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사니와(이름 및 독자설정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리나가.
이 혼마루의 주인은 야만바기리 쵸우기를 그렇게 불렀다. 그의 이름을 읽는 다른 법인 '야만바기리 나가요시'를 그렇게 줄여 부르는 것이었다. 기리쵸우, 라는 약칭은 아무래도 발음하기가 어려우니 이렇게 부르고 싶다며 사니와 키리히메는 쑥쓰럽게 웃었더랬다. 가슴 속 한켠에서 조그맣게 끓어오르는 기포를 누르며 쵸우기는 그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통칭은 그렇게 굳어졌다.
그 이름도 아주 나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호(号)인 야만바기리와 자신의 도공명을 다르게 읽은 나가요시를 합쳐 부르는 이름이니 별로 이상할 것도 자존심 상할 것도 없었다. 적어도 쵸우기는 처음에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가슴 속에 피었다가 눌렸던 기포가 걷잡을 수 없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전까지는.
"기리나가, 무슨 일 있어?"
키리히메의 목소리에 쵸우기는 고개를 들었다. 바닥에 꿇어앉은 채 자신을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는 푸른 시선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머리칼이 늘어져 살랑 나부꼈고, 유독 길게 늘어진 한쪽 옆머리의 끝이 마주앉은 두 사람 사이의 공간에 펼쳐져 있는 지도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쥬라쿠테이의 지도가 그려진 누르스름한 종이와 걱정이 어리기 시작한 사니와의 표정을 번갈아본 쵸우기는 급히 여유로운 미소를 만들어 제 얼굴에 덮어씌웠다.
"조금 생각에 잠겼을 뿐이야. 그래서,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쥬라쿠테이 내부로 진입한 이후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
"음, 그랬지. 알다시피, 현재 쥬라쿠테이 내부는 여러 길로 갈라져 있으며 각 길마다 변수가 많아. 이럴 때는 우선……."
쵸우기는 말을 자아내면서 지도에 나온 여러 갈래의 길을 하나하나 손으로 짚었다. 그 손가락 끝을 눈으로 바삐 따라가는 키리히메의 시선은 어디까지고 진지했다. 차분히 바닥에 정좌하고 앉아 도검남사의 설명을 듣는 모습은 감사관과 사니와의 신분으로 접했을 때 본 모습과 같으면서도 어딘가 달랐다. 설명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기 위해 꼭 다물린 입술이 유독 도톰해 보여, 쵸우기는 숨을 고르는 척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 입술은 자신을 자주 부른다. 그러나 그 입이 발하는 호칭은 언제나 '기리나가'이다. 쵸우기는 그것이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인이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 이유가, 다름아닌 사본과 구분짓기 위해서이기 때문이었다.
진정한 야만바기리는 자신 한 명뿐. 쵸우기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자신이야말로 진짜이며, 같은 이름으로 알려진 사본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이름을 빌려쓰는 가짜일 뿐. 자신이 없을 때라면 몰라도 이제 자신이 온 이상 그 이름은 마땅히 돌려받아야 한다고 쵸우기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키리히메는 양쪽 모두에게 다른 별칭을 주는 것으로 이에 대응하고 있었다.
사본이 야만바기리라 불리는 것보다야 낫지만.
그렇게 자신을 달래는 쵸우기였지만, 역시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쥬라쿠테이의 지도를 내려다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옆에 펼쳐둔 백지에 무언가를 써내려가는 키리히메의 모습이 그의 눈에 재차 담겼다. 이 사람에게, 주인에게 야만바기리는 두 자루란 말인가. 야만바기리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이 처연한 인상의 주인이 떠올리는 얼굴은 쵸우기 자신 외에도 있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자 속이 뒤틀리며 입에 쓴맛이 올라왔다. 그 쓴맛을 떨구기 위해 잠시 어금니를 악문 후, 쵸우기는 짐짓 태연한 얼굴로 설명을 계속했다. 쥬라쿠테이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서 취하면 좋을 전술을 설명하는 목소리에는 평소 이상으로 주의깊게 다듬은 티가 감돌고 있었다.
"……그럼 지금은 이 정도로 해 둘까. 너무 많이 설명하면 다 기억하기 어렵겠지."
"응. 덕분에 내일 편성을 고칠 수 있을 거 같아. 가르쳐줘서 고마워."
"이 정도, 나에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싸우는 것이 본분이지만, 전술이나 배치도 서투를 생각은 없어."
쵸우기는 제 몸에 두른 천자락을 정리하며 자연스레 가슴을 펴 보였다. 오만하게 보일지언정 속물스럽게는 보이지 않는 그 동작에 키리히메는 부드럽게 웃으며 살짝 목례를 했다.
"많이 도움이 되고 있어. 정말 고마워, 기리나가."
그 목소리에, 더없이 다정하고 호의 넘치는 그 목소리에, 쵸우기는 눈을 가늘게 떴다.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생각이 넘치기 직전까지 차오른 쵸우기는, 결국 입을 열었다. 어조가 흐트러질 정도로 생각이 넘쳐흐르기 전에, 아직 고고한 말투를 유지할 수 있을 때.
"야만바기리."
"응?"
"야만바기리. 그것이 내 이름. 기리나가라는 별칭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은 없지만, 역시 확실히 불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
쵸우기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지도 두루마리를 도로 말기 위해 손을 뻗던 키리히메가 손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에 당황한 빛이 섞여들기 전, 쵸우기는 재차 말을 이었다. 차분하게, 하지만 격정적으로.
"너는 이 혼마루의 남사들을 대체로 앞 이름으로 부르지. 처음 이 혼마루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그런 모습을 보았어. 그런데 어째서 나는 다르게 부르는 거지? 나는 딱히 다르게 불러달라 요청한 기억이 없는데."
"그 편이 헷갈리지 않을 것 같아서……."
키리히메는 말끝을 흐렸다. 사본 야만바기리, 쿠니히로 도파의 우치가타나의 이름을 자신의 앞에서는 내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쵸우기는 받아들였다. 그 태도에 도공 나가요시가 만든 영도(靈刀)는 잠시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가, 곧 평소의 고고한 오만함을 되찾은 얼굴로 웃었다.
"그렇다면 가짜 군 쪽을 다르게 부르면 돼. 기리쿠니든 뭐든, 다른 이름으로. 하지만 나는 진짜 야만바기리, 그 이름 그대로 불러도 문제가 없을 터. 설마 내 이름을 부정할 생각은 아니겠지?"
"그야, 그렇지만."
키리히메는 옷소매로 제 입가를 더듬으며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이 혼마루의 사니와가 당황하거나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었을 때 그런 몸짓을 취한다는 것은 혼마루에 최근에 찾아든 쵸우기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다 화제를 바꾸려는 듯 지도를 돌돌 말아 정리하는 키리히메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두루마리에 끈을 묶던 사니와에게 상체를 내밀었다.
"아아, 그런가."
쵸우기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들떠 있었다. 장갑에 감싸인 한쪽 손이 사니와의 턱을 건져올리듯 위로 슬쩍 들어올렸다. 끈매듭을 미처 묶지 못한 채 굳어버린 키리히메를 똑바로 응시하며, 은발의 남사는 어르듯 나무라듯 말을 이었다.
"우수한 평가를 받은 사니와여서 설마 그런 약점이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야만바기리, 라는 단어를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것이로군?"
"응?"
키리히메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그 놀란 표정을 머릿속 한켠으로 밀어버린 남사는 짐짓 꾸민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를 따라서 말해 봐. 야만바기리, 라고."
자신의 이름을 느릿느릿, 또박또박 말한 후, 쵸우기는 사니와의 입술을 응시했다. 키리히메의 도톰한 입술이 살짝 열렸다가 이내 금붕어처럼 소리없이 빠끔거렸다. 휘하의 남사에게 턱을 잡혀 들어올려진 채 밀착해 있다는 사실에 놀라 입이 굳어진 것일까, 아니면 야만바기리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는 데 저항감이 있는 것일까. 살짝 열려 숨을 들이마시다 이내 벙긋거리기만 하는 입술에 쵸우기의 서늘한 시선이 내려꽂혔다. 그의 표정이 말을 듣지 않는 아이를 눈앞에 둔 어른처럼 변했다. 딱하다는 꾸며낸 생각이, 자신의 뜻대로 하게 만들어야겠다는 본능에서 우러나온 각오가, 쵸우기의 조형 뛰어난 얼굴 위에서 뒤섞였다.
쪽.
입술이 맞닿았다. 쵸우기가 얼굴을 앞으로 내밀어 제 주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친 것이었다
맞닿은 입술은 결코 각도를 틀지 않았다. 윗입술이 윗입술과 맞닿고 아랫입술이 아랫입술과 맞닿아, 마치 두 입술을 정면에서 겹친 형세였다. 얇디얇은 피부를 건너 바로 전해지는 체온과 감촉에 키리히메는 눈을 감는 것도 몸을 뒤로 빼는 것도 잊어버렸다.
그 반응에 만족하며 쵸우기는 입술을 움직였다. 크게 열렸다 닫히고 다시 열리는 입술은 야만바기리, 라고 말할 때와 똑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다만 말소리는 나오지 않고, 서로의 숨이 뒤섞여 흐르는 소리가 대신해 흘러넘칠 뿐이었다. 사니와의 입술에 움직임을 직접 새겨넣듯, 서양의 인형사가 실을 놀려 인형을 조종하듯, 쵸우기의 입술이 키리히메의 것을 끌고 다녔다. 그 지분거리는 움직임에 견디지 못한 키리히메가 몸을 파르르 떨자 쵸우기가 그 뒤통수를 제 다른 손으로 끌어당겨 꾸욱 눌렀다. 입술이 다시 한 번 천천히 야만바기리, 라는 입술 동작을 만들었다.
그토록 깊게 눌린 것에 비해 입술은 쉽게 떨어졌다. 아직도 눈을 감는 것을 잊어버리고 멍해져 있는 키리히메에게 쵸우기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를 부를 때에는 이렇게 입술을 움직이는 거야. 야만바기리, 라는 소리가 날 테지. 그렇게 나를 부르면 돼."
"하, 지만, 기리나가."
키리히메는 반사적으로 제가 지은 통칭을 다시 입에 올렸다. 쵸우기는 그런 사니와에게 다시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 댔다. 얼굴에 맞춰진 초점이 아슬아슬하게 흔들릴 거리에서 그는 일부러 숨소리를 진하게 섞은 목소리로 말했다.
"혀의 움직임도 추가로 가르쳐줘야 하는 건가?"
사니와의 턱을 받쳐올리며 고하는 목소리에는 과연 아름다움과 건방짐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 목소리에, 자신을 향해 꽂혀오는 날카롭지만 괴롭지 않은 시선에, 키리히메는 입을 어물어물 소리없이 움직이다 이내 입술을 닫아버렸다.
그 고집 아닌 고집에 쵸우기의 시선이 다시 가늘어졌다. 이 사니와는 앞으로도 자신을 기리나가, 라고 부를 모양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의 입가에 일그러진 호선이 생겨났다. 이 곱지만 심지 단단한 입술이 자신을 야만바기리라 불러줄 날이 기다려진다고, 그렇게 만들어 보이겠다고 그는 마음 속에 제 생각을 새겼다.
생각에 매듭을 지어 봉인을 누르듯 피식 웃음을 지은 후, 쵸우기는 다시 사니와에게 입술을 가져다 댔다. 이번에는 각도를 살짝 틀어 입을 맞물리게 한 후, 그는 사니와의 입 속에 제 혀를 얽듯이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