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 사니와(이름 및 독자설정有)가 등장합니다
※ 드림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6.11.06 검사니 전력 60분: 천체관측
방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꺼진 혼마루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듯한 정적인 분위기가 스산하게까지 느껴졌다. 멀리 석등에서 새어나오는 빛조차 도검남사들의 숙소로 쓰이는 건물에 가로막혀 있었고, 불빛이라곤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어슴푸레한 등불빛뿐이었다. 덕분에 하늘에 뜬 것들이 한층 더 존재감을 발할 수 있었다.
소년은 복도와 이어진 툇마루에 앉아 그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안경 너머로 비친 하늘에 별이 빼곡히 들어차 반짝거렸다. 자그마하게 간신히 존재만 주장할 정도인 별 부스러기조차도 지금은 당당히 소년의 눈에 한 자리 차지하고 들어왔다. 이렇게 많은 것들이 동시에 빛을 발하는데도 눈이 부시지 않다니 신기하기도 하다며 소년은 잠시 안경을 벗었다. 입김을 불고 렌즈를 닦으며 맨눈으로 흘끗 올려다본 하늘은 아까보다 흐릿해, 마치 아까 전엔 정교히 다듬어졌던 빛들이 흘러넘친 것 같았다. 늘 계산과 실리에 충실한 자신이 언제 이렇게 감상적이 되었나 자조하며 소년은 안경다리를 만지작거렸다.
'하긴 생각해보믄 별구경 자체가 실리적인 일은 아니제.'
관람료를 받는다면 또 모를까, 스스로에게 농담을 하며 소년은 안경을 썼다. 복슬한 기운이 남은 짧뚱한 머리카락이 손끝에 스쳤다.
"하카타? 거기서 뭐 해?"
그 때, 등 뒤에서 소년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로 이어진 미닫이문이 열린 채였다는 걸 하카타 토시로는 그제서야 떠올렸다. 어쩐지 어디서 등불빛이 비치더라니만, 하며 소년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는 주인은 이 시간에 뭣 한당가?"
"잠깐 깨 버렸어. 얼굴만 씻고 다시 자려고 했는데, 복도에 누가 보여서."
"얼굴을 씻으믄 더 잠이 깰 건디."
그 말에 복도 안에 서 있던 여인은 멋쩍게 웃기만 했다. 하카타는 히히 웃은 후 일부러 크게 기지개를 켰다.
"하늘 좀 보고 있었제. 점도 쳐 볼 겸."
"하카타, 점 칠 줄 알아?"
여인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란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티가 나는 건 사니와 키리히메의 오랜 버릇 중 하나였다. 하카타는 안경다리의 각 부분을 만지작거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머, 그냥 감으로 때려맞추는 거제잉. 우리 토시로들이 부적으로 인기가 많긴 했어두 딱히 점 치는 힘은 없응게. 아- 형제가 한둘이 아닝게 몇은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감.... 조금 의외네. 하카타가 그런 말 하는 건."
"장사두 때로는 감이 중요항께. 글구 점도 점이지만, 하늘을 보면 내일 날씨 정도는 짐작할 수 있잖어? 점이랑은 다른 얘기루."
그 말에 키리히메는 납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점술은 잘 모르지만, 날씨를 짐작하는 것 정도는 하카타가 할 법한 행동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팍팍한 이미지였던가 하고 살짝 자신을 되돌아보며 하카타는 옆으로 비켜앉았다. 키리히메가 복도에서 툇마루로 발을 내딛어, 방금 전까지 그가 앉아있던 자리까지 걸어나왔다.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별을 올려다보는 사니와를 하카타는 가만히 응시했다. 키리히메의 표정은 마치 처음으로 대도시에 나온 시골 꼬마 같아, 어린 소년의 외관인 자신보다도 더 앳되어 보였다. 하카타는 제 머리를 긁적이다 그녀를 향해 질문을 던져올렸다.
"참 애틋하게도 보네잉. 별 잘 안 본당가?"
"그렇게 집중해서 본 적은 별로 없던 거 같아. 별로 좋지 않다는 얘기도 있었고."
"올려다보는 게?"
"별이."
그런 이야기도 있던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하카타는 일전 니혼고와 나눴던 잡담을 떠올렸다. 어디선 별은 죽은 사람이 되돌아가는 장소라고 불길해한다던가, 그런 이야기가 술잔 사이에 섞여 있었다. 당시 니혼고는 실없는 사람들이라며 낄낄거렸지만, 아무래도 키리히메나 그녀의 생전 가족은 그것을 진지하게 믿었던 모양이었다.
키리히메는 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서서히 몸을 낮추어 앉았다. 네마키 차림으로는 추울 거라고 얘기하려다 말을 삼키는 하카타 옆에서, 그녀는 멍하니 말을 흘렸다.
"날씨... 내일은 맑으려나?"
"글킨 헌데 안개는 좀 낄지두. 맑으면 좋제잉."
"지금 비가 오면 추우니까."
"글구 아직 수확 못 헌 게 있응게. 그것들이 냉해를 입음 큰일이여. 내다 팔질 못하잖어."
하카타의 눈이 톱니바퀴가 맹렬히 회전하는 것처럼 번득였다. 그는 경제에 관한 화제를 생각할 때면 항상 눈빛이 그렇게 변했다. 키리히메가 웃는 소리가 들릴 때에야 그는 수확물의 가격을 계산하는 걸 관두었다.
멋쩍음을 감추려 안경을 재차 고쳐쓴 하카타의 눈에 키리히메의 모습이 또렷하게 비쳤다. 사니와는 하늘을 보며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성좌니 성관(星官)이니 하는 것을 떠올리려 하는 것 같았다. 별들 사이사이로 시선을 옮겨다니며 하늘을 헤집던 여인의 손이 자연스레 들어올려졌다. 하늘을 향해 비스듬히 뻗어올라간 한손에서 네마키의 소맷자락이 흘러내렸다. 새하얀 손목, 매끄러운 다섯 손가락이 달이 뜨지 않은 하늘로 뛰어들려 하고 있었다. 마치 되돌아가려는 것처럼.
"하카타?"
키리히메가 깜짝 놀라 옆을 돌아보았다. 하늘을 향해 치켜올라갔던 그녀의 손이 아래로 잡혀내려와 있었다. 손목을 꼭 잡아 내린 하카타의 한손 때문이었다. 소년의 모습으로 현현한지라 손은 작고 팔도 짧은데, 손목을 힘껏 쥔 손의 악력은 꽤 강했다.
"그짝은 안 돼."
하카타의 목소리는 표정만큼이나 진지했다. 붉은 안경테가 흐트러진 것조차 신경쓰지 않고, 그는 주인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단도에게선, 특히 하카타에게선 잘 보기 힘든 색깔 진한 눈빛에 키리히메가 눈을 깜빡였다. 그녀가 말을 잃은 틈을 놓치지 않고, 하카타는 말을 이었다.
"주인이 잡을 건 그게 아니여."
그렇게 말하며 하카타는 다른 손을 키리히메의 손 위에 턱 겹쳤다. 그 손을 떼자, 키리히메의 손 위에는 엽전 한 장이 반들거리고 있었다. 손때도 타고 크기도 다소 작았지만, 열심히 문질렀던 것처럼 반딱이는 것이었다.
눈을 깜빡이며 키리히메는 하카타를 재차 바라보았다. 그는 잡았던 손목을 놓아주며 평소처럼 의기양양하게, 천진하게 웃었다.
"주웠지라."
"......몰래 가져온 건 아니지?"
"아니, 날 뭘로 보구 그런 말을 허는 거여? 돈에 관한 한 신용 철저, 원칙 철저한 이 하카타 토시로를 의심하면 섭하제잉!"
호상은 돈을 허투루 빼돌리지 않는 법이여! 라며 하카타는 말 마디마디에 힘을 팍 주어 말했다. 퍽 과장된 말투였는데도 그것이 오히려 귀여웠는지, 키리히메는 미안하다고 말하며 생긋 웃었다.
엣험, 헛기침을 하며 하카타는 제 주인을 물끄러미 보았다. 키리히메는 손에 쥐여진 코반과 머리 위의 하늘을 한 번씩 바라본 후 코반을 품 속에 쏙 집어넣었다. 하카타 지방에서 온 단도 역시 비어버린 제 손과 저 위 하늘을 번갈아본 후, 이읔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별을 보는 건 이쯤 해 둬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그는 능청스레 주인의 어깨를 잡아끌고 잠을 재촉했다.