센과 시선을 한참 얽었다.
난센은 실짝 볼을 부풀리고 무언가 또 입을 우물거렸다. 그가 아주 잠깐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가 되돌렸다. 그 동공이 잠깐 풀렸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키리히메의 품에 얼굴을 누르며 두 팔에 힘을 지금까지 이상으로 꾹 넣어왔다.
"오늘 근시는 딴 녀석이잖아. 좀 더 있어. 그 녀석이 깨우러 올 때까지, 시간 아직 있단 말야. 냐아."
냐아, 하는 말끝이 평소 이상으로 진득하게 들렸다. 허리가 달달하게 떨리는 것을 느끼며 키리히메는 어물어물 머릿속으로 오늘 일정을 짚었다. 변동사항이 없다면 오늘 근시는 난센 바로 다음 차례인 치요가네마루였다. 그리고 그가 깨우러 오기까지는 3각(45분 가량) 정도 있을 터였다. 확실히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이미 답을 알면서도 확실히 해두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근시가 데리러 오면 그 때는 놔 줄 거야?"
"……아니."
난센은 예상 이상으로 솔직했다. 키리히메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럴 땐 속이 다 보이는 거짓말이라도 해야 이쪽도 넘어갈 수 있을 텐데, 그렇게 생각했던 사니와였지만 이내 마음을 달리 먹기로 했다. 마음을 연 이에게는 솔직하게 답하는 것 또한 난센 이치몬지의 매력이었다.
키리히메는 한숨을 쉬었지만, 난센의 옷자락을 쥔 손은 놓지 못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지 난센은 제 주인의 품에서 한참 코를 킁킁거리며 몸을 부비적거렸다. 따뜻한 숨결 사이로 말캉한 혓바닥이 쇄골 끝을 살짝 핥자 키리히메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 반응이 만족스러웠던 것일까, 난센은 고양이가 골골대는 소리와 사람이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섞인 웃음을 내며 다리까지 얽어 붙잡아왔다.
햇살은 점점 더 강해졌지만, 한동안 키리히메는 제 어제 근시를 품에서 놓지 못하고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